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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조작정보 5배 배상제 도입…플랫폼 자율규제로 부작용 완화 노린다

박선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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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조작정보 규제가 플랫폼 산업의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내년 7월부터 악의적 허위조작정보를 반복적으로 유포하는 대형 유튜버 등 정보게재자는 실제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 책임을 질 수 있게 된다. 정부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을 통해 수익 창출을 겨냥한 허위콘텐츠 생산 동기를 약화시키는 한편, 플랫폼 자율규제와 팩트체크 인프라를 병행해 디지털 생태계 전반의 신뢰를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업계에서는 표현의 자유, 공익 제보 위축 우려와 함께 국내외 플랫폼 규제 프레임 변화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는 30일 국무회의에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공포안이 의결됐다고 밝혔다. 개정 정보통신망법은 허위조작정보 게재자에 대한 가중 손해배상제 도입, 대형 플랫폼 사업자의 허위조작정보 자율규제 의무화, 정보통신서비스투명성 센터 설립 근거 마련 등을 핵심 내용으로 담고 있으며, 내년 7월 5일부터 시행된다.

새 제도에서 핵심은 일정 기준을 넘는 정보게재자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이다. 정보게재수와 구독자수 등 영향력을 고려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게재자 가운데 사실과 의견 전달을 업으로 하는 자가 대상이다. 이들이 유통한 허위조작정보에 대해 의도성, 목적성, 법익 침해 여부가 동시에 인정되는 경우 법원은 손해액의 5배 범위 내에서 가중 배상액을 산정할 수 있다. 기술적으로는 조회수 기반 광고 수익, 협찬, 구독 후원 등 플랫폼 기반 수익 모델 자체를 억제 지점으로 삼아, 허위조작정보 생산의 경제적 인센티브를 차단하는 구조다.

 

정부는 다만 언론의 자유와 공익 제보 기능을 최대한 보장하는 장치를 병행했다. 가중 배상 대상에서 공익신고자보호법상 공익침해 행위와 관련된 정보,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를 금지하는 법률에서 규정한 위반 행위에 대한 정보, 그리고 이에 준하는 공익적 관심사에 해당하는 정보 등 공공의 이익을 목적으로 한 정보는 제외했다. 결과적으로 공익 제보, 부패 폭로, 공적 사안에 대한 비판적 논평 등은 허위조작정보 규제 범위 밖에 두어, 공공 영역에 대한 감시와 토론 기능을 유지하겠다는 취지다.

 

가중 손해배상 도입과 함께 공직 후보자와 공공기관의 장 등 공인이 규제를 악용하지 못하도록 절차적 장치도 새로 들어갔다. 법원 중간판결 제도를 통해 손해배상 책임 유무에 대한 사전 판단 절차를 두고, 공인은 이 중간판결을 공표할 의무를 진다. 만약 공인이 이 제도를 이용해 정당한 비판이나 공익적 정보 유통을 과도하게 제약한 것으로 판단될 경우 역으로 배상 책임을 지는 구조를 설계해, 공공의 이익과 관련된 정보가 정치적 소송 전략에 의해 위축되지 않도록 했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이러한 가중 손해배상 제도가 허위조작정보 유통의 주요 유인 중 하나인 수익 창출 경로를 직접 겨냥해, 악의적 정보 생산과 전파를 억제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민의 재산권뿐 아니라 명예, 사생활 등 인격권 보호 수준도 한층 강화될 것이라는 기대를 내놓고 있다.

 

두 번째 축은 대규모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 대한 자율규제 정책 의무화다. 이용자수와 서비스 종류 등을 고려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일정 규모 이상의 플랫폼 사업자는 허위조작정보 유통 방지를 위한 자체 규정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한다. 이용자 누구나 허위조작정보를 플랫폼에 신고할 수 있고, 사업자는 신고에 따라 표시 경고, 노출 제한, 삭제, 알고리즘 조정 등 다양한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된다. 이는 글로벌 플랫폼이 이미 운영 중인 커뮤니티 가이드라인, 팩트체크 라벨링, 추천 알고리즘 조정 등과 유사한 자율규제 장치를 국내 법제 내로 끌어들인 것이다.

 

특히 정부는 사업자 자율규제와 관련한 처벌 규정을 삭제해 과도한 형사·행정 책임 부담을 줄였다. 허위조작정보 유통 방지를 강화하면서도 플랫폼이 새로운 모니터링 기술과 정책을 유연하게 설계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겼다. 인공지능 기반 콘텐츠 분석, 자동 플래깅 시스템, 외부 팩트체크 기관 연계 등 기술적·운영상 수단을 기업이 경쟁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을 유도해, 규제가 산업 혁신을 가로막는 대신 정보 신뢰성 향상을 위한 서비스 경쟁을 촉발하는 방향을 노린 셈이다.

 

세 번째 축은 팩트체크 인프라 구축이다. 방미통위는 사실확인 단체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정보통신서비스투명성 센터를 설립할 수 있는 근거를 신설했다. 이 센터는 민간 팩트체크 조직과의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허위조작정보 관련 연구, 교육, 국제 협력을 지원하는 허브 역할을 맡는다. 동시에 이용자의 허위조작정보 식별 능력을 높이는 미디어 리터러시 프로그램을 개발해 배포함으로써, 규제와 함께 이용자 측 대응 역량을 높이는 이중 전략을 취하겠다는 계획이다.

 

주목할 지점은 허위조작정보의 법적 지위를 기존 불법정보와 구분했다는 점이다. 개정 법률은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 대상인 불법정보와 달리 허위조작정보를 심의 대상에서 제외했다. 행정심의를 통한 사전·사후 규제 대신 민사상 손해배상과 자율규제, 팩트체크 지원에 비중을 두어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을 줄이는 방향으로 설계를 조정한 것이다. 허위조작정보를 형사 처벌이나 행정 심의 중심이 아닌, 책임 있는 정보 유통과 피해 구제 중심 틀 안에서 다루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방미통위는 법 시행 전까지 구체 기준을 정교하게 다듬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개정 법률 시행일인 내년 7월 5일 전까지 하위법령 개정을 통해 대규모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의 기준, 가중 손해배상 대상 게재자 기준, 투명성 센터가 수행할 사실확인 활성화 사업의 범위 등을 구체화할 예정이다. 실제 정책 효과는 구독자·조회수 기준, 허위조작정보 판단 기준, 플랫폼 신고 처리 절차 등 세부 규정 설계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글로벌 차원에서는 허위정보와 플랫폼 책임을 둘러싼 규제가 이미 본격화된 상태다. 유럽연합은 디지털서비스법을 통해 초대형 온라인 플랫폼에 위험 평가, 리스크 완화 의무를 부과했고, 미국에서도 플랫폼 콘텐츠 책임 범위를 둘러싸고 법·정책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 정보통신망법 개정은 징벌적 손해배상과 자율규제, 팩트체크 인프라를 결합한 형태로, 해외 규제 프레임과의 조화 여부도 향후 플랫폼 기업들의 글로벌 운영 전략에 변수가 될 전망이다.

 

김종철 방미통위 위원장은 이번 개정으로 허위조작정보로부터 국민의 인격권과 재산권 등 기본권 보호가 가능해졌다고 평가했다. 그는 하위법령 개정 과정에서 피해자 구제와 공공의 이익 보호를 함께 고려한 단계적·차등적 규제 방식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디지털 정보 생태계의 신뢰 회복과 플랫폼 혁신 간 균형을 어떻게 맞추느냐가 향후 제도 안착을 좌우할 전망이며, 산업계는 이번 규제가 실제 시장과 서비스 설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시하고 있다.

박선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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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허위조작정보#정보통신망법개정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