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비트코인 해시파워 3위 복귀”…중국, 금지령 속 값싼 전기로 지하 채굴 확산

박선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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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채굴과 거래를 전면 금지한 지 4년이 지난 중국에서 암호화폐 채굴이 다시 급속히 늘고 있다. 국제 통계와 업계 분석을 종합하면 중국의 비트코인 해시레이트 점유율은 최근 14% 안팎까지 회복됐고, 최대 20%에 근접한다는 관측도 나오면서 글로벌 채굴 지형에 미묘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해시레이트 인덱스와 크립토퀀트 추정치에 따르면 중국은 현재 글로벌 비트코인 해시레이트의 약 14%를 점유하며 초당 약 145 엑사해시 정도의 연산 능력을 가동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이 약 38%로 1위를 유지하고, 러시아가 15% 이상으로 2위에 오른 가운데 중국은 다시 3위 채굴 허브로 부상했다. 로이터를 비롯한 여러 분석 기관은 집계상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 채굴 활동이 재확대되는 흐름 자체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는 입장이다.

중국 비트코인 채굴
중국 비트코인 채굴

중국 정부가 2021년 중반 채굴과 거래를 불법화했을 당시 중국의 비트코인 해시레이트는 사실상 0에 수렴할 정도로 급락했다. 당시 대규모 채굴 농장은 잇따라 가동을 중단했고, 상당수 사업자가 카자흐스탄과 러시아, 미국 등으로 장비를 옮기며 탈중국 행렬이 이어졌다. 그러나 1년이 채 지나기 전부터 네트워크 데이터에서 중국 IP 기반 채굴 신호가 다시 포착되기 시작했고, 4년이 지난 현재 중국은 다시 세계 3대 채굴 거점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금지령 속에서 채굴이 ‘지하화’되는 배경에는 값싼 전력이 자리 잡고 있다. 신장과 쓰촨 등 일부 지역은 과거부터 수력발전을 기반으로 한 전력 공급 과잉이 구조적으로 이어져 왔다. 송전 인프라 한계로 잉여 전기를 외부로 보내기 어렵다 보니, 현지에서는 남는 전력을 소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비트코인 채굴이 다시 선택되는 양상이다. 신장에서 채굴을 재개한 한 운영자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남는 전력을 다른 지역으로 수송하기 어려운 만큼, 암호화폐 채굴을 통해 소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이처럼 전력망의 빈틈을 파고든 소규모 채굴 시설이 농촌과 산업 단지 곳곳에 분산 배치돼 있다는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하드웨어 판매 흐름도 이러한 변화를 뒷받침한다. 글로벌 채굴기 제조사 카난은 2024년 기준 자사 매출의 30.3%가 중국 시장에서 나왔다고 밝혔다. 2022년 중국 내 매출 비중이 2.8%에 그쳤던 점을 감안하면 극단적인 증가세다. 2025년 2분기에는 중국 판매가 전체 매출의 절반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되면서 채굴 장비 수요의 무게중심이 다시 중국으로 기울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비트코인 채굴기는 상대적으로 작고 이동이 쉬운 만큼 규제 당국의 감시를 피해 은닉·분산 배치되기 좋다는 특성이 있다. 업계는 카난의 중국 매출 급증을 현장 채굴 수요 확대를 보여주는 간접 지표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가격 측면에서 비트코인의 강세장이 지하 채굴 확대에 기름을 붓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비트코인은 10월 12만6,200달러까지 상승한 뒤 현재 8만600달러 수준으로 내려왔다. 고점 대비 약 33% 하락했지만 여전히 과거와 비교하면 높은 가격대를 유지하고 있어, 전력 비용이 저렴한 중국 내에서는 채굴 수익성이 방어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크립토퀀트는 글로벌 해시레이트의 15~20%가 중국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하며, 높은 비트코인 가격과 낮은 전기료 조합이 신규 투자와 기존 장비 재가동을 동시에 자극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책 환경은 더욱 복잡한 그림을 만들고 있다. 중앙 정부 차원의 암호화폐 채굴·거래 금지령은 공식적으로 철회되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홍콩은 2025년 8월 스테이블코인 규제를 도입하며 관련 자산을 제도권으로 편입하는 작업에 나섰다. 중국 본토에서도 위안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잇달아 나오면서, 사실상 ‘선 규제·후 활용’ 기조로 전환할 수 있다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디지털 자산 거래 플랫폼 퍼페추얼스닷컴의 패트릭 그룬은 중국의 채굴 부활을 “현재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신호 중 하나”라고 평가하며, 향후 중국이 암호화폐를 전면 금지 모델에서 규제 관리 모델로 옮길 가능성을 언급했다.

 

중국 사례는 암호화폐 전면 금지 전략이 안고 있는 구조적 한계를 다시 부각시키고 있다. 전력 잉여 지역에 대한 촘촘한 통제가 쉽지 않은 데다, 소규모 채굴 장비는 물리적 위치를 수시로 바꿀 수 있어 적발과 단속에 상당한 비용이 든다. 수익성이 유지되는 한 채굴자는 대규모 사업자에서 소규모 분산형으로 형태를 바꿔 ‘지하’에서 생존을 도모하는 경향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진단이다. 과거 러시아와 나이지리아, 인도, 짐바브웨 등이 암호화폐를 불법화했다가 점차 규제 체계 구축 방향으로 선회한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시장 차원에서는 중국의 복귀가 해시파워의 지리적 분산이라는 비트코인 네트워크의 특성을 다시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됐다. 특정 국가가 채굴을 강하게 규제할 경우 해시파워는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거나, 중국처럼 금지령 속에서 비공식 네트워크를 재구축하는 방식으로 재편돼 왔다. 중국의 지하 채굴 부활은 제도와 기술, 이익 동기가 충돌하고 재조정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최신 사례로, 향후 각국 규제 당국과 채굴 업계 모두에게 장기적인 정책·사업 전략 재점검을 요구하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박선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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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비트코인#지하채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