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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의료AI 파운데이션 모델…루닛, UAE 협력으로 확산 속도낸다

윤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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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인공지능 기반 파운데이션 모델이 중동 의료 시스템을 통해 글로벌 확산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내 의료AI 기업 루닛이 정부의 전략산업 경제협력 사절단에 포함되며 아랍에미리트 현지 의료 IT 기업과 손을 잡았다. 양측은 한국에서 개발 중인 의과학 특화 파운데이션 모델을 중동 병원과 공공의료 시스템에 시범 적용해 디지털 헬스 전환을 가속한다는 구상이다. 업계에서는 중동의 대규모 의료 인프라 투자와 맞물려 의료AI 경쟁의 새로운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루닛은 아랍에미리트의 IT 인프라 및 의료 통합기업 ARJ그룹과 의료AI 및 디지털 헬스 혁신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20일 밝혔다. 이번 협력은 이재명 대통령의 첫 중동 국빈 방문 일정에 맞춰 추진됐으며, 정부가 추진 중인 AI와 첨단기술 분야 전략산업 협력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뤄졌다. 루닛은 정부 사업으로 개발 중인 의과학 특화 AI 파운데이션 모델을 핵심 기술로 제시했고, ARJ그룹은 중동 전역에 구축해 온 의료·IT 인프라를 접목해 공동 사업을 전개하는 역할을 맡는다.

ARJ그룹은 1997년 설립된 의료·정보통신 융합 기업으로, 중동 지역에서 병원 정보시스템과 네트워크, 데이터센터 등 IT 인프라와 영상진단 장비·의료 소프트웨어를 함께 공급해 온 통합 솔루션 업체다. 병원과 공공 의료기관에 필요한 시스템을 기획부터 구축, 운영까지 제공하는 이른바 엔드투엔드 방식의 서비스를 지향하며, 각국의 의료 규제와 병원 프로세스에 맞춘 현지화 역량을 축적해 왔다.

 

양사가 협력하는 AI 파운데이션 모델은 대규모 의료 데이터로 미리 학습한 범용 인공지능을 뜻한다. 의료영상, 임상기록 등 다양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기본적인 패턴과 구조를 학습해 두고, 이후 특정 질환이나 기관에 맞춰 추가 학습을 진행하면 빠르게 맞춤형 진단 보조 모델을 만들 수 있는 구조다. 기존처럼 병원마다 데이터를 모아 개별 알고리즘을 처음부터 다시 개발하는 방식과 비교하면, 개발 기간을 줄이고 성능 편차를 완화할 수 있는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

 

루닛이 준비 중인 의과학 특화 파운데이션 모델은 영상의학, 종양학 등에서 쌓은 알고리즘 개발 노하우를 토대로 의료 데이터에 특화된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다양한 병원 환경에서 수집된 데이터를 학습해 노이즈와 장비 차이에 덜 민감하도록 설계하는 한편, 향후 각국 규제에 맞춰 설명 가능성, 안전성 평가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고도화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동 병원이 사용하는 장비와 시스템 환경에 맞춘 추가 튜닝을 통해 실제 임상 현장에서의 활용성을 검증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번 MOU의 1차 목표는 UAE를 포함한 중동 지역 병원과 공공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파운데이션 모델을 시범 적용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흉부 엑스레이 판독, 암 검진 보조, 중환자실 모니터링 등 의료 현장에서 수요가 높은 영역부터 파일럿 프로젝트를 펼칠 가능성이 거론된다. 루닛은 기존의 영상 판독 AI 솔루션을 운영하며 확보한 성능과 검증 레퍼런스를 바탕으로 신뢰 확보에 나서고, ARJ그룹은 각국 보건당국 및 병원 네트워크와의 조율, 시스템 통합을 맡는 구조가 예상된다.

 

특히 이번 협력은 걸프협력회의 국가 전체를 아우르는 교두보로 평가된다. ARJ그룹은 UAE 외에도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등으로 사업을 확장해 정부기관, 공공의료체계, 대형 병원, 에너지기업 등 다양한 고객군을 확보해 왔다. 여기에 유럽과 중국 등지의 파트너십도 보유하고 있어, 파운데이션 모델이 중동을 거점으로 다지역 다언어 환경에 연속적으로 확산될 여지도 열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의료AI 기반 파운데이션 모델 경쟁은 본격화되는 분위기다. 북미와 유럽에서는 빅테크와 의료기관이 협력해 대규모 의료데이터 특화 모델을 개발하고, 이를 영상 판독, 임상 의사결정 보조, 병원 운영 최적화 등에 적용하는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중동은 재정 여력과 인프라 투자가 집중되는 만큼, 새로운 기술을 조기 도입해 레퍼런스를 확보하려는 수요가 크다는 점에서 국내 기업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평가다.

 

관건은 규제와 데이터 활용 구조다. UAE를 비롯한 중동 각국은 국가 단위 디지털 헬스 전략을 추진하면서도, 환자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국외 이전 통제를 강화하는 추세에 있다. 파운데이션 모델 학습에 필요한 대규모 데이터 접근과 국경 간 데이터 이전을 어떻게 설계할지에 따라 사업 속도와 범위가 달라질 수 있다. 한국의 의료AI 규제 체계, 데이터 비식별화 기준과 중동 국가의 제도를 조율하는 작업도 병행이 필요해 보인다.

 

서범석 루닛 대표는 이번 협력에 대해 AI 파운데이션 모델 기반 의료 혁신을 도입하는 의미 있는 첫걸음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에서 시작된 AI 기반 미래 의료 프로젝트를 중동에서 본격 구현하고 확산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밝히며, 이를 바탕으로 중동 지역에서의 사업과 매출 확대를 가속하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산업계는 파운데이션 모델이 실제 병원 현장에서 성과를 입증하고 각국 규제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 그리고 이 과정이 글로벌 의료AI 경쟁 구도를 어떻게 재편할지에 주목하고 있다.

윤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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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닛#arj그룹#ua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