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사이신 독성 근거 부족”…식약처, 불닭 리콜 뒤집고 K푸드 수출 방어
매운맛 식품에 대한 과학적 안전성 평가가 국가 간 통상 이슈로 번지면서, 정부의 규제외교 전략이 K푸드 수출의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덴마크 당국이 캡사이신 함량을 이유로 불닭볶음면 시리즈 회수 조치를 내렸지만, 우리 정부와 기업이 데이터를 앞세운 반론과 외교 채널을 총동원한 끝에 한 달 만에 조치를 철회시켰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 과정을 정리한 매운맛 라면 해외 수출규제 대응 백서를 발간하고, 향후 유사 사안에서 표준 대응 모델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캡사이신 독성 자료의 한계와 실제 섭취 환경을 무시한 과대 평가를 바로잡은 사례로 보면서도, K푸드 확산과 함께 유럽을 중심으로 매운맛 규제가 반복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덴마크는 2024년 캡사이신 함량이 높다는 소비자 민원을 계기로 불닭볶음면 시리즈에 대해 회수 조치를 내렸고, 안전성 검증을 덴마크 국립식품연구소에 의뢰했다. 1차 보고서는 제품의 위해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의 내용을 담았으나, 우리 정부는 분석 방식에 과학적 한계가 적지 않다고 판단했다. 특히 캡사이신 농도를 실제 제품 시험 대신 제조사 홈페이지에 제시된 스코빌지수를 활용해 역산한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스코빌지수는 체감 매운맛을 반영한 지표로, 실험실에서 직접 정량 분석한 결과와 차이가 발생할 수 있어 안전성 평가의 기초 자료로 쓰기에는 불확실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캡사이신 섭취량 산정 방식도 핵심 쟁점이 됐다. 덴마크 측은 라면 전체 중량을 기준으로 캡사이신 섭취량을 계산했지만, 실제 매운맛 성분이 들어 있는 것은 액상소스뿐이다. 면과 후첨 건더기에는 캡사이신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소스 중량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데, 총 중량을 그대로 적용하면서 실제보다 약 4배 과다한 섭취량이 산정된 것으로 우리 정부는 분석했다. 식약처는 이러한 과다 추정이 위해성 판단을 왜곡했다며, 제품별 소스 중량과 정량 분석값을 활용한 재평가를 요구했다.
독성 자료의 신뢰도 또한 논란이 됐다. 덴마크는 기존 독성 연구를 토대로 위해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독일 연방위해성평가원은 식품 섭취를 통해 캡사이신이 인체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정량적으로 평가하기에는 자료가 충분치 않다고 결론낸 바 있다. 용량·반응 관계를 정립해 독성참고치를 설정하기에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식약처는 이러한 국제 평가를 근거로, 덴마크가 인용한 연구들이 특정 매운 라면 제품의 위해성을 단정할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삼양식품도 법률 대응과 실측 데이터를 동원해 반격에 나섰다. 회사는 현지 법률사무소를 통해 덴마크 당국이 사실관계 확인 없이 회수 조치를 서둘렀다고 문제를 제기하고, 공인식품위생검사기관이 측정한 실제 캡사이신 함량을 제출했다. 이후 덴마크는 1차 보고서를 보완한 2차 평가에 착수했지만, 식약처는 이 과정에서도 과잉 안전 추정이 계속됐다고 판단했다.
2차 평가에서는 캡사이신 외에 디하이드로캡사이신을 추가 합산해 총 캡사이신 함량을 재산출했다. 두 물질은 고추 열매 속 캡사이시노이드의 대부분을 차지해 매운맛을 결정하는 핵심 성분인 만큼 합산 자체는 과학적으로 의미가 있으나, 우리 측 분석값 검증 없이 덴마크 추정치를 기초로 다시 계산에 들어가 과대 산출 문제가 반복됐다는 지적이다. 식약처는 특정 제품의 위해성을 논의할 때는 실제 분석 결과를 기준으로 한 노출량 산정이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섭취 시나리오 설정 방식도 비판 대상이 됐다. 덴마크 측은 매운맛 참기 대회에서 사용된 극도로 매운 감자칩 사례를 급성 중독 기준으로 삼아, 이를 일반 조리식품인 불닭볶음면에 그대로 대입했다. 2023년 독일에서는 13세 안팎 청소년이 극도로 매운 칩을 챌린지 용도로 한꺼번에 섭취한 뒤 복부통증과 호흡곤란을 호소해 제품 회수로 이어진 바 있다. 식약처는 건조 상태에서 높은 농도로 캡사이신을 함유한 칩을 그대로 씹어 먹는 상황과, 물에 끓여 소스가 희석된 라면을 식사 형태로 섭취하는 상황은 노출 양상과 독성 반응 가능성이 구조적으로 다르다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는 불닭볶음면 시리즈의 캡사이신 공급원이 소스로 제한된 점을 근거로, 제품당 섭취량 산정 시 소스 기준 재계산을 덴마크에 요구했다. 동시에 삼양식품이 제출한 분석값을 교차 검증하기 위해 국내에서 동일 제품을 다시 시험하고, 실제 함량 자료를 상대국에 공유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실제 조리 과정에서 캡사이신이 얼마나 감소하는지도 추가로 분석했다. 끓는 물과 조리 시간, 식사 후 그릇에 남는 소스 잔량까지 고려하면 이론상 최대 함량보다 낮은 양이 인체에 들어간다는 점을 수치로 제시했다.
식약처는 조리 손실과 섭취 패턴까지 포함한 이러한 분석이 국제 위해성 평가에서 표준 절차로 자리 잡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매운맛 챌린지 문화와 일반 식사 패턴을 구분해 설명하는 설득 전략으로는 효과가 있었다고 정리했다. 과학적 데이터와 함께 식문화 차이를 병행해 설명하면서, 특정 국가의 극단적 사례를 보편적 위해 기준으로 삼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의미다.
규제 형평성 문제 제기도 중요한 카드가 됐다. 정부와 기업은 덴마크 현지에 유통 중인 타사 제품 가운데 불닭볶음면보다 스코빌지수가 더 높은 매운 식품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파악해 상대국에 알렸다. 유사하거나 더 매운 제품은 그대로 둔 채 특정 한국 제품만 회수 조치 대상으로 삼은 것은 과학적 위해성 평가보다는 기준 적용의 일관성에 의문을 낳을 수 있다는 논리였다. 이러한 지적은 안전 규정을 명분으로 한 잠정적 비관세 장벽 논란을 피하고자 하는 유럽 당국에도 부담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평가된다.
결국 덴마크는 우리 정부와 기업이 제출한 실제 분석값과 노출 시나리오, 조리 손실 자료, 현지 시장 내 비교 제품 정보 등을 종합 검토해 회수 조치를 철회했다. 식약처는 이번 사례를 계기로 매운맛 라면과 같은 특성 식품에 대한 해외 규제에 체계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전용 백서를 발간했다. 여기에는 캡사이신 분석 방법, 노출평가 설계, 해외 위해성 평가 동향, 식문화 설명 전략, 규제 형평성 검토 절차 등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유럽을 중심으로 매운맛 식품에 대한 규제 논의가 이어질 여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학교·청소년 보호, 광고 규제, 경고 문구 부착 의무 등 비독성 영역 규제가 강화될 수 있고, 향후 특정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판매 제한 논의도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캡사이신 독성에 대한 국제 공통 기준이 아직 정립되지 않은 만큼, 향후 추가 연구 결과에 따라 규제 환경이 유동적으로 변동될 가능성도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불닭 리콜 철회 사례가 식품 규제외교의 첫 시험대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한다. 한 식품안전 분야 연구자는 식품 위해성 논쟁이 통상 마찰로 번지는 상황에서, 과학적 데이터와 국제 평가 동향, 식문화 설명, 규제 형평성 검토를 결합한 전략이 앞으로 수출 주도형 식품 산업의 기본 방어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계는 매운맛 제품뿐 아니라 기능성 식품, 대체단백 식품 등 새로운 카테고리를 둘러싼 규제 논쟁에서도 이번 백서가 실질적 참고 자료가 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기술과 데이터, 규범과 외교가 맞물리는 규제 환경에서, K푸드가 얼마나 안정적으로 글로벌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가 향후 성장의 관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