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바이오

“저속노화 연구실 성폭력 논란”…연구자 고용관계·저작권 공방 확산

임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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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속노화 콘셉트로 대중적 인지도를 쌓아온 정희원 저속노화연구소 대표를 둘러싸고 연구현장의 성폭력과 저작권 침해 논란이 불거졌다. 정 대표로부터 스토킹과 협박 혐의로 고소당한 전 위촉연구원 A씨가 오히려 정 대표가 우월적 고용·지위 관계를 이용해 성적 요구를 반복했고, 연구 성과와 저술 과정에서도 자신의 기여를 침해했다고 주장하며 법적 공방이 IT·바이오 연구현장의 권력 구조 문제로 번지는 양상이다. 업계에서는 연구실 내 젠더 기반 폭력과 인력 구조의 불균형이 드러난 상징적 사건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법무법인 혜석은 18일 입장문을 통해 A씨가 정 대표를 상대로 한 주장을 정리해 공개했다. 혜석 측은 이번 사안을 개인 간 다툼으로 보기 어렵다고 선을 긋고, 연구책임자와 위촉연구원 사이의 위계 속에서 반복된 젠더 기반 폭력, 그리고 저술 과정에서의 저작권 침해가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와 A씨는 지난해와 올해 정 대표가 연구책임자로 참여한 연구과제에서 연구자와 위촉연구원 관계로 엮였다.  

입장문에 따르면 A씨는 연구과제의 위촉연구원으로 참여했지만, 실제로는 저속노화 개념 확산을 위한 사회관계망서비스 계정 운영과 온라인 커뮤니티 관리 등 디지털 홍보성 업무를 주로 맡았다. 연구책임자와 1대1에 가까운 종속적 근무 구조가 형성돼 근무지와 시간, 업무 내용 전반에서 정 대표에게 강하게 종속된 상황이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A씨는 이러한 구조 속에서 특정 성적 역할을 수행하라는 요구가 근무 기간 전반에 걸쳐 반복됐다고 주장했다. 정 대표의 주 근무지였던 병원 연구실뿐 아니라 숙박업소, A씨의 거주지 등 물리적 공간을 달리하며 요구가 이어졌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A씨 측은 고용 종료와 연구 경력에 대한 불이익 우려가 커 거절이 사실상 어려웠다고 호소하고 있다.  

 

A씨는 중단 의사를 밝힌 이후 해고 가능성과 사회적 낙인 언급을 통한 압박이 가해졌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과정이 사용자 우위의 권력을 이용한 위력에 의한 성폭력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특히 젠더 기반 폭력이 IT·바이오 연구현장의 비정규·위촉 연구 인력에게 집중되는 구조적 문제로도 해석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을 둘러싼 공방도 동시에 제기됐다. A씨 측은 정 대표의 저서 저속노화 마인드셋이 당초 공동 저자 체계로 출판 계약이 진행됐으나, 이후 계약이 해지된 뒤 자신 동의 없이 정 대표 단독 명의로 출간됐다고 밝혔다. A씨는 자신이 작성한 원고와 책의 상당 부분이 구조와 서술 방식에서 유사성을 보인다고 주장하고 있다.  

 

A씨는 정 대표 명의로 발표된 다수의 기명 칼럼 역시 자신이 직접 작성해 왔다고 덧붙였다. 정 대표가 공개 발언에서 A씨의 집필 역량을 문제 삼으며 공동 집필이 어렵다고 설명했던 것과는 상반된 주장이다. A씨 측은 본인이 서울대 졸업 후 대학원에 재학 중인 연구자로, 전문적 글쓰기 역량을 인정받아 공동 집필 제안을 받은 것이라고 반박했다.  

 

저작권 쟁점과 관련해 양측은 협의에 나섰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는 것이 A씨 측 설명이다. A씨는 저작권 문제를 정리하기 위해 정 대표와 추가 면담을 시도했고, 그 과정에서 정 대표를 직접 찾아간 행위가 스토킹으로 신고돼 수사가 시작됐다고 밝혔다. 현재 경찰이 내린 접근 금지 등 잠정조치에 대해서도 범죄 성립을 판단한 결정이 아니라, 일단의 물리적 충돌 가능성을 막기 위한 임시 보호 조치라는 점을 강조했다.  

 

A씨는 사건이 스토킹 문제로만 부각될 경우 성폭력과 저작권 침해라는 본질이 가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혜석 측은 피해자가 문제 제기를 위해 연락과 방문을 반복한 행위를 일방적으로 집착과 스토킹으로 규정하는 것은 피해 책임을 되돌려 씌우는 2차 가해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이어 사실관계가 왜곡된 채 언론 대응이 지속될 경우 형사 고소 등 추가 법적 대응도 검토하겠다고 경고했다.  

 

정희원 대표는 반대 입장에 서 있다. 정 대표는 17일 언론 인터뷰에서 A씨를 스토킹처벌법 위반과 공갈 미수 혐의로 이미 고소했으며, 양측 관계도 지난해 3월부터 올해 6월까지 사적 교류가 동반된 사이였다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해당 기간 A씨의 일방적 신체 접촉이 있었고, 계약 종료 이후에는 자신의 자택과 가족이 연관된 장소를 찾아오며 금전적 요구까지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은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해 대중과 소통하는 IT·바이오 연구자의 개인 브랜드 활동과, 그 이면의 고용 관계·저작권 귀속 문제를 동시에 드러냈다는 평가도 나온다. 특히 연구책임자와 위촉·계약 연구원 사이의 권력 비대칭, 연구실과 온라인 업무가 뒤섞인 하이브리드 근무 환경에서 젠더 기반 폭력과 성적 요구가 제기된 만큼, 유사 분야 연구기관에서의 예방 규범과 내부 신고 절차 정비 필요성도 부각되는 분위기다.  

 

법조계와 연구윤리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향후 수사와 민형사 소송 절차를 통해 성폭력 여부와 저작권 침해 정도, 스토킹과 공갈 미수 혐의 성립 여부가 개별적으로 가려질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IT·바이오 융합 연구가 확산되면서 연구자 개인 브랜드와 콘텐츠 사업을 병행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만큼, 연구성과와 저작물의 기여도 산정, 서면 계약의 명확화, 고용관계에서의 권력 남용 방지 장치가 산업 전반의 과제로 떠오를 가능성도 제기된다.  

 

현재 수사기관이 양측 주장을 토대로 사실관계를 확인 중인 가운데, IT·바이오 연구계에서는 이번 사건이 성평등한 연구 환경 조성과 저작권 관리 체계 정비를 촉발하는 계기가 될지 주목하고 있다. 산업계는 결국 개별 연구자의 도덕성 논란을 넘어, 고용 구조와 연구윤리, 지식재산 제도가 함께 정비되지 않으면 유사 분쟁이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임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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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원#저속노화연구소#저속노화마인드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