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2인자 책임 방기”…한덕수 전 총리에 징역 15년 구형, 내란 방조 공방 격화
정권 핵심을 둘러싼 내란 방조 책임 공방이 법정에서 정면 충돌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로 기소된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 대해 특검이 중형을 요청하면서, 국정 2인자를 향한 역사적 단죄 여부가 정치권과 사회 전반의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26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3부 심리로 열린 한 전 총리 사건 결심 공판에서 12·3 비상계엄 사태 특검팀은 한 전 총리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특검은 한 전 총리가 대통령 제1보좌기관이자 행정부 2인자로서 계엄 선포를 제지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음에도, 오히려 내란 범행을 방조해 국가와 국민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고 주장했다.

특검은 한 전 총리가 비상계엄 선포 전후 과정에서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서의 의무를 저버렸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통령의 권한 남용을 견제해야 할 책임이 있음에도 내란 범행에 가담했고, 사후에는 절차적 하자를 바로잡는 척하며 비상계엄 조치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다”고 강조했다. 특검은 한 전 총리가 계엄 선포 과정뿐 아니라 이후 대응에서까지 헌법 수호 의지를 보여주지 못했다고 공격했다.
특검은 특히 12·3 비상계엄 조치가 “과거 내란보다 더 큰 국격 손상을 초래했고, 국민에게 깊은 상실감을 안겼다”고 평가했다. 뉴시스에 따르면 특검은 이날 결심에서 “12·3 비상계엄 사태는 한국 민주주의의 성과를 한순간에 훼손했고, 한국의 국제 신인도와 국가 경쟁력을 추락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고도 지적했다. 특검은 재차 “본 사건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대한 테러”라며 한 전 총리에 대한 엄중한 처벌 필요성을 부각했다.
양형 사유로는 허위공문서 작성 등 사법 방해 성격의 범죄가 함께 거론됐다. 특검은 한 전 총리가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진술을 번복하며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인 점도 형량에 반영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또 강의구 전 대통령실 부속실장이 작성한 사후 계엄 선포문에 윤석열 전 대통령,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과 함께 서명한 뒤 폐기한 점,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증인 출석 당시 계엄 선포문 인지 사실을 부인해 위증했다는 혐의를 구체적으로 열거했다.
특검은 과거 군사정권 관련 판결을 인용하며 한 전 총리의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다고 주장했다. 특검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재판 당시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주영복 전 국방부 장관 사건을 언급하며, 판결문 중 “힘에 밀려 소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변명은 하료의 일”이라는 대목을 다시 꺼냈다. 이어 1996년 서울고등법원 판결을 근거로 “지위가 높고 책임이 막중한 인물이 내란 사태를 막지 못한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며, “헌법을 유린하는 내란 세력으로부터 정부를 보위하고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할 의무를 다하지 못한 점을 법원이 엄중히 지적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 전 총리에게도 동일한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전 총리는 국무총리로서 대통령의 자의적 권한 행사를 견제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법 비상계엄 선포를 방조한 혐의로 지난해 8월 재판에 넘겨졌다. 특검은 당초 한 전 총리에게 내란 우두머리 방조 혐의를 적용했으나, 재판부 권고에 따라 우두머리 방조가 인정되지 않는 경우를 대비해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를 별도로 판단해 달라며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한 전 총리의 법적 책임 범위를 두고 복수의 혐의를 검토하게 됐다.
한 전 총리 측은 법정에서 직접적인 내란 공모나 지시가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방어에 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변호인단은 계엄 선포 당시 한 전 총리가 군 통수나 계엄 실행 라인에 있지 않았고, 대통령의 결정을 현실적으로 제어하기 어려웠다는 취지의 주장을 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특검은 앞선 판례를 재차 언급하며 “힘에 밀려 어쩔 수 없었다는 논리는 책임 회피에 불과하다”고 맞섰다.
이날 법정에서는 재판부를 둘러싼 최근의 갈등 상황도 언급됐다. 재판장 이진관 부장판사는 결심 공판을 시작하며 최근 법정 질서 위반 사태와 관련해 대법원과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재판부 보호 조치를 취한 데 대해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는 전날 법원행정처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변호인단을 법정모욕과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 고발하고, 서울중앙지방법원이 대한변호사협회에 징계를 요청한 조치를 겨냥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계엄 사태 재판을 둘러싼 긴장국면이 사법부 내부와 변호인단 사이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재판부는 한 전 총리의 선고기일을 내년 1월 21일 또는 28일 가운데 하루로 제시했다. 선고일은 추후 확정될 예정이다. 예정대로라면 내란 혐의로 기소된 국무위원 가운데 한 전 총리가 첫 사법 판단을 받는 사례가 된다. 이에 따라 재판 결과는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다른 관련자 재판의 양형 기준과 법리 판단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치권에서는 선고 시점과 수위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여야 모두 계엄 사태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주장해 왔지만, 법원의 첫 판단이 구체화되면 향후 국정조사, 특별법 제정 논의, 검찰·특검 수사 연장 여부 등을 둘러싼 공방이 한층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향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계엄 사태에 대한 정치적 책임 소재를 둘러싼 공세와 방어가 재점화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이번 재판은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사법적 판단이 본격화되는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내년 1월 선고가 내려지면, 국회와 정부, 정치권은 이를 근거로 계엄 관련 제도 보완과 헌정 질서 수호 방안 논의에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는 관련 상임위원회를 중심으로 추가 진상 규명과 제도 개선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며, 정부도 향후 계엄 선포 절차와 권한 통제 장치 강화를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