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 안된 한방 난임치료”…서울시의사회, 지원중단 촉구 파장
한방 난임치료 지원사업을 둘러싼 의학·정책 논쟁이 격화되고 있다. 정부 부처와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해 온 한방 난임치료에 대해 서울특별시의사회가 “효과와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며 전면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생식의학 영역은 고위험 의료 분야로 분류되는 만큼, 검증되지 않은 치료에 공공재정을 투입할 경우 산모와 태아의 건강뿐 아니라 국가 의료 재정에도 중대한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에서는 한의약과 현대의학 간 근거 중심 의료 체계 확립을 둘러싼 갈등이 재점화되는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서울시의사회는 22일 발표한 성명에서 난임 치료를 “산모와 태아의 생명과 건강이 직접 연관된 고위험 의료 영역”으로 규정하며, 해당 영역의 모든 치료와 정책은 엄격한 과학적 근거와 객관적 검증을 전제로 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이어 현재 지방자치단체 등을 통해 시행 중인 한방 난임치료 지원사업은 이러한 기본적인 의학적·정책적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채 제도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울시의사회는 한방 난임치료의 효과를 입증할 대규모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과 장기 추적 연구가 현저히 부족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약효와 부작용을 체계적으로 비교·검증하는 임상 설계가 국제 기준에 맞춰 이뤄지지 않았고, 의료 현장에서 재현 가능한 표준화된 치료 프로토콜과 명확한 적응증도 정립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의사 출신인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과거 한방 난임치료는 과학적으로 입증하기 어렵다는 취지의 견해를 밝힌 점도 다시 소환했다.
안전성 문제는 더 심각한 쟁점으로 제기됐다. 서울시의사회는 한방 난임치료에 사용되는 한약재가 산모와 태아에 미칠 수 있는 독성, 기형 유발 가능성, 유산 위험 등에 대해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사전 검증 및 안전성 관리 체계가 부재한 상태라고 주장했다. 생식독성, 태아기 기형 유발 여부, 장기 복용 시 대사·간독성 영향 등을 평가하는 전임상과 임상 안전성 데이터가 공적으로 공유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자체 예산과 건강 관련 예산이 투입되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비판했다.
의사회는 공적 재정이 뒷받침되는 사업일수록 근거 중심 의료 원칙을 우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치료에 대한 공적 지원은 난임 여성에게 과도한 기대를 심어주고, 체외수정 등 이미 효과와 안전성이 검증된 보조생식술 및 표준 난임 치료로의 접근을 늦출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이 과정에서 치료 시기를 놓치면 성공률 저하, 반복 시술 증가로 이어져 개인 의료비와 사회적 비용이 장기적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서울시의사회는 기존에 의학적으로 검증된 보조생식술과 표준 난임 치료가 확립돼 있는데도, 과학적 검증을 거치지 않은 한방 난임치료를 공공정책으로 지원하는 것은 공공의료 정책의 방향성과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정책 당국이 ‘치료 선택권 확대’라는 명분을 내세우더라도, 근거 없는 의료 행위를 제도화하는 것은 정당화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의료 서비스 선택권은 근거 기반의 안전성과 효과를 전제로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시의사회는 해결책으로 네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과학적 근거와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한방 난임치료 지원사업을 즉각 중단하고 전면 폐기할 것을 요구했다. 둘째, 한방 난임치료에 사용되는 한약재 전반에 대해 독성, 기형 유발 가능성, 유산 위험 등을 포함한 정밀 검증을 진행하고 그 결과를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제안했다. 셋째, 난임 관련 재정 지원은 효과성과 안전성이 검증된 의료 기술과 서비스에 우선 배분하는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넷째, 한의계에는 비과학적 치료 행위를 중단하고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근거를 책임 있게 제시하라고 촉구했다.
난임과 생식의학은 의료기술 발전과 함께 산업적 중요성도 확대되는 분야다. 체외수정, 배아선별, 유전체 분석 기반 착상 전 유전진단 등 첨단 기술이 병행되면서 성공률을 높이는 표준 치료가 빠르게 고도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임상 근거가 부족한 치료법에 공적 예산이 배분될 경우, 난임 의료 서비스의 질 관리와 국가 난임 정책의 일관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된다.
서울시의사회는 “산모의 건강과 태아의 생명보다 우선하는 가치는 없다”며 의학적 검증 없이 설계된 정책은 국민 신뢰를 잃을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이어 과학과 근거에 기반하지 않은 의료 정책, 특히 재정 지원이 수반되는 사업은 재검토를 넘어 중단 수준의 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한방 난임치료 지원사업의 향후 존폐를 둘러싼 정책 결정 과정을 예의주시하겠다고 밝혔다. 산업계와 의료계는 이번 논쟁이 난임 정책 설계와 한의약 관련 공공재정 투입 기준을 재정립하는 계기가 될지 주목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