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그때까지 조용히 해, 돼지야”…지미키멀, 트럼프 조롱하며 표현의 자유 공방 재점화

배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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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시각 21일, 미국(USA) 로스앤젤레스에서 방영된 ABC 토크쇼 지미 키멀 라이브에서 진행자 지미 키멜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공개적 해고 요구에 직설적으로 맞받아치며, 미국 정치풍자와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이번 공방은 트럼프를 둘러싼 각종 스캔들과 막말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코미디 프로그램이 정치 쟁점의 전면에 나선 사례로 주목받는다.

 

현지시각 20일 저녁 방송에서 키멜은 트럼프가 자신의 소셜미디어 플랫폼 트루스 소셜에 남긴 글을 직접 언급하며 말문을 열었다. 트럼프는 해당 글에서 “ABC 가짜 뉴스는 왜 지미 키멀 같이 재능 없고, 시청률도 낮은 사람을 방송하게 두나. 그놈을 방송에서 당장 치워버려라”라고 적어, 방송사에 사실상 출연 중단 압력을 가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지미 키멜 라이브 인스타그램
지미 키멜 라이브 인스타그램

키멜은 “대통령이 나를 방송에서 해고하라고 요구한 게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고 운을 뗀 뒤, 트럼프 글이 올라온 시각을 꼬집으며 “그 내용을 올린 시간이 동부 기준으로 쇼가 끝난 지 11분 후다. 참 고마워. 생방송을 봐주네. 유튜브 말고 TV로 봐줘서 고마워요. 아이러니하게도, 당신 같은 시청자 덕분에 우리가 방송을 계속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의 공격이 오히려 시청률과 화제성을 높여준다는 역설을 풍자한 것이다.

 

이어 키멜은 사퇴를 둘러싼 조건을 언급하며 수위를 높였다. 그는 “당신이 나갈 때 나도 나가겠다. 우리 한 팀이 되는 거다”라고 한 뒤, “당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때까지 조용히 해, 돼지야’”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최근 트럼프가 전용기에서 ‘엡스타인 파일’ 공개와 관련한 질문을 던진 여성 기자에게 “조용히 해, 돼지야”라고 말해 거센 비판을 받은 장면을 그대로 되돌려준 것이다.

 

트럼프와 키멜의 갈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키멜은 트럼프 집권기부터 모노로그와 코미디 스케치를 통해 트럼프의 이민 정책, 팬데믹 대응, 사법 리스크 등을 꾸준히 풍자해 왔다. 특히 지난 9월 보수 논객 찰리 커크 암살 사건 이후 트럼프 측과 지지층의 비난이 거세지자,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을 받았고 지미 키멀 라이브 방영이 일시 중단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방송에 복귀하면서 키멜은 정치 권력이 코미디를 직접 겨냥하는 행태가 표현의 자유를 위협한다고 경고했다. 그는 당시 “학교 다닐 때 거의 집중하지 않았지만 레니 브루스, 조지 칼린, 하워드 스턴에게 배운 한 가지가 있다. 그건 바로 대통령이 싫어하는 코미디언을 침묵시키겠다는 위협은 반미적이라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을 말하지 않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코미디계 전설들의 이름을 언급하며, 풍자와 비판을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로 지적한 것이다.

 

키멜은 이번 방송에서도 트럼프의 방송 개입 시도가 되레 역효과를 낳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트럼프는 제 출연을 취소하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오히려 수백만 명의 시청자들이 시청하게 됐다. 큰 역효과를 낳은 거다”라고 지적하며, 트럼프가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제프리 엡스타인 관련 파일 공개 카드를 꺼낼 수도 있다고 비꼬았다.

 

트럼프의 트루스 소셜 활동과 언론·방송인을 향한 거친 표현은 미국 내에서 반복적으로 논란이 돼 왔다. 뉴욕타임스(NYT)를 비롯한 미국 주요 매체들은 트럼프의 이번 발언을 두고, 공적 권력을 행사했던 전 대통령이 특정 프로그램의 퇴출을 공개적으로 요구한 행위가 방송사 편집권과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는 방식으로 비칠 수 있다고 전했다. 반면 보수 성향 매체 일부는 키멜의 정치 풍자가 “편파적”이라고 비판하며 트럼프 지지층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다.

 

이번 설전은 미국 대선 정국을 앞두고 정치 풍자 프로그램들이 다시금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흐름과 맞물려 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와 코미디계의 대립이 단순한 개인 감정 싸움이 아니라, 언론 자유와 정치 권력의 한계를 둘러싼 상징적 충돌이라고 보고 있다. 한편 트럼프 캠프와 ABC 측은 이번 논쟁에 대해 별도의 공식 입장을 내지 않은 상태다.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미국 내부 논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트럼프와 지미 키멀의 공방이 앞으로 정치 풍자 프로그램과 보수 진영 간 대립 구도를 어떻게 재편할지 주목된다.

배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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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키멀#도널드트럼프#지미키멀라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