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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에너지 패턴 읽는 FDG PET…연세의료원, 혼합형 치매 조기구분 제시

배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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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당대사 영상기술이 치매 진단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알츠하이머병과 루이소체병이 동시에 나타나는 혼합형 치매에서 특정 뇌 부위의 에너지 사용 패턴이 뚜렷이 구분된다는 연구 결과가 제시되면서다. 증상 진행이 빠르고 하루 컨디션 변동이 큰 혼합형 치매는 조기 발견 여부에 따라 치료 전략과 예후가 크게 달라질 수 있어, 이번 결과가 임상 현장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의료 AI와 고해상도 뇌 영상 분석 기술을 접목할 경우 조기 진단 알고리즘 개발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바이오 헬스케어 업계의 관심이 향하고 있다.

 

예병석 세브란스병원 신경과 교수와 전세운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대사 치매연구소 교수 공동 연구팀은 포도당 대사를 측정하는 뇌 영상 검사 FDG PET 데이터를 정밀 분석한 결과, 뇌 심부에 위치한 조가비핵이 유난히 밝게 보이는 과대사 패턴이 관찰되면 루이소체 병리가 알츠하이머병과 함께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고 5일 밝혔다. 연구팀은 미국 대규모 치매 코호트에 속한 503명의 FDG PET 영상을 후향적으로 분석해 이러한 패턴을 확인했다.

알츠하이머병은 해마와 연관 피질 등 기억과 인지 기능을 담당하는 영역의 신경세포가 서서히 손상되며 기능이 떨어지는 퇴행성 뇌질환이다. 반면 루이소체병은 알파시누클레인 단백질이 비정상적으로 축적된 루이소체가 신경세포 내에 생기면서 뇌 신호 조절 네트워크가 흔들리고 환시, 파킨슨 증상, 수면 장애 등 다양한 증상이 나타나는 질환이다. 두 질환의 병인은 다르지만 실제 임상에서는 같은 환자에게 동반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때문에 단일 알츠하이머 혹은 단일 루이소체 치매로 오진돼 병인별 치료전략을 세우는 데 한계가 있었고, 예후 예측도 어려웠다.

 

FDG PET는 방사성 포도당 유사체를 주입해 뇌 각 부위의 에너지 소비량을 영상으로 가시화하는 대표적인 뇌 기능 영상기술이다. 기존에는 루이소체 치매 환자에서 후두엽의 당대사가 저하돼 영상상 어둡게 보이는 것이 특징적 소견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알츠하이머병에서도 유사한 후두엽 저하 소견이 나타날 수 있어 단일 부위 신호만으로 두 질환을 구분하는 데 분명한 한계가 존재했다.

 

연구팀은 기존의 단편적 판독에서 벗어나 뇌 전체의 에너지 사용 패턴을 정량 비교하는 접근을 택했다. 고해상도 FDG PET 데이터를 기반으로 각 피질 및 심부핵 구조의 상대적 당대사 수준을 계산하고, 통계적 패턴 분석을 통해 루이소체 병리 동반 여부와 연관된 특이 신호를 추출했다. 분석 결과, 루이소체병이 공존하는 경우 운동 조절과 습관 형성에 관여하는 기저핵 구조 중 하나인 조가비핵에서 반복적으로 과대사, 즉 비정상적으로 높은 에너지 사용이 관찰됐다. 영상에서 조가비핵이 주변보다 유독 밝게 보이는 것이 대표적 패턴이다.

 

특히 이번 기술은 조가비핵 과대사가 환자의 나이, 알츠하이머병 진행 단계와 무관하게 루이소체 병리 존재 여부와 높은 상관성을 보인 점에서 기존 방식의 한계를 극복했다. 후두엽 저하처럼 다른 치매형에서도 일부 겹칠 수 있는 변화가 아니라, 혼합형 치매를 가려내는 보다 직접적인 지표로 기능할 수 있다는 의미다. 연구팀은 조가비핵 과대사가 루이소체 치매에서 비교적 흔한 과다한 각성 상태, 수면 구조 교란, 변동성 있는 주의력과 관련된 신경 회로의 보상적 과활동을 반영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조가비핵 밝기와 질환 경과의 정량적 연관성도 확인됐다. FDG PET에서 조가비핵의 상대적 당대사 수준이 높을수록 이후 추적 기간 동안 인지 기능 저하 속도가 빠르고, 하루 단위 컨디션 변동성이 큰 경향이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나타났다. 이는 조가비핵 에너지 패턴이 단순한 진단 표지자를 넘어 향후 병의 진행 속도를 예측하는 바이오마커로도 활용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치매 환자와 보호자 입장에서는 향후 기능 저하 속도를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받고, 그에 맞춰 돌봄 계획과 치료전략을 조정할 수 있는 근거가 추가로 생기는 셈이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FDG PET를 포함한 뇌 기능 영상이 치매 조기 진단과 분자 표적 치료제 임상 설계에 필수 인프라로 자리 잡는 추세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미 베타아밀로이드, 타우 단백질을 표적하는 PET 조영제를 활용해 알츠하이머 신약의 임상 적합 환자를 선별하고 있다. 여기에 뇌 당대사 패턴 분석이 결합되면 치매 환자를 알츠하이머 단독형, 루이소체 단독형, 혼합형 등 세부 아형으로 나눠 임상시험을 설계하는 정밀 분류 전략이 가능해질 수 있다. 이는 같은 기전을 겨냥한 약물이라도 어느 아형 환자에서 효과가 두드러지는지 조기에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는 FDG PET가 3차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널리 쓰이고 있지만, 판독 의존도가 높고 정량 분석 인프라는 아직 제한적이다. 최근에는 의료 영상 분야에서 딥러닝 기반 분석 플랫폼이 빠르게 도입되며 대규모 PET 영상의 패턴을 자동 학습하는 기술 개발이 활발하다. 이번 연구에서 제시된 조가비핵 과대사 소견은 향후 AI 판독 알고리즘이 학습해야 할 핵심 특징으로 활용될 수 있다. 치매 의심 환자의 PET 영상에서 시스템이 자동으로 조가비핵 신호를 정량화하고, 혼합형 치매 가능성을 점수화해 의사에게 제시하는 임상 의사결정지원 시스템으로의 확장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다만 영상 기반 바이오마커가 실제 진단 기준으로 채택되기 위해서는 표준화된 촬영 프로토콜과 다기관 검증이 필수다. 현재 미국과 유럽에서는 알츠하이머 관련 PET 바이오마커를 임상 진료와 보험 체계에 반영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며, 각국 규제당국은 영상 해석 알고리즘의 설명 가능성과 재현성을 주요 심사 기준으로 삼고 있다. 국내에서도 식품의약품안전처와 보건 당국을 중심으로 디지털 의료기기와 소프트웨어 기반 영상 판독 도구에 대한 인허가 가이드라인이 정비되는 중이다. 조가비핵 과대사 같은 신규 지표가 진료 지침에 반영되려면 대규모 한국인 코호트 검증과 더불어 이러한 규제 틀 안에서의 안전성, 유효성 평가가 뒷받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예병석 교수는 혼합형 치매의 임상적 위험성을 강조했다. 그는 혼합형 치매는 진행 속도가 빨라 조기에 발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이번 결과는 FDG PET 영상만으로도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며 조가비핵의 에너지 사용 증가가 현재까지 확인된 것 중 가장 직접적이고 믿을 만한 신호라고 설명했다. 전세운 교수는 조가비핵 과대사 같은 패턴은 기존 정성적 판독 방식으로는 잘 포착되지 않았던 변화라며 정량 분석을 통해 환자별 병인 조합과 진행 속도를 가늠할 수 있게 되면 맞춤형 치매 치료전략 수립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치매 분야 국제 학술지 알츠하이머병 및 치매 최신 호에 게재됐다. 업계와 의료계는 조가비핵 에너지 패턴이 국내 환자군에서도 같은 수준의 예측력을 보일지, 실제 진료 현장에서 활용 가능한 자동 분석 시스템과 연계될 수 있을지에 주목하고 있다. 치매 정밀진단 기술 경쟁이 글로벌 바이오 헬스케어 산업의 핵심 축으로 부상한 가운데, 영상 기술과 분석 알고리즘, 제도 인프라 간 균형 있는 발전이 새로운 성장의 조건이 되고 있다.

배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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