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엑소더스 현실화”…윤석열 탄핵 정국 이후 검사 161명 사표, 10년 새 최다
검찰 조직을 둘러싼 정치적 충돌과 인사 파동이 맞물리며 사표 행렬이 거세졌다. 12·3 비상계엄에 따른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정국과 정권 교체 이후 이어진 검찰개혁 논쟁 속에서 검사들이 조직을 떠나는 이탈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2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의원실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이달 10일까지 퇴직한 검사는 161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퇴직자 132명을 이미 넘어섰고, 정권 교체기였던 2022년의 146명보다도 많다. 최근 10년 통계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다.

연차별로 보면 10년 미만 저연차 검사 퇴직이 두드러졌다. 올해 사표를 낸 검사 161명 가운데 10년 미만은 52명으로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연도별 10년 미만 검사 퇴직자는 2021년 22명, 2022년 43명, 2023년 39명, 지난해 38명으로, 50명을 넘긴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정권이 교체된 뒤 퇴직 러시는 더욱 가팔라졌다. 특히 9월 한 달 동안에만 47명의 검사가 사표를 제출해 이른바 엑소더스가 현실화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검찰청 폐지를 포함한 강도 높은 검찰개혁 입법과 조직 개편 논의가 본격화된 시점과 맞물렸다는 점에서 정치 환경의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정부와 여당은 검찰청 폐지를 축으로 한 정부조직법 개정을 추진하며 수사·기소 분리, 검찰 직접수사 축소 등 제도 개편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에 대해 일선 검사들 사이에서는 형사 사건 처리를 도맡아온 검찰 조직이 개혁의 저항 세력으로 지목되고 있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차호동 전 대전지방검찰청 서산지청 부장검사는 정부조직법 개정안 통과 직후인 지난 9월 사직하면서 정면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당시 "전국적으로 4만건 가까운 형사 사건이 공중에 붕 떠 있는 지경"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수사 현장의 인력 부족과 제도 변경의 속도가 맞물리며 사건 처리 공백이 현실화했다고 주장했다.
새로 꾸려진 검찰 지휘부는 조직 안정을 다지면서도 검찰개혁 입법에 대응해야 하는 이중 과제를 떠안게 됐다. 박철우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 등 새 지도부는 신속한 사건 처리를 거듭 강조하고 있지만, 이미 세 건의 특별검사팀에 100여 명의 검사가 차출된 상황이다. 여기에 관봉권·쿠팡 의혹을 겨냥한 상설특검에도 추가 인력을 파견해야 해 수사·공판 일선의 인력난이 심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대장동 항소 포기 논란과 관련한 연쇄 사건도 조직 사기 저하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사·기소 분리와 검찰청 폐지 논의 등으로 검찰의 존립 기반이 흔들리는 가운데, 정치권 공방의 핵심에 검찰이 서게 되면서 불안감과 피로감이 누적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연말까지 퇴직자는 더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12·3 비상계엄과 관련해 공직자들의 불법행위 가담 여부를 조사하는 헌법존중 정부혁신 태스크포스 설치도 내부 갈등의 새로운 뇌관으로 지목된다. 국무총리실 방침에 따라 법무부와 대검찰청 등 각 기관에 TF가 설치됐고, 작년 12월 3일 비상계엄 직전 6개월부터 직후 4개월까지 총 10개월간 비상계엄을 모의·실행·정당화·은폐한 행위 전반이 조사 대상이 됐다.
대검찰청은 지난 21일 구자현 검찰총장 직무대행 겸 대검찰청 차장검사를 단장으로 하는 10여 명 규모의 TF 구성을 마쳤다. 부단장은 김성동 대검찰청 감찰부장이 맡고, 팀장은 주혜진 대검찰청 검찰1과장이 담당한다. 실무를 맡을 검사들뿐 아니라 변호사, 교수 등 외부위원도 참여한다. TF는 24일부터 제보센터를 열어 관련 제보 접수를 시작할 계획이다.
법무부 역시 정성호 법무부 장관을 단장으로 하고 외부위원이 참여하는 TF를 별도로 꾸렸다. 법무부 TF는 대검 TF와 보조를 맞추면서도 법무 행정 전반에서의 제도 개선 사항을 점검한다는 방침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검찰 내부에서는 TF 가동 방식에 대한 반감이 만만치 않다. 특히 국무총리실이 TF 조사와 관련해 공직자들에게 개인 휴대전화 제출을 요구하며 협조하지 않을 경우 대기발령이나 직위해제 후 수사 의뢰까지 검토하겠다고 밝힌 점을 두고 비판적인 목소리가 크다. 일부 검사들은 헌법상 영장주의와 사생활 보호 원칙을 거론하며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권의 압박도 검찰 조직 안정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권에서는 대장동 항소 포기 경위 설명을 요구하며 집단 성명에 나선 검사장들을 평검사로 강등하거나 감찰·징계를 추진하라는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검찰 고위 간부들이 내부 비판을 공개 표명한 뒤 정치적 책임 논란에 휘말린 양상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지난 19일 박재억 전 수원지방검찰청 검사장 등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이들은 대장동 항소 포기와 관련해 집단 성명을 내고 윤석열 전 대통령과 당시 법무부, 검찰 지휘라인을 비판한 행위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공식·비공식 채널을 통해 경위 설명을 요구받았던 검찰 고위 인사 가운데 박재억 전 지검장과 송강 전 광주고등검찰청장은 이미 사표를 내고 조직을 떠났다. 정치권 압박과 내부 징계 가능성이 맞물리며 중간 간부급과 평검사 사이에서도 향후 거취를 고민하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는 전언도 나온다.
검찰개혁 입법 추진, 탄핵 정국, 특검 수사 확대, 12·3 비상계엄 TF 가동 등 복합 요인이 중첩되면서 검찰 조직은 인력 유출과 사기 저하라는 이중 부담에 직면했다. 여야 공방이 격화되는 가운데, 정부는 TF 조사와 특검 수사, 형사사건 처리를 병행하면서도 조직 이탈을 최소화할 관리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다. 국회는 검찰개혁 후속 입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현장의 인력난과 수사 공백 우려를 어떻게 반영할지 다음 회기에서 본격 논의에 나설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