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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마약 오남용 징후 잡는다”…식약처, 미래세대 보호 총력

조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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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과 빅데이터가 의료용 마약류 관리에 접목되면서, 국내 마약 중독 예방 전략이 기존 사후 규제 중심에서 사전 예측·차단 체계로 전환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청소년과 청년층을 주요 대상으로 한 대규모 예방 교육과 함께, AI 기반 감시 시스템을 연계해 미래세대의 마약 접근성을 근본적으로 낮추겠다는 방침이다. 업계와 공공의료계에서는 이번 시스템이 향후 디지털 헬스케어 규제와 맞물려 국내 마약류 안전관리 패러다임을 재편할 변곡점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강백원 식품의약품안전처 마약안전기획관은 최근 인터뷰에서 한국 사회의 마약 상황을 의료 현장의 골든타임에 비유하며 지금이 중독 예방과 치료 개입의 결정적 시기라고 진단했다. 특히 대학가 연합동아리에서 대마와 신종마약류가 조직적으로 유통된 사례 등 마약이 청년층 일상 깊숙이 침투한 사건들이 연이어 드러난 점을 들어, 범죄 단속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고 강조했다.

식약처 전략의 첫 축은 교육이다. 강 기획관은 나이가 어릴수록 중독 예방 교육의 효과가 크다는 연구 결과를 근거로 유아부터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까지 전 생애 초기 단계에 집중하는 정책 방향을 설명했다. 식약처는 2023년 69만 명을 대상으로 마약 중독 예방 교육을 실시한 데 이어 2024년에는 228만 명으로 대상을 3.3배 확대했다. 이 가운데 159만 명, 약 70퍼센트가 청소년으로 전체 초·중·고교생의 약 30퍼센트를 차지한다.

 

기관은 장기적으로 교육 대상을 더 넓힌다. 2030년까지 전체 학생 수 513만 명 중 절반 수준까지 교육 범위를 확대해, 현재 초등학생이 성인에 이르는 시점까지 최소 한 세대 이상 연속적인 예방 교육을 이어가겠다는 계획이다. 마약을 호기심의 대상이 아닌 치료가 필요한 질병으로 인식하도록 하는 인지 전환이 핵심 목표다.

 

두 번째 축은 기술 기반 관리 강화다. 우리나라에서는 의료기관 처방을 통해 접하는 의료용 마약류가 중독의 시작점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2024년 기준 의료용 마약류 처방 환자 수는 2001만 명, 처방량은 약 18억 2633만 개에 이르러 증가 추세가 뚜렷하다. 식욕억제제, 메틸페니데이트, 프로포폴 등 특정 성분을 중심으로 오남용 우려가 커지면서, 정부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정밀 관리 체계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식약처가 내놓은 대표적 디지털 도구가 AI 기반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 예측 모델 K-NASS다. 기존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이 병원과 약국의 취급 내역을 사후에 보고받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K-NASS는 여기 축적된 빅데이터를 인공지능으로 분석해 환자별·의료기관별 위험 패턴을 예측하는 개념이다. 강 기획관은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에 축적되는 모든 취급 정보와 유관기관 연계 데이터를 다각도로 연계 분석해, 고위험 처방 패턴을 조기에 포착하고 관리 경보를 높이는 방향으로 모델을 고도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온라인상 불법 유통에 대응하기 위한 AI 기반 모니터링 시스템 AI 캅스도 11월부터 정식 운영에 들어갔다. AI 캅스는 다크웹과 SNS, 일반 온라인 채널 등에서 마약 구매를 암시하는 키워드와 광고 문구를 상시 수집해, 인공지능으로 불법 유통 및 과대 광고 여부를 자동 판별하는 구조다. 탐지된 정보는 관계기관과 공유돼 신속 차단과 수사 협조로 이어진다. 기존에는 수작업 검색과 신고 의존 체계가 주를 이뤘던 만큼, 시스템 도입으로 감시 범위와 속도가 크게 개선된 것으로 평가된다.

 

의료현장에서는 의료쇼핑을 차단하는 정보망이 작동 중이다. 의료쇼핑이란 여러 의료기관을 돌아다니며 처방전을 반복 발급받는 행위를 뜻한다. 식약처는 환자의 최근 1년간 마약류 투약 내역을 조회할 수 있는 의료쇼핑방지 정보망을 운영하며, 특히 강력 진통제인 펜타닐 패치제에 대해서는 의사가 의무적으로 투약 기록을 확인한 뒤 처방하도록 제도를 설계했다.

 

제도 시행 1년간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펜타닐 패치제 처방 환자 수는 28.8퍼센트, 처방 건수는 23퍼센트, 처방량은 16.9퍼센트 각각 감소했다. 이로 인해 약품비와 조제료를 합쳐 최소 6억 8천만 원 이상의 약제비 절감 효과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의료 오남용과 중독 위험을 줄이면서 의료재정 부담까지 완화한 구체적 성과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글로벌 차원에서도 마약류 관리는 점차 디지털 기반 예측 관리로 옮겨가는 추세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처방약 모니터링 프로그램과 온라인 불법 유통 탐지 시스템을 연계해, 마약성 진통제의 과다 처방과 인터넷 판매를 동시에 관리하는 구조가 확산되고 있다. 한국의 K-NASS와 AI 캅스는 이와 유사한 흐름 속에서 국내 사정에 맞춘 모델로, 향후 국제 공조와 데이터 교류의 기반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의료용 마약류 접근성을 과도하게 제한할 경우, 통증 관리가 필요한 중증 환자의 치료 접근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이에 따라 식약처는 의사의 전문적 판단과 환자의 치료권을 전제로, 명백한 위험 신호가 포착된 사례 위주로 정밀 관리하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 중독을 범죄가 아닌 질병으로 보고, 적절한 치료와 사회복귀 지원을 병행해야 한다는 인식도 정책 전반에 반영되는 분위기다.

 

강 기획관은 의료용 마약류를 스스로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환자와 의료진 모두가 처방 기준을 엄격히 준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마약류는 한번 사용 경험만으로도 뇌에 강하게 각인될 수 있을 정도로 중독성이 강한 만큼, 일시적 호기심이나 편의에 따른 사용이 장기적 중독과 일상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한편 식약처는 중독 이후 단계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도 강화하고 있다. 중독자가 재차 마약에 손을 대지 않고 회복할 수 있도록, 전문 상담과 사회재활을 연계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운영 중이다. 강 기획관은 익명 상담을 원하는 이들이 언제든지 전문 상담 인력과 연결될 수 있는 마약류 전화상담센터를 통해 자신과 가족, 지인의 중독 문제를 털어놓고 도움을 구해달라고 말했다.

 

산업계와 의료계에서는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한 이번 마약류 관리 고도화가 디지털 헬스케어, 처방 데이터 활용 규제, 개인정보 보호 논의와 맞물리며 새로운 제도 논쟁을 촉발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중독을 막기 위한 기술의 진화가 실제 사회 전반의 인식 변화와 제도 정비로 이어질지에 따라, 미래세대 보호 전략의 실질적 성과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조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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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약처#강백원#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