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판교 사옥 폭탄 협박”…군·경 총동원 속 전 직원 대피
카카오 판교 사옥을 겨냥한 폭발물 테러 협박이 접수되면서 군 특수부대와 경찰 기동대, 소방 인력이 동시에 투입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대한민국 IT 산업의 핵심 거점인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역 인근 판교 테크노밸리 한복판에서 대형 플랫폼 기업을 노린 협박이 드러나며 현장 일대는 한때 전시 상황을 방불케 했다. 카카오는 즉시 전 직원에게 대피령을 내리고 재택근무로 전환하는 등 임직원 보호에 나섰다.
사건은 15일 오전 11시 9분께 시작됐다. 카카오 고객센터 누리집에 신원을 알 수 없는 작성자가 “백현동 판교 아지트 건물에 사제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내용의 협박 글을 게시한 것이다. 작성자는 자신을 고등학교 자퇴생이라고 소개하며 “보안의 사각지대를 틈타 폭발물을 숨겨뒀다”는 구체적인 메시지를 남겨 카카오 측을 압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카카오는 해당 글을 확인한 즉시 경찰에 신고하고 내부 비상 대응 체계를 가동했다.

수사 당국이 확인한 결과 협박 글은 이 시간대 이전에도 반복적으로 올라온 것으로 파악됐다. 같은 날 오전 7시 10분과 7시 12분에도 유사한 내용의 게시물이 연이어 게시된 사실이 드러났다. 짧은 시간 간격으로 세 차례에 걸쳐 협박이 반복된 정황에 대해 경찰은 “단순한 감정적 충동이라기보다는 반응을 떠보거나 공포감을 극대화하려는 계획적 패턴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실제 테러 의지 여부와 허위 신고 여부를 동시에 들여다보고 있다.
작성자가 남긴 협박 내용은 폭발물 설치 위협을 넘어 살인 예고와 금전 요구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그는 카카오의 특정 고위 임원을 지목해 “사제 총기를 사용해 살해하겠다”는 취지의 글을 적었고, 특정 계좌로 현금 100억원을 입금하지 않을 경우 “드론으로 사제 폭발물을 투척하겠다”고 주장했다. 4차 산업혁명의 상징으로 꼽히는 드론을 공격 수단으로 언급하고 천문학적 액수를 요구한 대목에 대해 전문가들은 “온라인 협박이 실제 물리적 테러 수단과 결합된 현대적 위협 양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협박 접수 직후 판교 아지트 일대는 사실상 통제 구역에 가까운 상황이 됐다. 신고를 받은 경찰 특공대와 군 폭발물 처리반(EOD) 차량이 사이렌을 울리며 현장으로 집결했고, 소방 당국도 구급차와 소방차를 전진 배치했다. 중무장한 군·경 인력은 건물 내부로 진입해 로비, 지하 주차장, 화장실 등 폭발물 은닉 가능성이 높은 구역을 중심으로 정밀 수색을 벌였다. 주변을 지나던 시민과 인근 IT 기업 직원들은 삼엄한 경계 태세에 놀라 발걸음을 멈추고 현장을 지켜본 것으로 전해졌다.
카카오는 사내 공지 시스템을 통해 폭발물 협박 사실을 전 직원에게 공유했다. 동시에 판교 아지트 근무 인력 전원에게 “즉시 귀가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사무실에 있던 직원들은 업무를 중단하고 비상 계단 등을 이용해 건물 밖으로 빠르게 빠져나갔으며, 오후 업무는 전면 재택근무로 전환됐다. 업계 안팎에서는 카카오가 과거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한 대규모 서비스 장애를 겪은 이후 ‘안전 최우선’ 원칙을 강화한 점이 이번 조치에도 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의 수사는 협박 메시지 작성자의 실체를 규명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지난달 9일과 이달 9일에도 동일한 명의로 비슷한 내용의 협박 신고가 접수됐던 정황을 확인했다. 해당 명의자는 이미 대구남부경찰서 조사를 받았으나 “누군가 내 명의를 도용했다”고 주장하며 관련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 진술의 신빙성을 확인하는 한편, 계정 도용 여부와 연관성에 주목하고 있다.
수사 당국은 작성자가 해외 IP를 경유했거나 타인의 계정을 도용했을 가능성도 열어두고 디지털 포렌식 수사를 병행 중이다. 경찰은 “인터넷 주소 추적과 접속 기록 분석을 통해 최초 게시글이 작성된 위치를 특정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협박 글에 명시된 계좌 번호의 소유주를 파악하고 자금 흐름을 추적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장난이나 허위 신고라 하더라도 막대한 행정력 낭비와 시민 불안을 야기하는 중대 범죄”라며 “끝까지 추적해 엄정 처벌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협박 사건은 디지털 플랫폼 기업이 마주한 새로운 리스크 양상을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고객센터 누리집에 올라온 몇 줄의 글이 수천 명이 근무하는 대형 오피스 빌딩을 즉각 마비시키고 군·경·소방 인력을 동시에 움직이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온라인 공간의 익명성을 믿고 자행된 협박이 오프라인에서 실제 테러 가능성으로 받아들여지는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안보·보안 전문가들은 온라인 기반 협박에 대응하기 위한 기업과 공공기관의 위기관리 체계 점검이 필요하다고 본다. 사이버 공격을 막는 IT 보안뿐 아니라, 폭발물 위협·실탄 사용 예고 등 물리적 테러까지 포괄하는 통합적인 대응 매뉴얼과 모의훈련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특히 판교와 같은 IT 집적 지역의 경우 다수 기업과 인력이 밀집해 있어 유사 협박이 반복될 경우 경제·사회적 파장이 클 것으로 우려된다.
군과 경찰, 소방 당국은 1차 정밀 수색 결과 사제 폭발물이나 테러 정황을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관계 기관은 추가 협박이나 모방 범죄 발생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판교 일대 순찰을 강화하고 CCTV 모니터링을 확대하는 등 경계를 이어가고 있다. 카카오도 수사기관의 최종 안전 확인이 내려질 때까지 비상 근무 체제를 유지하며 사태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정확한 협박 경위와 배후를 규명하기 위한 수사를 이어갈 방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