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안저 분석 확산"…망막질환 조기 발견 앞당겨 실명 부담 줄일까
망막 영상 진단과 인공지능 기술이 맞물리면서 시력 저하의 대표 원인인 망막질환 관리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세극등 안저 검사와 안저 촬영에 더해 빛간섭단층촬영과 AI 기반 영상 분석까지 도입되면서, 과거에는 말기 단계에서 발견되던 병변을 더 일찍 찾아 치료 시점을 앞당기는 흐름이다. 의료계는 디지털 망막 진단이 고령화에 따른 실명 부담을 줄일 수 있을지에 주목하고 있다.
망막은 안구 가장 안쪽에서 빛을 감지하고 시각 정보를 뇌로 전달하는 신경조직으로, 손상되면 중심 시야가 흐려지거나 시야 일부가 가려지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황반변성, 당뇨망막병증, 망막박리 등 주요 망막질환은 초기에 자각 증상이 거의 없어 질환이 상당히 진행된 이후에야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국내외 연구에서는 중증으로 진행된 뒤에야 병원을 찾는 비율이 높게 나타나고 있어 조기 진단 체계 강화가 과제로 꼽힌다.

망막박리는 망막이 안구벽에서 떨어지는 질환으로, 치료가 늦어지면 영구적인 시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초기에는 번쩍이는 빛이 보이는 광시증, 눈앞에 검은 점이 떠다니는 비문증이 먼저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망막에 생긴 미세한 구멍인 열공이 넓어지거나 액체가 스며들면 망막이 실제로 박리 단계로 진행하면서 시야 일부가 물결치듯 일그러지거나, 커튼이 내려오는 것처럼 가려지는 증상이 동반될 수 있다. 이 단계에 접어들면 치료 난이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즉각적인 안과 진료가 요구된다.
당뇨망막병증은 만성 고혈당으로 망막의 미세혈관이 손상되면서 발생한다. 초기에는 특별한 이상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질환이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된 뒤에야 시야 흐림이나 비문증 등 증상이 드러나는 특징이 있다. 병이 진행되면 망막 내 출혈과 부종이 발생하고, 산소 공급 부족을 보상하기 위해 비정상적인 신생혈관이 자라난다. 이런 신생혈관은 쉽게 파열돼 추가 출혈을 일으키고 섬유조직을 동반해 망막을 잡아당겨 박리를 유발할 수 있어 심각한 시력 저하나 실명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증상 없이 조용히 진행되는 특성 때문에 당뇨병 환자 사이에서 침묵의 실명 원인으로 불린다.
망막혈관폐쇄는 중심망막 정맥·동맥과 그 분지 혈관이 막히는 형태로 나뉜다. 망막 내 정맥 또는 동맥이 혈전 등으로 폐쇄되면 혈류 장애로 인한 부종, 출혈, 허혈이 연쇄적으로 나타난다. 이 과정에서 갑작스러운 시야 흐림이나 시야 일부가 보이지 않는 암점, 중심 시력 저하가 동반될 수 있다. 통증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환자가 위험성을 간과하기 쉽지만,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등 전신 혈관질환이 주요 위험 요인으로 특히 고령층에서 발생률이 높다. 뇌졸중, 심혈관질환과의 연관성도 지적되면서 안과 진단 결과가 전신 혈관 건강을 가늠하는 지표로도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망막질환 진단의 기반은 여전히 세극등을 이용한 안저 검사와 안저 촬영이다. 여기에 망막 단면을 미세하게 층별로 스캔하는 빛간섭단층촬영이 더해지면서, 미세한 부종과 박리, 황반부 구조 변화를 정량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필요할 경우 형광안저혈관조영술과 빛간섭단층촬영 혈관조영술을 통해 혈관 누출과 폐쇄 부위, 신생혈관 형성 여부를 세밀하게 확인한다. 형광 조영제를 정맥 주사한 뒤 촬영하는 방식은 침습성이 있지만, 병변 위치를 명확히 파악해 레이저 치료 방향을 정하는 데 여전히 중요하게 사용된다.
최근에는 이러한 영상 데이터에 비침습적 촬영 기술과 인공지능 분석이 결합되면서 진단 정밀도가 한층 높아지는 추세다. 고해상도 안저 사진과 OCT 영상을 AI가 학습해 황반부종, 미세출혈, 신생혈관 패턴을 자동으로 분류하고 진행 단계를 예측하는 시스템이 상용화 단계에 올라섰다. 일부 플랫폼은 정기 검진 데이터의 변화를 시계열로 분석해 조기 악화 징후를 포착하고, 의료진에게 경고를 보내는 기능도 탑재하고 있어 중증 진행 전에 개입할 여지를 넓히고 있다. 업계에서는 의료진의 판독 부담을 줄이면서도 오진률을 낮출 보조 도구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치료 전략은 질환 종류와 진행 정도에 따라 세분화되고 있다. 습성 황반변성과 당뇨황반부종, 망막정맥폐쇄에 따른 황반부종 등 혈관 누출성 질환에서는 VEGF라는 혈관내피성장인자를 차단하는 항VEGF 주사가 표준 치료로 정착했다. 유리체 내에 약물을 주입해 비정상 혈관 성장을 억제하고, 누출과 부종을 줄여 중심 시력을 보존하는 방식이다. 초기 임상에 비해 약제 종류와 용량, 투약 간격이 다양해지면서 환자 상태에 따른 맞춤 설계가 가능해졌다. 특히 OCT 영상에서 부종 정도를 정량화하고 AI로 반응 패턴을 분석해 주사 간격을 조정하는 프로토콜이 도입되면서 과잉 치료와 치료 공백을 동시에 줄이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망막박리나 광범위 출혈이 동반된 경우에는 수술적 치료가 필수적이다. 열공 주변 망막을 레이저로 고정하는 광응고술은 비교적 초기 단계에서 박리 확산을 막는 데 사용된다. 이미 망막이 넓게 떨어진 상황에서는 유리체절제술을 통해 안구 내 혼탁한 유리체와 혈액, 견인 조직을 제거한 뒤 망막을 원위치로 붙이는 과정이 진행된다. 수술 후 가스나 실리콘 오일을 사용해 망막을 지지하는 방식 등 세부 기법은 병변 위치와 범위에 따라 달라진다. 수술 시기를 놓치면 망막 신경층이 돌이킬 수 없이 손상돼 시력 회복이 제한되기 때문에, 조기 증상에 대한 인식 제고가 치료 성적에 직결된다는 지적이 많다.
국제적으로는 안저 이미지와 AI를 결합한 원격 스크리닝 서비스도 확대되고 있다. 북미와 유럽 일부 지역에서는 당뇨병 환자가 1년에 한 번 기본 안저 사진만 촬영해도, 클라우드 기반 AI가 당뇨망막병증 여부와 중증도를 판독해 안과 전문의 진료 필요성을 구분해 주는 체계가 도입됐다. 고령화와 인력 부족을 겪는 국가일수록 이런 자동 판독과 원격 판독 수요가 커지는 추세다. 국내에서도 병원과 스타트업이 협력해 안저 AI 판독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으며, 향후 일차의료기관과 보건소까지 확산될 경우 조기 발견률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AI 기반 의료 영상 분석이 널리 쓰이기 위해서는 의료기기 소프트웨어 인허가, 개인정보 보호, 데이터 품질 관리 등 제도적 과제가 남아 있다. 각국 규제 당국은 AI 판독 결과를 의료진 보조 도구로 한정하면서도, 성능 검증과 책임 소재를 둘러싼 기준을 세밀하게 다듬고 있다. 실제 임상에서는 데이터 편향과 예측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한 알고리즘 투명성 확보와 외부 검증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된다.
김유진 강동경희대학교병원 안과 교수는 망막질환 예방의 출발점을 전신 질환 관리에서 찾았다. 그는 전신 혈관 건강과 망막 상태가 긴밀히 연동돼 있는 만큼 금연과 금주, 규칙적인 운동, 균형 잡힌 식습관, 자외선 차단 같은 생활 습관 관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40세 이후에는 특별한 증상이 없더라도 정기적인 안과 검진을 통해 망막질환으로 인한 시력 손실을 미리 차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산업계와 의료계는 디지털 진단 기술과 생활 습관 개선, 제도 정비가 맞물려야 고령 사회의 실명 부담을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