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독일 공장 생산 전면 중단”…폭스바겐, 대규모 감산·구조조정에 유럽 자동차업계 긴장

조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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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시각 기준 16일, 독일(Germany) 작센주 드레스덴에서 독일 자동차업체 폭스바겐(Volkswagen)이 공장 생산 중단을 단행하는 중대한 조치가 시행됐다. 창사 88년 만에 처음으로 독일 내 생산거점을 멈추는 결정으로, 중국 판매 부진과 유럽(Europe) 수요 약세, 미국(USA) 시장의 관세 부담이 겹치며 구조조정 가속과 대규모 감산 우려가 유럽 자동차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폭스바겐은 16일부터 드레스덴 공장에서 차량 생산을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2002년 가동을 시작한 이 공장은 지금까지 누적 생산량이 20만대를 넘지 못한 소규모 기지로, 주력 생산거점인 볼프스부르크 공장 연간 생산량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물량을 담당해왔다. 당초 그룹의 기술력을 대외적으로 과시하는 쇼케이스 역할을 위해 설립됐으며, 초기에는 고급 세단 페이톤(Phaeton)을 조립했고 2016년 페이톤 단종 이후에는 전기차 ID.3 생산을 맡아왔다.

폭스바겐, 독일 드레스덴 공장 생산 중단…연 73만4천대 감산 구조조정 가속
폭스바겐, 독일 드레스덴 공장 생산 중단…연 73만4천대 감산 구조조정 가속

이번 생산 중단은 지난해 10월 폭스바겐 노사가 합의한 독일 내 생산능력 감축 및 인력 구조조정 계획의 연장선에 있다. 당시 현지 언론에 따르면 노사는 독일 내 일자리 3만5천개 이상을 줄이기로 합의했는데, 이는 독일 근로자 12만명 가운데 약 30%에 해당하는 규모다. 노사는 대규모 강제 해고 대신 조기퇴직, 고령 근로자의 근로시간 단축 등 이른바 사회적으로 허용되는 방식의 인력 감축 수단을 활용하기로 했다.

 

폭스바겐은 독일 내 생산능력이 수요 감소에 비해 과잉 상태라고 진단하고, 독일 공장 10곳 가운데 최소 3곳을 폐쇄하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이에 따라 드레스덴을 포함한 오스나브뤼크와 기타 소규모 공장에서는 늦어도 2027년까지 차량 생산을 전면 중단할 계획이다. 회사 측은 이러한 조치로 독일 내 연간 생산능력이 73만4천대 감소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용 절감과 임금 문제를 둘러싼 노사 협상도 있었다. 사측은 임금 10% 일괄 삭감 등을 포함한 강도 높은 절감안을 제시했으나, 협의 끝에 노사는 명목상 임금을 5% 인상하되 인상분을 회사 기금 형태로 적립해 비용 절감에 활용하는 절충안을 선택했다. 이와 함께 휴가수당 축소와 일부 상여금 항목 폐지도 포함되면서 독일 노동계 전반에 구조조정 압력이 확산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토마스 셰퍼 폭스바겐 브랜드 최고경영자(CEO)는 드레스덴 공장 폐쇄와 관련해 “가볍게 내린 결정이 아니라 경제적 관점에서 필수적인 결정”이라고 강조하며, 수익성 회복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밝혔다. 독일 내 자동차 산업이 고비용 구조와 전기차 전환 부담으로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폭스바겐의 이번 결정은 독일 제조업 모델이 구조적 변곡점을 맞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된다.

 

드레스덴 공장 폐쇄 이후 부지는 첨단 기술 연구 허브로 전환된다. 부지는 드레스덴 공과대학(TU Dresden)에 임대되며, 대학 측은 이 공간을 인공지능(AI), 로보틱스, 반도체 개발을 위한 연구 캠퍼스로 활용할 계획이다. 폭스바겐은 드레스덴 공과대학과 협력해 향후 7년간 관련 연구 프로젝트에 5천만유로를 투자하기로 약속했다. 전통 제조업 생산시설이 첨단 기술 연구 거점으로 바뀌는 사례로, 독일 산업 전환 전략의 상징적 움직임으로 평가된다.

 

재무적으로 폭스바겐그룹은 최근 실적 악화에 직면했다. 그룹은 올해 3분기(7~9월) 세후 기준 10억7천만유로의 순손실을 기록하며,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였던 2020년 2분기 이후 처음으로 분기 적자를 냈다. 같은 기간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3% 증가했지만,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3분기 3.6%에서 올해 3분기 -1.6%로 급락했다. 수익성이 낮은 전기차 라인업 확대, 미국에서의 관세 부담, 계열사 포르쉐(Porsche)의 전략 수정 비용이 실적 부진의 주요 요인으로 지목된다.

 

포르쉐는 전기차 전략을 재조정하는 과정에서 배터리 생산 자회사를 청산하는 등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이로 인해 지난 3분기 9억7천만유로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폭스바겐그룹은 포르쉐 관련 구조조정과 전략 변경으로 올해에만 47억유로의 추가 비용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전기차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규모 선제 투자와 사업 구조 재편 비용이 단기간 수익성을 크게 훼손하고 있는 셈이다.

 

아르노 안틀리츠 폭스바겐그룹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일회성 요인을 제외할 경우 영업이익률은 5.4% 수준이라고 설명하면서도, 연간 최대 50억유로에 달하는 관세 부담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미국 시장에서의 관세 비용과 중국 판매 부진이 맞물리면서 현금흐름 개선 속도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가 투자자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

 

시장 분석도 비관적이다. 증권사 번스타인(Bernstein)의 애널리스트 스티븐 라이트먼은 “2026년 현금흐름에 분명히 압박이 있을 것”이라며, 내연기관차 수명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전기차와 전통 파워트레인 양쪽에 대한 추가 투자가 필요해진 상황이 폭스바겐에게 광범위한 도전 과제가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유니온 인베스트먼트(Union Investment)의 포트폴리오 매니저 모리츠 크로넨베르거 역시 폭스바겐이 설정한 투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다른 아이디어와 프로젝트들이 투자 계획에서 제거돼야 한다”고 지적하며 투자 우선순위 조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폭스바겐은 향후 5년간 총 1천600억유로 규모로 책정한 투자예산을 어떤 사업에 배분할지 검토 중이다. 구조조정과 공장 폐쇄를 통한 비용 절감, 전기차·소프트웨어·반도체 등 신기술 투자 간의 균형을 모색하고 있으며,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폭스바겐이 투자 포트폴리오 전반을 재조정하는 과정에서 비핵심 사업의 정리와 전략적 제휴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럽 주요 매체들은 폭스바겐의 결정이 독일 자동차산업 구조 전환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드레스덴 공장의 생산 중단이 독일에서 상징성이 큰 폭스바겐의 역사와 맞물리면서, 전기차 전환이 기존 고용과 지역경제에 미칠 충격을 둘러싼 논쟁도 가열되는 분위기다. 동시에, 공장 부지를 AI·반도체 연구 캠퍼스로 전환하는 계획은 제조업에서 첨단 기술 산업으로의 이행을 보여주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폭스바겐의 구조조정이 글로벌 자동차 공급망과 유럽 일자리, 전기차 시장 경쟁 구도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독일 내 생산 축소가 다른 유럽 제조기지와 동유럽, 북미 등으로의 재배치를 동반할 경우, 각국의 투자 유치 경쟁과 보조금 정책도 다시 요동칠 가능성이 제기된다. 국제사회와 시장은 폭스바겐이 대규모 투자 계획과 구조조정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그리고 이번 생산 중단이 향후 글로벌 자동차 산업 재편에 어떤 변화를 초래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조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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