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유도 미사일 ADC…엔허투 앞세워 시장 3배 성장 기대
항체와 강력한 항암제를 결합해 암세포를 유도미사일처럼 정밀 타격하는 ADC 항체 약물 접합체 기술이 글로벌 항암제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카드로 부상하고 있다. 기존에는 재발 환자 중심의 2차 3차 치료 옵션으로 활용되던 ADC가 1차 치료 영역까지 파고들면서, 매출 규모와 적응증 확장 속도가 당초 예측을 넘어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외 제약바이오 기업이 앞다퉈 플랫폼을 확보하고 파이프라인을 늘리면서 향후 5년을 기점으로 항암제 개발 패러다임이 바뀔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28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하나증권 김선아 연구원은 제약바이오 2026년 연간 전망 보고서에서 비만, 대사이상 지방간염 MASH, 뇌질환과 함께 ADC를 내년 핵심 투자 테마로 제시했다. 김 연구원은 이미 승인된 ADC 약물이 임상 데이터로 약효와 안전성에 대한 신뢰를 쌓으며 매출을 키워왔고, 1차 치료제 영역 확대를 노리는 파이프라인이 빠르게 늘고 있어 시장이 기존 예측치를 상회하는 성장 궤적을 보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ADC는 항체가 암세포 표면에 발현된 특정 항원에 선택적으로 결합하고, 여기에 화학 약물 페이로드를 링커로 연결해 전달하는 구조의 표적 항암 플랫폼이다. 항체가 일종의 내비게이션 역할을 해 암세포만 찾아가고, 세포 내로 들어간 뒤 링커가 분해되면서 고강도 세포독성 약물이 방출돼 암을 사멸한다. 항체 기반 표적성 덕분에 주변 정상 세포 손상을 줄이고, 기존 세포독성 항암제보다 낮은 용량으로도 충분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 경쟁력으로 꼽힌다. 특히 차세대 링커와 고효율 페이로드 기술이 더해지면서 약물 한 분자에 실을 수 있는 유효 성분 수와 안정성이 개선돼, 같은 표적을 겨냥해도 기존 항체치료제 대비 반응률과 무진행 생존기간을 끌어올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
글로벌 ADC 성장의 중심에는 아스트라제네카와 다이이찌산쿄가 공동 개발한 엔허투가 있다. 엔허투는 HER2 인간 표피 성장 인자 수용체를 표적으로 하는 ADC로, 기존에는 특정 유방암과 위암 등에서 주로 2차 이상 치료제로 쓰였다. 최근에는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 환자의 1차 치료 영역으로까지 적응증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9월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 1차 치료제로 미국 식품의약국 FDA에 승인을 신청했으며, 업계에서는 2025년 1분기 승인 가능성을 유력하게 보고 있다. 김 연구원은 엔허투의 2028년 매출을 111억 달러, 약 16조원 수준으로 추정했다. 이는 2023년 약 42억 달러, 6조원 안팎의 매출에서 3배 가까이 커지는 것으로, 단일 ADC가 글로벌 항암제 톱 티어 매출 구간에 진입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유방암 1차 치료 시장은 환자 수가 가장 많고 치료 기간도 길어 매출 파급력이 크다. 엔허투가 이 영역에서 표준요법 기준으로 자리 잡을 경우, 다른 암종과 바이오마커 기반 세분화 치료까지 포함한 전체 ADC 시장의 몸집이 예측치를 상회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국내에서도 ADC 플랫폼과 파이프라인을 둘러싼 경쟁 구도가 서서히 정비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에서 인적분할해 출범한 삼성에피스홀딩스는 바이오시밀러 기반에서 나아가 ADC를 포함한 혁신 바이오 신약으로 포트폴리오를 넓히는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회사는 방광암 대상 ADC 후보 물질에 대해 올해 안 1상 임상시험계획 제출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2025년부터 미국 등에서 초기 임상에 본격 진입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플랫폼 기술 기반 기업도 잇달아 시장에 등장하고 있다. 인투셀은 2023년부터 삼성바이오에피스와 5개 타깃에 대한 ADC 공동 개발을 진행 중이다. 업계에서는 에피스홀딩스가 준비 중인 첫 방광암 ADC에 인투셀의 링커 기술이 적용됐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링커는 항체와 약물을 안정적으로 연결해 체내 순환 단계에서는 끊어지지 않고, 종양 환경이나 세포 내 특정 효소에 의해 선택적으로 분리되도록 설계되는 핵심 요소다. 인투셀은 링커의 체내 안정성과 종양 내 방출 제어에 강점을 가진 차세대 플랫폼을 보유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에임드바이오는 연내 코스닥 상장을 추진하며 ADC 및 항체 플랫폼 개발 자금을 확보하고 있다. 회사는 최근 다국적 제약사 베링거인겔하임과 약 1조4000억원 규모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해 기술 검증과 글로벌 진출 가능성을 동시에 확보했다는 평가다.
기존 바이오시밀러 강자인 셀트리온도 ADC 신약 개발 기업으로의 체질 전환을 선언하고 움직임을 가속화하고 있다. 셀트리온은 3월 미국 FDA에서 ADC 후보 CT-P70의 1상 임상시험계획 IND 승인을 받았다. 회사는 2028년까지 ADC 분야에서 9개 물질에 대한 IND 제출을 마친다는 중장기 목표를 제시했으며, 2025년 이후부터는 주요 파이프라인의 글로벌 임상을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세포독성 페이로드와 링커 기술 도입을 위해 해외 기술 제휴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종근당은 자체 개발 항체와 ADC 플랫폼을 결합한 CKD-703으로 발 빠르게 북미 시장 임상에 진입했다. 7월 FDA로부터 1상과 2a상의 병행 설계를 포함한 임상시험계획 승인을 받았다. CKD-703은 간세포성장인자 수용체 c Met를 표적으로 하는 단일클론항체에 차세대 ADC 플랫폼을 적용한 후보로, c Met이 과발현된 고형암에서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사멸하는 기전을 갖도록 설계됐다. c Met은 여러 암종에서 침윤성과 전이, 약제 내성과 관련된 표지자로 알려져 있어, ADC 형태로의 공략이 성공할 경우 난치성 고형암 치료에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다는 평가다.
국내 대표 ADC 기업으로 꼽히는 리가켐바이오는 플랫폼 콘쥬올을 앞세워 후기 임상 단계에 진입하며 기술 가치를 입증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콘쥬올은 항체의 특정 아미노산 위치를 정밀하게 지정해 약물을 결합하는 위치특이적 접합 기술로, 약물 부착 수와 위치를 균일하게 맞춰 제제 안정성과 약동학적 특성을 예측 가능하게 만든다. 기존 ADC가 무작위 결합 방식으로 제조되면서 약효와 독성이 로트마다 달라질 수 있다는 한계를 가졌던 것과 비교하면, 제조 일관성과 안전성 측면에서 우위를 가진다는 설명이다. 리가켐바이오는 현재 임상 1b상과 2상을 진행 중으로, 향후 데이터가 공개되면 글로벌 제약사와의 추가 기술이전과 공동 개발 논의가 본격화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엔허투 외에도 다수의 ADC가 유방암, 폐암, 방광암 등에서 표준치료 자리를 노리고 경쟁 중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ADC가 이미 재발 환자 중심의 치료 옵션을 넘어, 바이오마커 기반 환자 세분화 전략과 결합된 정밀의료 도구로 자리잡는 흐름이 뚜렷하다. 미국 FDA와 유럽의약품청 EMA는 새로운 ADC에 대해 효능이 뚜렷하게 입증될 경우 신속 심사와 우선 심사 제도를 적극 활용하고 있어, 후기 임상에서 통계적 유의성을 확보한 후보는 비교적 빠르게 시장에 진입하는 패턴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빠른 상용화 속도에 비해 장기 안전성, 내성 발현, 고가 약가에 따른 접근성 문제는 향후 규제와 보험 등재 과정에서 주요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ADC는 항체와 고독성 화학 약물을 복합적으로 포함해 제조 공정과 품질 관리가 까다로워 생산비가 높고, 이에 따른 약가 부담이 크다는 지적이 계속 나온다. 건강보험 재정과 환자 부담을 감안한 급여 기준 설계, 바이오의약품 제조시설에 대한 규제 인프라 고도화 등이 과제로 꼽힌다.
김선아 연구원은 리가켐바이오가 무난히 연구개발을 이어가며 후기 임상 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고, 새로 등장한 ADC 기업들이 각기 다른 플랫폼과 전략으로 글로벌 기술이전을 시도하고 있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ADC에 대한 시장 관심이 점차 확대되면서 관련 기업 전반의 주가와 밸류에이션이 재평가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산업계에서는 ADC 기술 경쟁과 임상 성과뿐 아니라 생산 인프라, 규제 대응, 가격·급여 전략을 포함한 전주기 역량을 확보한 기업이 차세대 항암제 시장을 선도할 것으로 보고, ADC가 실제 임상 현장과 시장에서 어느 수준까지 안착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