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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제도 개편 그릇되면 되돌리기 어려운 피해"…조희대, 내란재판부·법왜곡죄 법원장회의서 신중론

조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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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제도 개편을 둘러싸고 입법부와 사법부가 정면으로 마주 섰다.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추진된 내란전담특별재판부 설치와 법 왜곡죄 신설 법안을 두고 전국 법원장들이 한자리에 모여 대응 방향을 논의하면서, 정국 긴장감도 한층 고조되는 분위기다.

 

대법원 소속 사법행정기구인 법원행정처와 전국 각급 법원장들은 5일 오후 2시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대회의실에서 전국 법원장회의 정기회의를 열고 내란전담특별재판부 설치와 법 왜곡죄 신설 법안에 대한 사법부 의견과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회의는 대법원을 제외한 각급 법원의 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 사법연수원장, 사법정책연구원장 등 사법부 최고위 법관들이 모두 참석하는 자리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회의에 앞선 인사말에서 사법제도 개편과 관련해 강한 신중론을 밝혔다. 그는 "사법제도는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중대한 기능을 수행하는 만큼, 한 번 바뀌면 그 영향이 사회 전반에 광범위하게, 오랜 세월 지속된다"고 운을 뗐다. 이어 "특히 그릇된 방향으로 개편된다면, 그 결과는 국민에게 직접적이며 되돌리기 어려운 피해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조 대법원장은 "그러므로 사법제도 개편은 충분한 논의와 공론화 과정을 거친 뒤 이론과 실무를 갖춘 전문가의 판단을 바탕으로 신중하게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의 법안 처리 속도전에 제동을 걸며, 전문적 논의와 공론 절차를 앞세워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그는 또 최근 사법불신 여론을 의식한 듯 재판의 본령을 상기시켰다. 조 대법원장은 "최근 사법부를 향한 국민의 기대와 요구는 그 어느 때보다 크고 무겁다"며 "이럴 때일수록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을 통한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라는 헌법이 우리에게 부여한 사명을 묵묵히 수행해 내는 것만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다시금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이날 회의의 핵심 안건은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해 지난 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시킨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과 법 왜곡죄 신설 법안이다. 여권은 두 법안을 연내 처리 목표로 추진 중이다. 

 

내란재판부 설치법은 12·3 계엄과 관련해 윤석열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을 전담하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왜곡죄는 재판이나 수사 중인 사건에서 법관이나 검사가 고의로 법리를 왜곡하거나 사실을 조작할 경우 형사처벌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사법부 판단 영역에 직접 형사책임을 부과하는 조항인 만큼, 법관 독립과 재판 자율성 침해 논란이 거세다.

 

법원행정처는 이날 회의에 앞서 각급 법원장들에게 해당 법률안에 대한 소속 법관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따라 법원장들은 각 법원의 판사들로부터 취합한 의견을 토대로 안건을 논의하고, 사법부 차원의 공식 입장과 대응 방향을 조율할 것으로 전망된다.

 

법원행정처 자체의 존폐를 둘러싼 논의도 병행된다. 국회 일각에서 제기된 법원행정처 폐지안과 관련해, 사법행정 구조 개편 방향과 대안을 놓고 의견 교환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사법행정의 정치적 중립성과 효율성, 대체기구 설계 방식 등이 쟁점으로 거론될 가능성이 크다.

 

조 대법원장은 이날 오전 출근길에 취재진과 만나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등 관련 법안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을 받고 "법원장 회의에서 의견을 듣고 논의하겠다"고 답했다. 개인 의견 표명은 자제하면서도, 법원장회의를 통해 집단적 판단을 도출하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전국 법원장회의는 매년 12월 열리는 정기회의로, 통상 사법행정 점검과 주요 업무 현안 보고가 중심을 이뤄 왔다. 그러나 최근 여권을 중심으로 사법개혁 요구가 거세지자, 사법부는 내란전담특별재판부 설치와 법왜곡죄 신설 문제를 핵심 의제로 올려 논의를 집중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행정처 폐지, 사법행정 구조 개편, 법관윤리 강화 등도 테이블에 오를 전망이다.

 

대법원은 이미 지난 9월 전국 법원장 임시회의를 열어 더불어민주당의 사법개혁 추진 방향과 관련된 쟁점을 논의한 바 있다. 임시회의는 코로나19 대책 논의를 위해 열린 2022년 이후 3년 만에 소집된 것으로, 급박하게 돌아가는 사법환경을 반영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당시 회의 직후 법원장들은 "사법 독립은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며 "제도 개편 논의에 사법부 참여가 필수적"이라는 공동 입장을 내놓았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관련 법안이 본회의 문턱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전국 법원장회의에서 도출될 사법부 공식 의견은 향후 입법 논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된다. 국회 본회의 상정 과정에서 여야 협상은 물론, 추가 공청회나 의견 수렴 절차 요구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국회는 여야 간 이견을 조율하며 본회의 처리 여부와 시점을 검토 중이고, 사법부는 이날 회의 결과를 토대로 후속 입장 정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은 내란전담재판부와 법왜곡죄 신설을 둘러싸고 한동안 격렬한 공방을 이어갈 전망이며, 향후 국회는 다음 회기에서 사법개혁 법안 전반에 대한 본격 논의에 나설 계획이다.

조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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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대#내란전담특별재판부#법왜곡죄신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