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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내 성추행 논란”…보안기술 빈틈, 항공 디지털 관제 시험대

강예은 기자
입력

기내 성추행과 난동 의심 상황에서 승무원의 수동 대응에만 의존하는 항공 보안 체계가 한계에 부딪치고 있다. 최근 베트남발 여객기에서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남성이 여성 승객들에게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는 의혹 끝에 현지 공안에 연행된 사건이 알려지며, 항공 산업에서 AI 기반 영상 분석, 생체·행동 데이터 연동 등 디지털 보안 기술 도입 필요성이 다시 부각되는 분위기다. 업계에서는 알코올·약물 영향에 따른 예측 불가능한 승객 행동이 늘어나는 가운데, “사건 발생 후 제압”에서 “위험 징후 조기 감지”로 패러다임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사건은 베트남 호찌민에서 출발한 저비용항공 여객기 안에서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온라인에 확산된 영상에는 공안 요원으로 보이는 인물 2명이 좌석에 앉아 있던 남성을 일으켜 세워 기내 밖으로 이송하는 장면이 담겼다. 같은 인물을 촬영한 다른 영상에서는 공항 입국장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울부짖는 모습이 포착됐다. 현지 네티즌과 동승객의 증언에 따르면 이 남성은 이륙 전후 기내에서 특정 여성 승객들에게 집요하게 신체 접촉을 시도하고, 거부 의사를 무시한 채 얼굴을 들이대는 등 성추행으로 해석될 수 있는 행동을 반복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승무원이 개입했지만, 결국 보안 인력이 동원되면서 항공편 출발이 1시간가량 지연됐다.  

항공 보안 전문가들은 이러한 사건이 반복되는 배경으로, 감정노동 중심의 승무원 관찰과 방송 안내에 의존하는 현행 구조를 지적한다. 통상 기내에서는 탑승 전 지상 보안 검색과 탑승 게이트에서의 추가 확인, 탑승 후 승무원의 순찰이 주요 대응 수단이다. 그러나 야간 비행이나 장거리 편의 경우 객실 조명이 어둡고 좌석 간격이 좁아, 우월적 위치의 승객이 옆자리에 앉은 타국 승객에게 신체 접촉을 시도하더라도 즉각 포착하기 어렵다. 술이나 약물에 취해 판단 능력이 떨어진 승객의 경우, 초기 언행만으로는 실제 폭력·성범죄로 번질 위험을 정확히 예측하기도 쉽지 않다.  

 

특히 이번 사건은 “주변 승객이 심상치 않은 상황을 인지하고 여성 승객을 다른 좌석으로 옮겨달라 요청했다”는 증언이 나온 만큼, 사람의 육안과 판단에만 의존한 대비가 한계에 다다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항공사 입장에서는 과도한 조치를 취해 ‘승객 권리 침해’ 논란에 휘말릴 수 있고, 반대로 조치가 늦어지면 안전 관리 책임을 지게 되는 딜레마에 놓인다. 이런 현실은 결국, 기내와 탑승 브리지, 공항 터미널을 연계한 디지털 보안 인프라의 필요성으로 연결된다.  

 

주목받는 대안은 AI 기반 영상 분석 시스템이다. 최근 공항과 대형 교통 허브에서는 고해상도 CCTV와 컴퓨터 비전 기술을 결합해, 싸움이나 실신, 과도한 몸부림처럼 ‘이상 행동 패턴’을 자동 감지하는 시범 사업이 진행 중이다. 승객이 같은 좌석 주변을 계속 배회하거나 특정 인물을 집요하게 따라다니는 행동, 반복된 신체 접촉 시도 등은 관제실 모니터에서 일일이 육안으로 찾아내기 어렵지만, 알고리즘 학습을 통해 이상 패턴으로 분류하면 조기 경보를 띄울 수 있다. 항공사와 공항 운영사는 이런 시스템을 게이트·탑승구에 적용해 탑승 전 위험 승객을 선제적으로 선별하고, 필요 시 추가 면담이나 탑승 제한 조치를 검토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기내 환경에 특화된 센서 기술도 떠오르고 있다. 좌석 주변 가속도·압력 변화를 감지하는 소형 센서를 탑재하면, 승객 간 신체 밀착이나 거친 움직임이 일정 수준을 넘었을 때 승무원 단말기에 알림을 보내는 방식이다. 이를 카메라 없는 ‘비시각 센서’로 구현하면 사생활 침해 논란을 줄이면서도 일정 수준의 이상 행동 감지가 가능하다는 평가다. 여기에, 승객이 스마트폰 앱이나 좌석 모니터의 긴급 신고 버튼을 통해 조용히 도움을 요청하면, 센서 데이터와 결합해 경중을 판단하는 구조도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기술 도입에는 개인정보 보호와 감시 논란이라는 큰 장벽이 존재한다. 유럽연합은 일반개인정보보호법을 통해 공항·항공사 등 공공성 높은 기관에 대해서도 얼굴 인식과 행동 프로파일링에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한국 역시 데이터 규제 체계 개편 논의 속에서 생체정보와 위치정보를 어떻게 결합·활용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모색 중이다. 항공 분야에 AI 기반 행위 분석을 도입하려면, 어떤 데이터를 실시간 처리하고 얼마 동안 보관할 것인지, 수사기관·외국 정부에 제공할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구체적인 규범이 필요하다.  

 

일부 디지털 헬스케어 업체는 알코올·약물 사용에 따른 행동 변화를 조기 감지하는 웨어러블 기술을 항공 안전에 접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심박수·체온·동작 패턴을 분석해 ‘이상흥분 상태’를 탐지하면, 음주 과다 승객이나 약물 복용이 의심되는 승객을 조기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탑승객의 신체 데이터를 항공사가 어느 수준까지 수집·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법적 근거가 부족해, 단기간 내 상용화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해외에서는 이미 항공 보안의 디지털 전환 경쟁이 시작됐다. 미국에서는 주요 공항을 중심으로 AI 영상 분석을 이용한 폭력 징후 탐지 시스템이 운영 중이며, 일부 항공사는 게이트 주변 카메라와 고객 행동 데이터를 연계해 ‘하이리스크 승객’을 사전 표적 관리하고 있다. 유럽 저비용항공사들은 탑승 지연과 난동으로 인한 운항 차질 비용을 줄이기 위해, 기내 와이파이·좌석 모듈에서 나오는 데이터를 분석해 승무원 근무 강도와 승객 밀집도, 불만 호소 패턴을 실시간 모니터링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처럼 특정 국적 승객이 해외에서 기내 불법행위로 물의를 일으킬 경우, 개인 처벌을 넘어 해당 국가 항공사와 공항의 ‘위험 이미지’까지 확산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동시에, 과도한 감시 기술 도입은 인권과 프라이버시 침해 논란을 불러 사회적 역풍을 맞을 수 있는 만큼, 기술 도입 속도와 제도·윤리 논의를 병행해야 한다는 지적도 함께 나온다. 산업계는 AI와 센서, 데이터 분석을 결합한 항공 보안 기술이 실제 노선에 안착할 수 있을지, 그리고 기술과 규범 사이 균형점을 어디에 두게 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강예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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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보안ai#디지털헬스케어#데이터규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