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겨울엔 전기, 여름엔 물 돌려쓴다”…카자흐·우즈베크·키르기스, 에너지·수자원 맞교환 합의

윤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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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시각 기준 최근 카자흐스탄(Kazakhstan) 알마티에서 열린 회의에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Uzbekistan), 키르기스스탄(Kyrgyzstan) 3국이 겨울철 전력과 농번기 관개용수를 맞교환하는 새로운 협력 체계를 구축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조치는 전력난에 시달려온 키르기스스탄의 에너지 수급 안정을 도모하는 동시에, 농업 의존도가 높은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의 물 부족 우려를 완화하려는 시도가 겹쳐져 나온 해법으로 평가된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3국 수자원 및 에너지부 장관들은 알마티에서 회담을 갖고, 가을과 겨울철에는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이 키르기스스탄에 전력을 공급하고, 이듬해 농번기에는 키르기스스탄이 하류 지역인 양국으로 관개용수를 흘려보내는 구조의 협정을 체결했다. 회담은 키르기스스탄 최대 수력발전시설인 토크토굴 수력발전소의 댐 수위 저하로 전력 생산이 차질을 빚는 상황에서 열렸다.

카자흐·우즈베크, 키르기스에 겨울철 전기 공급…농번기 관개용수 교환 합의
카자흐·우즈베크, 키르기스에 겨울철 전기 공급…농번기 관개용수 교환 합의

합의에 따라 키르기스스탄은 외부에서 도입한 전력으로 자국 수력발전소 가동률을 일부 낮춰 댐에 물을 비축한다. 이렇게 쌓인 물은 다음 해 농업용 관개수로 전환돼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하류 농경지로 공급된다. 에너지와 수자원을 계절에 따라 상호 보완적으로 운용해 전력난과 물 부족 문제를 동시에 관리하겠다는 구상이다.

 

3국은 전력·물 교환과 병행해 공동 절전 대책을 마련해 시행하기로 했으며, 에너지 효율 제고와 수요 관리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우즈베키스탄은 키르기스스탄을 대상으로 발전 관련 기술 협력도 제공하기로 합의해, 인프라 현대화와 시스템 고도화를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3국 관계자들은 이번 협정이 상호 선린관계를 반영한 조치라면서, 중앙아시아 지역의 에너지 안보와 역내 안정을 강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합의의 핵심 인프라인 토크토굴 수력발전소는 키르기스스탄 남부 잘랄아바드주 나린강에 건설됐으며, 중앙아시아 전력 생산과 관개용수 조절에서 중추 역할을 맡고 있다. 발전소는 키르기스스탄 전체 전력 수요의 약 40%를 담당하고,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 흘러가는 농업용수량을 조절한다. 1970년대 중반 옛 소련 시기에 가동을 시작했으며, 최근 키르기스스탄 당국은 네 번째 발전기를 가동해 설비용량을 1200MW에서 1440MW로 확대했다.

 

그러나 최근 댐 수위 하락세가 이어지면서 설비 증설에도 불구하고 기대만큼의 전력 생산이 이뤄지지 않는 상태가 지속돼 왔다. 기후 변화로 인한 강수 패턴 변화와 눈 녹은 물 유입 감소, 수요 증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댐 운영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돼 왔다. 이 같은 여건 속에서 겨울철 난방 수요가 집중되는 키르기스스탄의 전력난은 반복적인 사회·경제적 불안 요인으로 지목돼 왔다.

 

협정에는 역내 전력망을 활용한 제3국 전력 도입 계획도 포함됐다.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은 각각 자국 전력망을 통해 러시아(Russia)와 투르크메니스탄(Turkmenistan) 전력을 키르기스스탄으로 송전하기로 했다. 겨울철 전력 공급원을 다변화해 단일 수력원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외부 충격에 대한 회복력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중앙아시아에서는 소련 시절 중앙 집권식 계획경제 체제 아래 수자원과 전력·천연가스를 상호 교환하는 통합 시스템이 운영돼 왔다. 상류국은 여름철에 관개용수를 공급하고, 하류의 에너지 부국은 겨울철에 전기와 가스를 제공하는 구조였다.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각국이 독립하면서 이 통합 시스템은 크게 흔들렸고, 상류·하류 국가 간 물과 에너지 배분을 둘러싼 갈등이 지속돼 왔다.

 

3국은 이후 수자원과 에너지 분야 협력 체계를 재정립하기 위한 논의를 간헐적으로 이어왔으며, 이번 합의는 그러한 시도의 연장선에서 나온 결과로 해석된다. 상류의 수력 자원국과 하류의 농업·에너지 수요국이 다시 한번 상호 의존 관계를 제도화하는 장치로 기능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지역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를 중앙아시아 에너지·물 관리 체제의 부분적인 복원으로 보면서도, 협정 이행 과정에서 연간 강수량, 기온 상승, 전력 수요 급증 같은 변수들이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한다. 특히 기후 변화와 경제 성장에 따른 수요 확대가 맞물리는 상황에서, 계절별 수위 조절과 방류량 합의가 향후 갈등 요인으로 재부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럼에도 키르기스스탄의 전력난 완화와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의 농업용수 확보를 동시에 겨냥한 이번 협정은, 중앙아시아가 에너지 안보와 물 안보를 패키지로 묶어 관리하려는 움직임의 상징적 사례로 꼽힌다. 향후 합의 이행 상황과 후속 협상에 따라, 지역 협력의 새로운 모델로 자리 잡을지 주목되고 있다.

윤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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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키르기스스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