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탄압 vs 입법독재" 여야, 연말 필리버스터 정면충돌…사법개혁 법안 격랑
여야의 입법 전선이 정기국회 마지막 날부터 거세게 맞부딪쳤다. 더불어민주당이 연내 사법개혁 법안 처리를 밀어붙이자 국민의힘이 비쟁점 법안까지 묶은 전면 필리버스터로 맞서면서, 연말 국회가 강대강 대치 정국에 휩싸였다.
국회는 9일 오후 본회의를 열어 국가보증동의안 3건과 법안 59건을 처리할 계획이었으나 국민의힘은 상정 예정 법안 59건 전부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신청했다. 이에 따라 첫 안건인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상정되자마자 무제한 토론이 개시됐다.

첫 필리버스터 주자로 나선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을 겨냥해 강도 높은 공세를 펼쳤다. 나 의원은 연단에서 "입법 독재를 하는, 헌법을 파괴하고 법치주의를 무너뜨리고 삼권분립을 파괴하는 입법 내란 세력"이라고 규정하며 여당을 비판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출신인 우원식 국회의장은 나 의원의 발언이 필리버스터 대상 법안인 가맹사업법 개정안의 논의 범위를 벗어났다며 관련 국회법 규정을 언급한 뒤 마이크를 끄도록 지시했다. 이에 국민의힘 의원들이 본회의장에서 고성을 지르며 항의해 한때 거친 긴장감이 감돌기도 했다.
국민의힘의 전면 필리버스터는 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법왜곡죄 신설 등 이른바 사법 파괴 5대 악법과, 유튜버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포함한 국민 입틀막 3대 악법 처리를 저지하겠다는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본회의 직전 의원총회 후 기자들과 만나 가맹사업법 개정안에 대해 "이 법안 자체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우리 당의 많은 의원이 동의하는 내용도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8대 악법에 대해 국민에게 소상히 알리는 차원에서 쟁점이 많지 않은 법안도 전체 필리버스터를 실시키로 했다"고 강조하며 비쟁점 법안까지 토론 대상으로 확대한 이유를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은 본회의 전 국회 로텐더홀에서 규탄 집회를 열고 국민의힘의 움직임을 강하게 비난했다. 의원들은 민생법안 발목잡기, 필버 악용 중단 등의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국민의힘을 성토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발언을 통해 "민생 법안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하겠다는 해괴망측하고 기상천외한 국민의힘을 국민은 용서하지 마시라"고 말한 뒤 "민생 발목 잡기를 넘어 민생 탄압이고 민생 쿠데타"라고 주장했다.
국회법은 필리버스터가 진행되는 가운데 회기가 종료되면 필리버스터의 종결이 선포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이날 밤 12시가 지나면 필리버스터는 자동 종료된다. 토론이 시간에 의해 강제로 끝나는 구조여서, 여야가 같은 법안을 두고 정기국회 말미까지 정면으로 맞붙는 장면이 연출된 셈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정기국회 종료 직후인 10일부터 12월 임시국회를 이미 소집해 놓은 상태다. 우원식 국회의장의 일정 등을 고려해 11일부터 14일, 21일부터 24일 사이에 본회의를 열고 중점 법안들을 순차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우선 11일 본회의에서는 9일 필리버스터 대상이 된 가맹사업법 개정안이 자동 종결 규정에 따라 표결에 부쳐질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와 함께 사법개혁 패키지 중 쟁점 강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하급심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를 골자로 한 형사소송법 개정안, 반인권적 국가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배제하는 내용의 특례법안 등을 우선 처리할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가장 논란이 큰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은 당내에서도 위헌 논란과 사법부 독립 침해 우려가 제기돼 추가 논의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 법안을 21일부터 예정된 본회의에서 다루는 방안을 비롯해 처리 시점과 수위를 두고 시나리오를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이 임시국회에서도 사법개혁 법안을 밀어붙일 경우 전면 필리버스터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이 경우 더불어민주당이 한 회기당 하루 한 건씩 법안을 상정해 처리하는 이른바 살라미식 입법 전략을 다시 가동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양당이 회기 쪼개기와 필리버스터를 반복하는 소모전 구도가 재현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은 당초 국회의원 60명 이상이 출석하지 않으면 국회의장이 필리버스터를 중단시킬 수 있도록 요건을 강화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우선 처리하는 방안을 추진해 왔다. 이는 다수 의석을 활용해 소수 야당의 저지 수단을 제한하겠다는 취지였지만, 정치권 내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국민의힘은 이 개정안을 두고 소수 야당 저항수단 무력화법이라고 규정하며 강력 반발했다. 조국혁신당 역시 살라미식 입법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과의 공조가 필요한 상황임에도 필리버스터 제한에는 반대 입장을 드러냈다. 소수 정당의 권한이 크게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런 정치 지형을 고려해 국회법 개정안 추진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원내 핵심 관계자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혁신당의 입장을 고려해 국회법 개정안의 상정은 일단 당분간은 보류하기로 했다"고 말하며, 야권 내 공조 균열을 최소화하겠다는 계산을 내비쳤다.
여야가 필리버스터와 임시국회, 국회법 개정 카드까지 동원하며 사법개혁과 표현 규제 법안 등을 둘러싸고 맞서는 상황에서, 향후 국회 일정은 거센 충돌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국회는 12월 임시국회 기간 사법개혁 법안 처리 여부를 두고 치열한 공방을 이어갈 것으로 보이며, 정치권은 필리버스터 제도와 소수파 보호 장치를 둘러싼 제도 논쟁에서도 정면 충돌 양상을 보일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