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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외과 50년 축적 데이터"…세브란스, 정밀소아의료 도약 축 만든다

임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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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외과 수술과 희귀 선천성질환 치료 경험이 축적되며 정밀의료와 디지털 헬스 기술 접점이 넓어지고 있다. 대형 병원이 수십 년간 축적한 임상 데이터와 수술 노하우는 인공지능 수술 보조 시스템, 희귀질환 디지털 트윈, 오가노이드 기반 신약 연구의 핵심 자산으로 평가된다. 업계와 의료계에서는 이러한 장기 임상 자산을 어떻게 데이터화하고 기술과 접목하느냐가 향후 소아 정밀의료 경쟁의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세브란스병원은 11일 연세대 의대 에비슨의생명연구센터 유일한홀에서 소아외과 창설 50주년을 기념하는 심포지엄을 열고 반세기 동안 축적한 수술 경험과 연구 성과, 향후 발전 전략을 공유했다. 세브란스 소아외과는 1975년 3월 24일 국내에서 드물던 소아외과 독립 진료를 시작했고, 이번 행사는 그 이후 50년간의 발자취를 돌아보며 미래 소아외과의 역할과 연구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첫 세션에서는 세브란스 소아외과의 형성과 성장 과정을 정리했다. 인경 세브란스 어린이병원 소아외과장이 세브란스 소아외과 50년의 발자취를 주제로 발표하며 1970년대 기초 수술 환경에서 현재 고난도 선천성 기형 수술, 최소침습 수술, 중증 소아 환자 집중치료까지 확장된 과정을 짚었다. 이어 세브란스병원 소아외과 초대 과장이자 대한소아외과학회 초대 회장을 역임한 황의호 연세대 명예교수가 우리나라 소아외과 발전 역사를 회고하며 소아외과 전문 인력 양성 과정과 학회 설립, 국내 수술법 표준화를 설명했다.  

 

황의호 명예교수는 후배 의료진에게 소아외과는 섬세함과 기술을 동시에 요구하는 가장 복합적 역량이 필요한 분야라며 출산율 저하와 같은 사회 구조 변화 속에서도 소아외과의 임상적 중요성과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고 전문성을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출산으로 절대 환자 수는 줄어드는 반면, 생존율 향상과 고위험 신생아 관리 확대로 선천성질환과 복합질환을 가진 소아 환자는 오히려 더 높은 수준의 수술·집중치료를 요구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두 번째 세션에서는 동문들의 임상 경험과 연구를 통해 소아외과 세부 영역의 최신 동향을 공유했다. 오정탁 연세대 의대 교수는 항문직장기형 수술 결과를 소개하며 수술 기법 발전과 장기 추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합병증 감소, 기능 보존 전략을 제시했다. 안수민 연세대 의대 교수는 청소년 비만 수술의 최신 동향과 결과를 발표해 성장기 환자에서 체중감량과 내분비 대사 개선 효과, 수술 적응증과 안전성 관리 기준을 설명했다.  

 

호인걸 연세대 의대 교수는 소아 위식도 역류 수술과 위루술의 임상 경험과 치료 전략을 공유하며 만성 위식도 역류로 인한 성장 지연, 영양 장애를 겪는 소아 환자에서 수술 시점과 수술법 선택이 장기 예후에 미치는 영향을 제시했다. 장혜경 경희대 의대 교수는 한국 소아외과의 임상 현실과 변화하는 의료 정책을 다루며 저출산, 의료 인력 쏠림, 수가 구조, 중증 소아 환자 수술에 따른 병원 재정 부담 등 구조적 과제를 짚었다. 소아외과처럼 고난도 수술 비중이 높으면서 환자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분야에서는 임상 필요성과 재정 현실 사이 균형을 맞출 정책 설계가 중요하다는 분석이다.  

 

마지막 세션은 선천성 희귀질환인 담도폐쇄증을 집중 조명했다. 담도폐쇄증은 간에서 소장으로 연결되는 담도가 막히거나 좁아지는 질환으로, 신생아기 조기 진단과 수술 여부가 향후 간 기능과 생존율을 좌우한다. 준 후지시로 일본 도쿄대학교 교수는 일본에서 이루어진 담도폐쇄증 치료의 최신 지견과 연구 성과를 공유하며 수술 시기, 수술법별 장기 예후 데이터를 비교했다. 조기 진단을 위한 국가 차원 선별 시스템과 표준 수술 프로토콜 구축이 생존율 향상에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인경 연세대 의대 교수는 한국의 담도폐쇄증 치료 성적과 세브란스병원의 치료 전략을 제시했다. 세브란스병원이 지난 수십 년간 축적한 담도폐쇄증 수술 사례와 간 이식 연계 치료 경험을 바탕으로 수술 기법, 수술 후 간 기능 모니터링, 합병증 관리 체계를 정리했다. 이는 향후 빅데이터 기반 예후 예측 모델, AI 영상 판독, 디지털 트윈 간 모델 개발 등으로 확장될 수 있는 기초 데이터라는 점에서 산업적 의미도 크다.  

 

진윤희 연세대 의대 교수는 담도폐쇄증 이해를 위한 오가노이드 기반 접근법을 발표했다. 오가노이드는 줄기세포나 조직에서 유래한 세포를 3차원으로 배양해 실제 장기 구조와 기능을 모사하는 미니 장기 모델로, 희귀 선천성질환의 발병 기전 분석과 약물 반응 시험에 강점을 가진다. 담도 조직 오가노이드를 활용하면 환자별 유전적·세포 수준 특성을 반영한 질환 모델을 만들 수 있어, 맞춤형 치료 후보 물질 발굴과 수술 전후 약물 조합 최적화 연구에 활용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오가노이드와 같은 첨단 바이오 모델은 유전체 분석, 단일세포 분석, 이미징 데이터와 결합해 정밀 소아외과 연구의 핵심 플랫폼으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담도폐쇄증처럼 환자 수가 적어 대규모 임상시험이 어려운 희귀질환 영역에서, 환자 유래 오가노이드는 가상의 대규모 시험군 역할을 하며 AI 기반 약물 스크리닝, 독성 평가, 수술 전 치료 전략 시뮬레이션에 활용될 수 있어 글로벌 제약·바이오 업계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세브란스 소아외과 50년의 임상 경험은 국내 소아외과 데이터 기반 정밀의료 발전에도 연계될 수 있는 자산으로 평가된다. 신생아와 소아 환자 수술은 체중, 장기 크기, 성장 과정 등 변수가 많아 성인 데이터와는 다른 별도 알고리즘과 장기 추적 데이터셋이 필요하다. 세브란스처럼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축적된 수술 기록, 영상 자료, 병리 정보, 장기 예후 데이터는 향후 AI 수술 보조 시스템, 예후 예측 모델, 로봇 수술 최적화 알고리즘 개발의 핵심 학습 데이터가 될 수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소아외과와 정밀의료, 디지털 헬스의 결합 시도는 확대되는 추세다. 미국과 유럽 일부 병원은 희귀 소아질환 디지털 레지스트리를 구축해 유전체, 영상, 임상 데이터를 통합 관리하고, 이를 기반으로 AI 진단 보조와 맞춤형 치료 프로토콜을 개발하고 있다. 일본 역시 담도폐쇄증을 포함한 희귀 소아 간질환 레지스트리를 구축해 국가 차원에서 예후 분석과 치료 표준을 고도화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국내 의료기관의 장기 임상 데이터 정제와 표준화, 연구용·산업용 데이터 전환 전략은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과의 협업에서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정책 측면에서는 소아 희귀질환과 고난도 수술 분야의 데이터 활용을 둘러싼 규제와 지원 체계 정비가 과제로 남아 있다. 민감 의료정보 보호와 데이터 산업화 사이 균형을 맞추기 위해 비식별화, 가명정보 활용, 연구 목적 2차 이용 기준 설정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소아 환자의 경우 보호자 동의, 장기 추적 데이터 관리, 윤리적 검토가 성인보다 엄격하게 요구돼 정밀의료·AI 연구를 뒷받침할 별도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인경 소아외과장은 세브란스 소아외과가 1975년 첫 진료 이후 국내 소아외과 분야 진료와 학문적 기반을 구축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해왔다며 이번 심포지엄이 사회적 변화 속에서 소아외과의 역할과 발전 방향을 함께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의료계와 업계는 세브란스가 축적한 50년 임상 유산이 향후 정밀 소아의료, 오가노이드 기반 희귀질환 연구,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과 어떻게 접목될지에 주목하고 있다. 산업계는 이러한 병원 현장의 축적 지식과 데이터가 실제 기술·서비스로 전환돼 소아환자 치료 성과를 높일 수 있을지 지켜보고 있다.

임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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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란스소아외과#담도폐쇄증#오가노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