"재석 60명 안 되면 필버 중단”…민주당, 국회법 개정안 소위 통과
국회 필리버스터를 둘러싼 다수당과 제1야당의 충돌이 한층 거세졌다. 필리버스터 중단 요건을 완화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두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의사진행권과 저지권을 놓고 정면으로 맞섰다. 정기국회 막판 본회의에서도 같은 갈등이 재연될 가능성이 커졌다.
26일 국회에 따르면 국회 운영위원회 국회운영개선소위원회는 이날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은 국회 본회의 재적의원 5분의 1인 60명 이상이 출석하지 않으면 국회의장이 필리버스터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담았다.

현행 국회법은 본회의 출석 의원이 정족수에 미달하면 국회의장이 회의를 중단하거나 산회를 선포할 수 있도록 하면서도, 필리버스터에 대해서는 예외를 두고 있다. 개정안은 이 예외 조항을 삭제하고, 필리버스터가 진행 중일 때 출석 의원이 정족수에 못 미칠 경우 국회의장이 회의 중지를 선포할 수 있다는 규정을 새로 넣었다.
또 의장단의 야간 연속 회의 진행 부담을 줄이기 위한 장치도 포함됐다. 개정안은 "의장이 무제한 토론을 진행할 수 없는 때에는 의장이 지정하는 의원이 무제한 토론을 진행해야 한다"는 조항을 넣어, 필리버스터 진행을 의장이 지명한 의원에게 위임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필리버스터 종료 조건은 유지됐다. 현행 국회법상 필리버스터 종결이 선포되면 지체 없이 표결에 들어가도록 한 규정을 그대로 두면서, 종결 이후 절차를 바꾸지는 않았다. 민주당 내부에선 종결 선포 후 12시간 이내 범위에서 표결 시간을 사전 공지하도록 하는 방안도 논의됐지만, 이날 소위를 통과한 개정안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문진석 원내운영수석부대표는 소위 의결 직후 기자들과 만나 "27일 본회의에서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여부와 관계 없이 이번 정기국회 회기 안에 법안을 처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겠다"고 말했다. 필리버스터 규정 정비와 함께 쟁점 법안 처리까지 정기국회 내 마무리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으로 해석된다.
국민의힘은 소위 회의 도중 집단 퇴장으로 맞섰다. 국민의힘 소속 소위 위원들은 개정안을 "필리버스터 무력화법"이라고 규정하며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소위 의결 후 국회 운영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별도 기자회견을 열고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갔다.
이들은 "(이 법안 통과는) 야당의 마지막 합법적 저항 수단마저 무력화시키겠다는 것"이라며 "다수당 편의에 따라 일방적인 입법 체계를 만들겠다는 발상은 의회 민주주의 근본 원리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위헌적 시도이며 입법 독재를 위한 절차 쿠데타"라고 주장했다. 필리버스터 제도의 취지가 다수당 견제에 있는 만큼, 중단 요건 완화는 소수 의견 봉쇄로 이어질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민주당은 물리적 장기 의사진행 지연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정이라는 입장이다. 본회의 출석이 정족수에도 못 미치는 상황에서 무제한 토론만 이어지는 관행을 바로잡아, 실질적 토론과 표결을 병행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의장단의 과중한 야간 근무와 본회의장 상시 대기 문제도 해소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개정안이 소위를 통과하면서 향후 절차와 정국 파장이 주목된다.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와 법제사법위원회 추가 논의 여부, 본회의 상정 시기 등이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정기국회 회기 내 본회의 처리 방침을 분명히 한 만큼, 국민의힘이 총력 저지에 나설 경우 양당 간 충돌 수위도 높아질 수 있다.
국회 안팎에서는 필리버스터 제도 손질이 권력 구조 변화기에 되풀이돼 온 정치적 쟁점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다수당 지위를 가진 세력이 제도 운영의 효율성을 강조하고, 소수당은 견제 장치 약화를 우려하는 구도가 반복돼 왔다는 분석이다.
정기국회가 마무리 국면에 접어든 가운데 국회는 필리버스터 규정 개정과 쟁점 법안 처리 방향을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을 이어갈 전망이다. 정치권은 국회법 개정안을 매개로 입법 절차와 의회 민주주의 원칙을 놓고 정면 충돌하는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