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디지털헬스케어 판다…차바이오와 AI 병원 플랫폼 재편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기반 디지털 헬스케어가 국내 대형 IT그룹의 구조조정과 맞물리며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카카오가 카카오헬스케어 경영권을 차바이오그룹에 넘기기로 하면서다. AI 중심 사업 재편에 나선 카카오의 ‘몸집 줄이기’ 전략과, 오프라인 병원 네트워크를 보유한 차바이오그룹의 디지털 전환이 맞물린 거래라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에서는 이번 매각이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 재편과 플랫폼 기반 의료 서비스 경쟁 구도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카카오와 차바이오그룹에 따르면 차케어스와 차AI헬스케어는 카카오헬스케어 구주 매수와 제3자 배정 유상증자 참여 방식으로 지분 43.08퍼센트를 확보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기업결합 심사 등 법적 절차가 마무리되면 차바이오그룹이 카카오헬스케어의 최대주주로 올라서며 경영권을 확보하게 된다. 유상증자 이후 지분 구조는 차케어스와 차AI헬스케어가 43.08퍼센트, 카카오가 29.99퍼센트, 외부 투자자가 26.93퍼센트를 보유하는 형태로 재편된다.

카카오헬스케어가 보유한 핵심 역량은 인공지능 기반 건강 데이터 분석, 병원 연동 플랫폼, 비대면 진료 및 건강관리 솔루션 등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이다. 그동안 카카오가 축적한 이용자 데이터 처리 기술과 클라우드 인프라, 사용자 경험 설계 노하우를 의료 도메인에 적용해 온 만큼, 의료기관의 전자의무기록 시스템과 모바일 앱을 연계하는 통합 플랫폼 고도화가 차바이오그룹의 주요 활용 방향으로 거론된다. 특히 이번 거래는 IT 기업이 주도하던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을 대형 의료그룹이 직접 흡수해 병원 현장에 녹여 넣는 구조라는 점에서 기존 단순 제휴 방식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차바이오그룹은 카카오헬스케어의 AI와 빅데이터 역량을 기반으로 스마트 병원, 원격 모니터링, 맞춤형 예방 관리로 의료 서비스를 확장하는 구상을 내놓고 있다. 차바이오그룹은 이미 미국, 호주, 싱가포르, 일본,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6개국에서 77개 의료 서비스 플랫폼과 병원을 운영하며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대 규모 의료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있다. 여기에 카카오헬스케어의 모바일 플랫폼과 데이터 분석 기술을 접목하면 국가별 규제에 맞춘 현지형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 국경 간 진료 연계, 건강검진 데이터 기반 질환 예측 솔루션과 같은 수익 모델을 빠르게 실험할 수 있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시장 관점에서 보면 차바이오그룹은 기존에는 산부인과, 난임, 암 치료 등 특화 병원 네트워크에 강점이 있었지만, 이용자 접점이 모바일 플랫폼보다 오프라인 진료에 치우쳐 있었다. 카카오헬스케어 편입으로 병원 예약, 검사 결과 열람, 건강관리 콘텐츠 구독, 장기 질환 관리 프로그램 등 환자 경험 전 주기를 하나의 앱에서 통합 관리하는 모델에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된다. 이용자는 앱 기반으로 일상 건강 데이터를 기록하고, 병원은 이 데이터를 진료에 반영하는 양방향 구조가 현실화될 경우 재진율 관리, 만성질환 악화 예방, 의료비 절감 등의 실효성이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글로벌 경쟁 구도에서도 이번 협력은 의미가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빅테크와 병원 체인이 손잡고 디지털 헬스케어 주도권 경쟁에 뛰어든 상황이다. 미국에서는 테크 기업들이 클라우드, 전자의무기록 시스템, 보험 청구 플랫폼을 앞세워 병원 생태계에 침투하고 있고, 싱가포르와 호주 등에서는 정부 주도로 공공·민간 의료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해 원격의료와 디지털 치료제 도입을 확산하는 추세다. 국내에서는 대형 IT 플랫폼 기업과 대형 의료그룹 간 직접적인 지분 결합 사례가 드물었던 만큼, 카카오헬스케어와 차바이오그룹의 결합이 경쟁사들의 제휴·투자 전략을 자극할 가능성도 있다.
규제 측면에서는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는 의료법, 정보통신망법, 개인정보보호법, 바이오헬스 관련 각종 고시와 지침을 동시에 준수해야 한다. 특히 건강정보와 진료기록은 민감정보로 분류돼 데이터 수집과 활용 범위가 엄격하게 제한돼 있다. 향후 카카오헬스케어와 차바이오그룹이 공동으로 개발할 AI 진단 보조 솔루션이나 원격 모니터링 서비스가 의료기기 소프트웨어로 분류될 경우 식품의약품안전처 인허가를 거쳐야 하며, 원격의료 제도 범위 안에서만 상용화가 가능하다. 정치·사회적 논쟁이 지속되고 있는 비대면 진료 제도화 속도에 따라 사업 추진력도 좌우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카카오는 그룹 차원에서 AI 중심 기업 구조로 재편하기 위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이어가고 있다. 정신아 카카오 대표는 지난달 주주 서한을 통해 당시 99개였던 국내 계열사 수를 연내 80여 개 수준으로 줄이겠다고 밝힌 바 있다. 플랫폼·콘텐츠·엔터테인먼트 등 비핵심 또는 수익성·시너지 측면에서 우선순위가 낮은 자회사 정리를 통해 AI 핵심 사업에 재원을 집중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번 카카오헬스케어 경영권 매각 역시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을 완전히 접기보다는, 카카오가 중·소수 지분을 남기고 전략적 파트너로 전환한 형태라는 점에서 자본 효율화를 중시한 선택으로 해석된다.
카카오는 최근 2년간 카카오모빌리티,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카카오헬스케어 등 주요 계열사의 매각 가능성이 거론돼 왔다. 실제로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주주 구성 변경 논의를 진행했으나 현재는 공식적으로 검토가 중단된 상태다. 게임 계열사에서는 카카오게임즈가 자회사 넵튠 지분 전량을 크래프톤에 매각해 넵튠을 포함한 관련 자회사 10여 곳을 계열에서 제외했다. 카카오게임즈 자회사 카카오VX의 경우 외부 매각이 추진됐지만 노동조합 반발과 인수 후보 부재로 성사되지 않았고, 우선 카카오인베스트먼트 산하 투자 부문 자회사 IVG로 편입되는 방식을 택했다.
계열사 구조조정은 비상장 계열사와 합작법인에도 확산되고 있다. 카카오VX와 골프 플랫폼 테인스밸리의 합병이 공식 마무리된 데 이어, 카카오가 지분을 보유했던 SM엔터테인먼트 자회사 SM스튜디오스도 모회사에 합병되며 자체 법인이 해산됐다. 2019년 카카오인베스트먼트와 연세의료원이 설립한 헬스케어 ICT 합작사 파이디지털헬스케어 지분 역시 매각돼 카카오 그룹 계열에서 제외됐다. 이런 정리에 따라 카카오의 3분기 사업보고서 기준 국내 계열사 수는 98곳으로 집계됐다.
업계에서는 카카오 계열사 가운데 엔터테인먼트와 콘텐츠 부문이 여전히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엔터·콘텐츠 자회사 중 수익성과 전략적 중요도가 낮은 일부 법인이 추가로 정리되거나 합병을 통해 단일 스튜디오 체제로 재편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동시에 카카오가 AI 기술을 엔터, 커머스, 광고, 핀테크 등 기존 주력 사업에 얼마나 빠른 속도로 녹여낼 수 있을지가 향후 계열사 구조조정 속도를 좌우하는 변수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에서는 카카오헬스케어의 ‘집 나간 자회사’ 전환을 계기로, 대형 병원 그룹과 IT 플랫폼의 결합 모델이 가속화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병원 중심의 의료 네트워크에 IT 기업이 지분 투자 방식으로 참여하는 구조가 확대될 경우 데이터 공유 범위, 환자 동의 절차, 알고리즘 책임 소재 등을 둘러싼 새로운 규제·윤리 논의도 불가피해 보인다. 산업계는 이번 거래가 실제 병원 현장에서 성공적인 서비스로 안착할 수 있을지, 그리고 카카오의 계열사 재편 전략이 다른 IT·바이오 기업의 구조조정과 투자 방향에 어떤 신호를 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