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항암제로 1차 치료까지”…GSK, 자궁내막암 패러다임 바꾼다
면역항암제가 자궁내막암 치료의 표준을 다시 짜고 있다. 한국GSK의 면역항암제 젬퍼리가 진행성·재발성 자궁내막암에서 2차 치료에 이어 1차 치료까지 건강보험 급여를 확대 적용받으면서, 고위험 환자군을 중심으로 치료 전략 전환이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자궁내막암 환자 수가 빠르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번 급여 확대가 면역항암제 중심의 새로운 치료 패러다임을 여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정열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한국GSK가 1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자궁내막암 치료 환경 변화를 짚으며 젬퍼리의 임상적 의의를 설명했다. 그는 국내 3대 부인암 가운데 자궁내막암 환자 증가세가 가장 가파르다는 점을 짚으며, 제한적이었던 기존 치료 전략에서 면역항암제가 새로운 표준치료로 자리잡고 있다고 강조했다.

젬퍼리는 면역항암제 계열 약물로, 환자 자신의 면역체계를 활성화해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돕는 기전의 치료제다. 암이 인체 면역반응을 회피하는 경로를 차단하고, 면역세포의 공격력을 높여 비정상 세포를 제거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젬퍼리의 성분인 도스탈리맙은 특히 DNA 복구 결함이나 높은 유전체 불안정성을 보이는 종양에서 치료 반응이 두드러지는 것으로 보고돼 왔다.
젬퍼리는 2022년 12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자궁내막암 성인 환자를 대상으로 2차 이상 치료제, 단독요법으로 처음 허가를 받았다. 적응증은 이전에 백금기반 전신 화학요법 치료 중이거나 치료 후 질병이 진행된 dMMR 복구결함 또는 MSI-H 고빈도 현미부수체 불안정 자궁내막암 환자다. 2023년 12월 이 적응증으로 건강보험 급여를 획득하며 국내 시장에 본격 진입했고, 올해 10월부터는 1차 치료 영역으로 급여 범위가 확대됐다.
급여 확대에 따라 젬퍼리는 새로 진단된 진행성·재발성 dMMR·MSI-H 자궁내막암 성인 환자에게 카보플라틴과 파클리탁셀 기반 화학요법과 병용하는 1차 치료 옵션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기존에는 경제적 부담으로 접근이 제한됐던 환자들도 보험 체계 안에서 조기부터 면역항암제 기반 병용요법을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자궁내막암은 자궁 체부 내벽을 이루는 자궁내막에서 발생하는 암으로, 자궁체부암 가운데 대다수를 차지한다. 통계에 따르면 자궁체부암 발병률은 2002년 여성 인구 10만명당 3.9명에서 2022년 15.4명으로 약 4배 증가했다. 2020년대 들어서는 자궁경부암, 난소암과 함께 3대 부인암으로 분류되는 가운데, 매년 가장 많은 발생자 수를 기록하는 암종으로 자리잡았다.
주요 증상으로는 불규칙한 자궁·질 출혈이 대표적이며, 복부·골반의 압박감, 악취가 나는 분비물, 노란빛의 액성 질 분비물 등이 동반될 수 있다. 에스트로겐 관련 호르몬 요인, 가족력 등 유전 요인, 비만, 당뇨, 면역 결핍 질환 등이 위험인자로 거론된다. 특히 폐경기 여성의 질 출혈은 자궁내막암 가능성을 염두에 둔 정밀 진찰이 권고된다.
박 교수는 자궁체부암의 구성 비율을 짚으며 치료 수요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자궁체부암 가운데 2~6퍼센트를 차지하는 자궁육종을 제외하면 94~98퍼센트가 자궁내막암이며, 지난 20년간 발병률이 급증해 치료 환경 개선이 시급한 암종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진행성·재발성 자궁내막암에서 1차 표준치료로 활용돼온 백금기반 화학요법은 전체 생존기간이 3년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효과·안전성 측면 모두에서 미충족 수요가 컸다는 지적이다.
그는 젬퍼리 병용요법이 전체생존기간과 무진행생존기간을 모두 유의하게 개선한 데이터를 제시하며, 자궁내막암 치료 패러다임 전환의 근거가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환자의 예후를 실질적으로 개선하면서도, 보험 급여를 통해 경제적 장벽까지 낮춰 치료 기회를 넓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젬퍼리의 임상적 근거가 된 RUBY 3상 연구는 고위험군 및 3기·4기 진행성, 재발성 자궁내막암 환자 494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연구는 젬퍼리와 백금기반 화학요법 병용요법을 1차 표준치료인 백금기반 화학요법 단독요법과 비교해 전체생존기간과 무진행생존기간의 차이를 분석했다. 고형암 반응평가기준에 따라 설정된 1차 평가지표에서 젬퍼리 병용군은 대조군에 비해 통계적으로 유의한 생존 이점을 보였다.
전체 환자군 분석에서 젬퍼리 병용군의 전체생존기간 중앙값은 44.6개월로 나타났다. 대조군 28.2개월과 비교할 때 16.4개월이 연장된 수치로, 사망위험은 31퍼센트 감소했다. 투약 24개월 시점의 무진행생존율 역시 병용군이 36.1퍼센트로, 대조군 18.1퍼센트 대비 질병 진행 또는 사망위험을 36퍼센트 줄인 것으로 분석됐다.
1차 치료 급여 대상이 되는 dMMR·MSI-H 환자군에서는 면역항암제의 효과가 더 두드러졌다. 이 하위군에서 젬퍼리 병용요법은 24개월 시점에 질병 진행 또는 사망위험을 대조군보다 72퍼센트 낮췄으며, 무진행생존율은 61.4퍼센트에 달했다. 36개월 시점 분석에서 젬퍼리 병용군의 전체생존율은 78퍼센트로, 대조군 46퍼센트 대비 사망위험을 68퍼센트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박 교수는 3년 이상 장기 추적 결과에서도 젬퍼리 병용요법이 대조군 대비 사망위험 감소 효과를 유지하며, 통계적으로 유의한 전체생존기간 개선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이는 단기 반응에 그치지 않고 장기 생존 혜택을 제공할 수 있는 치료 옵션으로서 면역항암제 병용요법의 가치를 보여준 결과라는 평가다.
국내 자궁내막암 치료 현장에서는 젬퍼리 급여 확대가 환자 선별과 진단 체계에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dMMR과 MSI-H 여부가 치료 전략 결정과 보험 적용의 핵심 기준이 되면서, 유전자 및 분자진단 기반의 정밀의료 접근이 더욱 중요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환자 개개인의 종양 특성을 정밀 분석해 최적 치료를 조기에 적용하는 정밀의료 모델이 부인암 영역에서도 본격 확산할 여지가 커지고 있다.
한편 글로벌 시장에서는 면역항암제를 중심으로 한 자궁내막암 치료 경쟁이 이미 본격화된 상황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PD-1, PD-L1 계열 면역항암제를 중심으로 다양한 병용요법과 단계별 치료 전략이 개발되고 있으며, 유전체 바이오마커를 활용해 반응이 기대되는 환자를 선별하는 흐름이 강화되고 있다. 한국GSK의 젬퍼리 역시 이러한 글로벌 경쟁 구도 속에서 국내뿐 아니라 해외 시장에서도 자궁내막암 치료 옵션 확대에 기여하는 사례로 주목된다.
구나 라디거 한국GSK 대표이사는 젬퍼리의 1차 치료 급여 확대가 자궁내막암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전하는 동시에 치료 접근성을 한 단계 높이는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한국GSK가 국내 자궁내막암 치료 환경에서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고, 면역항암제 기반 치료를 고도화하는 방향으로 연구와 투자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산업계와 의료계는 젬퍼리를 비롯한 면역항암제가 실제 진료 현장에서 얼마나 빠르게 표준치료로 안착할지 주목하고 있다. 자궁내막암 환자 증가세와 미충족 수요를 고려할 때, 면역항암제의 임상 데이터와 경제성 평가, 정밀 진단 인프라 확충이 맞물려야 치료 패러다임 전환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기술과 제도, 보험과 실제 진료 환경 간의 균형이 새로운 성장과 환자 혜택 확대의 전제조건이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