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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컬AI로 현실 누비는 로봇…한국, 제조강국 넘어 1등 도전

서윤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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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안에 갇혀 있던 인공지능이 로봇을 통해 현실 공간으로 확장되는 피지컬AI가 차세대 산업 패러다임으로 부상하고 있다. 제조 공장과 물류센터, 일상 생활 공간까지 실제 물리 환경에서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AI 로봇이 핵심 축으로 떠오른 가운데, 한국이 제조 강국의 인프라를 기반으로 피지컬AI 선도국을 노린다는 전략이 구체화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데이터 주도권과 휴머노이드 기술력이 글로벌 경쟁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데니스홍 미국 UCLA 교수는 20일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 개최한 피지컬 AI 인터내셔널 포럼 2025 기조연설에서 컴퓨터 밖으로 나온 AI의 의미를 짚었다. 그는 챗GPT와 달리, 소라 등 생성형 AI를 언급하며 이들이 다루는 텍스트, 이미지, 영상은 모두 디지털 영역에 머물러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AI가 “실제 세계에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로봇이 스스로 보고 판단하고 움직이는 단계, 즉 피지컬AI로 확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 교수는 피지컬AI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으로 데이터를 지목했다. 기존 생성형 AI가 인터넷과 대규모 오픈 데이터에서 학습한 것과 달리, 휴머노이드 로봇이 필요로 하는 보행, 균형, 충격, 관절 가속도 같은 물리 데이터는 온라인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짚었다. 그는 “로봇을 위한 데이터 확보가 가장 큰 문제”라며 “데이터는 금과 같다. 충분히 축적되면 로봇이 진정한 자율성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연구 현장에서는 시뮬레이션 환경을 통해 로봇 데이터를 확보하려 하지만, 실제 환경에서 그대로 재현되지 않는 한계가 있다. 확장현실 장비를 활용해 사람이 로봇을 직접 조종하는 방식도 동원되지만, 조작 기록 외에 로봇 자체의 정교한 물리 데이터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실제 로봇을 장기간 구동해 데이터를 모으는 방법도 있지만, 보행 로봇의 경우 반복적인 낙상과 충격으로 하드웨어 손상이 빈번해 비용과 시간 부담이 크다고 설명했다.

 

휴머노이드가 피지컬AI 논의에서 중심에 서는 이유도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홍 교수는 “형태가 기능을 따른다”고 강조하며, 인간을 위해 설계된 공간에서는 결국 사람과 유사한 형태의 로봇이 효율적이라고 분석했다. 집 안 구조와 문 손잡이, 계단, 각종 도구가 모두 사람을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휴머노이드는 기존 인프라를 그대로 활용하면서 공장과 건물의 레이아웃을 바꾸지 않고도 투입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특히 산업 현장에서 휴머노이드가 갖는 경제적 효용도 언급됐다. 공장의 작업 공정이 변경되더라도 환경 자체를 다시 설계할 필요 없이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만 작업 내용을 전환할 수 있어 생산 유연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는 기존 산업용 로봇이 라인 변경 때마다 장비와 레이아웃을 크게 손봐야 했던 구조적 한계를 보완하는 방향으로 읽힌다.

 

홍 교수는 UCLA 내 자신의 연구소 로멜라에서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 아르테미스를 피지컬AI 구현 사례로 소개했다. 아르테미스는 축구 로봇 대회 로보컵에서 여섯 차례 우승을 차지한 플랫폼으로, 외부 충격에도 쉽게 넘어지지 않는 보행 안정성과 균형 제어 능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실제 경기장에서 동적 충돌과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다수 경험하며 축적한 제어 데이터가 경쟁력의 기반이 됐다는 설명도 더해졌다.

 

눈에 띄는 점은 아르테미스의 기술을 오픈소스로 공개했다는 대목이다. 하드웨어 설계도뿐 아니라 제어 소스코드와 알고리즘까지 개방해 글로벌 연구자들이 자유롭게 검증·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홍 교수는 중국에서 아르테미스를 거의 그대로 모방해 특허를 출원한 사례를 언급하면서도 “모방은 최고의 칭찬”이라고 평가했다. 아이디어 공유를 통해 생태계 전체의 기술 발전 속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며, 현재 휴머노이드 경쟁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치열한 만큼 한국에서도 새로운 연구가 적극적으로 나오길 바란다고 했다.

 

정부와 공공기관은 한국이 피지컬AI에서 세계 상위권 도약을 노릴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고 보고 있다. 류제명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차관은 한국의 제조 경쟁력을 언급하며 “지금은 피지컬AI 중심 국가로 도약할 절호의 기회”라고 평가했다. 이어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데이터, 서비스까지 아우르는 풀스택 생태계 구축을 정책 방향으로 제시했다.

 

박윤규 정보통신산업진흥원 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AI 시대에 하루 늦으면 한 세대가 뒤처진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예산 확대 계획을 소개했다. 정부는 내년도 AI 관련 예산을 올해의 세 배 수준인 10조원으로 편성한 상태다. 박 원장은 피지컬AI에 필요한 산업 도메인별 데이터를 고르게 확보한 점을 한국의 강점으로 꼽으며 “이 기반을 활용하면 피지컬AI 분야에서 세계 1등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기정통부 박태완 국장도 피지컬AI를 “AI가 현실세계로 나와 우리 생활 곳곳에서 작용할 다음 세대 기술”로 정의하며, 한국이 이를 산업 현장에 적용하는 데 가장 준비된 나라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국내 제조, 물류, 건설, 의료 등 여러 분야에서 로봇 도입 경험과 데이터 인프라가 축적돼 있어, 피지컬AI를 빠르게 시험 적용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돼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내년부터 피지컬AI 구현의 핵심인 월드 모델 개발에 예산 15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월드 모델은 로봇이 현실 세계의 물리 법칙과 환경 변화를 내부에서 추론하고 예측하도록 하는 기반 모델로, 인간의 직관을 흉내 내는 시뮬레이션 두뇌에 해당한다. 정부는 이를 통해 센서, 제어, 네트워크, 클라우드까지 연계되는 핵심 기술과 플랫폼을 단계적으로 구축해 글로벌 빅테크에 종속되지 않는 생태계를 만든다는 구상이다.

 

전문가들은 피지컬AI가 본격 상용화될 경우 제조와 물류 자동화 수준이 한 단계 높아지고, 고령화와 노동력 부족 문제 완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동시에 데이터 수집 과정에서의 안전 기준, 로봇 사고 책임 소재, 작업자 일자리 전환을 둘러싼 제도와 윤리 논의도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계는 한국이 데이터와 제조 역량, 정책 지원을 앞세워 피지컬AI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서윤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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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홍#피지컬ai#아르테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