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간이식 대신 절제술 추천”…서울성모, 자원 효율 높여 생존 개선
간세포암 수술 전략을 인공지능으로 미리 시뮬레이션해 간이식과 간절제술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유리한지 제시하는 모델이 국내에서 개발됐다. 간이식은 재발이 적지만 공여자 부족이라는 자원 제약이 따르고, 간절제술은 비교적 접근성이 높지만 예후 예측이 까다롭다. 이번 모델은 수술 전 다변량 데이터를 기반으로 3년 생존률을 계산해 환자별 최적 치료법을 추천하는 구조로, 업계에서는 한정된 공여 장기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면서도 생존률을 높일 수 있는 ‘AI 기반 정밀 수술 의사결정’의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은 한지원 소화기내과 교수와 김현욱 가톨릭의대 의학과 학생 연구팀이 간세포암 환자에 대해 간이식과 간절제술 중 어느 수술이 더 적합한지 판별하는 인공지능 기반 의사결정 지원 모델을 개발했다고 9일 밝혔다. 간세포암은 원발성 간암의 약 80~90%를 차지하는 대표 질환으로, 현재 가장 근본적인 치료법은 간이식과 간절제술 두 가지 수술 방식이다.

간이식은 종양과 손상된 간을 함께 교체해 근본적인 치료를 시도하는 만큼 재발률이 낮은 편이지만, 공여자 부족과 고비용, 이식 후 장기 면역억제제 관리 부담이 뒤따른다. 반면 간 기능이 비교적 양호하고 종양이 단일이며 위치가 좋은 환자는 간절제술만으로도 비교적 좋은 예후를 기대할 수 있어, 실제 임상에서는 절제술이 우선 고려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동안 국제 간암 진료지침 등에서는 종양 크기와 개수, 간 기능, 응급도, 기증자 조건을 종합해 간이식 여부를 판단해왔다. 문제는 이 기준에 명확히 들어맞지 않는 ‘경계선 회색지대’ 환자군이다. 이 경우 같은 임상 정보를 보고도 의료진별 판단이 갈릴 수 있고, 제한된 공여 장기 자원을 어디에 우선 배분해야 하는지 결정이 더욱 복잡해진다. 한 교수 연구팀은 이 지점을 인공지능으로 정량화된 의사결정 도구를 제공할 수 있는 영역으로 봤다.
연구팀은 한국중앙암등록본부와 서울성모병원 데이터를 합쳐 총 4529명의 간세포암 환자 코호트를 구축했다. 이 가운데 3915명을 유도 코호트로, 614명을 외부 검증 코호트로 활용해 후향적 분석을 진행했다. 수집된 30개 변수에는 연령, 성별 등 인구통계학적 요인뿐 아니라 간 기능 관련 검사, 종양 크기와 개수, 혈중 종양표지자 수치 등 임상 특성이 폭넓게 포함됐다.
모델 개발 과정에서는 여러 머신러닝 기법을 비교 평가했다. 인공지능은 각 환자가 간이식이나 간절제술을 받았을 때 각각의 3년 생존률을 예측하는 방식으로 설계됐다. 다시 말해 특정 환자의 다변량 데이터를 입력하면, 수술 시나리오별 생존 확률을 동시에 시뮬레이션하고 둘 중 더 높은 쪽을 ‘권고 치료’로 제시하는 구조다.
성능 비교 결과, 간이식 예후 예측에는 지지벡터머신 모델이 가장 높은 적합도를 보였다. 지지벡터머신은 고차원 데이터에서 두 집단을 가르는 최적 경계를 찾는 대표적 분류 알고리즘으로, 연구팀 모델에서 곡선하면적 AUROC 기준 0.82, 정확도 82%를 기록했다. 간절제술 예후 예측에는 캣부스트 알고리즘이 우수한 성능을 보였다. 캣부스트는 범주형 변수가 많은 의료 데이터에 특화된 그래디언트 부스팅 계열 모델로, 여러 결정 트리를 단계적으로 결합해 예측 오류를 줄여가며 학습하는 방식이다. 해당 모델의 정확도는 79%였다.
모의 분석에서 연구팀은 실제 임상에서 선택된 수술과 AI 모델이 권고한 수술을 비교해 사망 위험 차이를 산출했다. 그 결과 인공지능 모델 권고를 따랐을 때 전체 사망 위험이 기존 임상 결정 대비 54% 감소하는 효과가 나타났다. 통계적 유의성도 높게 확인돼, 단순한 이론 모델이 아니라 실질적인 예후 개선 잠재력을 가진 의사결정 도구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기존 간이식 환자군을 대상으로 한 재분류 분석에서 주목할 만한 결과가 도출됐다. AI 모델은 실제로 간이식을 받은 환자 가운데 74.7%를 간절제술이 더 적합한 환자로 분류했다. 반대로 간절제술을 받은 환자 중에서는 19.4%에게만 간이식을 권고했다. 공여 장기가 부족한 현실을 감안하면, 생존률을 크게 저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절제술로 치료해도 되는 환자를 대거 가려냈다는 의미다.
연구팀은 이 결과가 단지 수술 선택의 기술적 문제를 넘어서, 장기 기증이라는 사회적 자원의 배분 방식에도 직접적인 시사점을 던진다고 해석했다. 간이식이 대체로 예후가 유리하다고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비슷한 생존 경과를 보이는 환자들을 미리 가려내 절제술로 돌릴 수 있다면, 공여 장기는 더 중증이거나 간 기능이 나쁜 환자에게 집중적으로 배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적으로도 장기 이식 분야에서는 데이터 기반 우선순위 산정 체계가 정교해지는 추세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MELD 점수 등 간 기능 지표를 중심으로 이식 대기 순서를 정하는 시스템을 운영해 왔지만, 아직 개별 환자의 수술법별 장기 예후를 동시에 비교해 주는 인공지능 기반 도구는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서울성모병원 연구팀 모델은 이러한 글로벌 흐름 속에서 아시아 환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구축된 대규모 정밀 예측 도구라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다만 이번 연구가 후향적 데이터 분석에 기반했다는 점에서, 실제 임상에서 모델 권고에 따라 수술 전략을 변경했을 때도 같은 수준의 효과가 재현되는지 검증이 필요하다. 전향적 임상시험과 다기관 검증을 통해 알고리즘의 일반화 성능과 안전성을 확보해야 식품의약품 규제기관의 인허가를 거쳐 의료기기 소프트웨어로 상용화될 수 있다. 특히 한국과 미국, 유럽에서는 진단 보조 소프트웨어와 수술 의사결정 지원 도구를 의료기기 소프트웨어로 분류해 임상 근거와 품질 관리 기준을 엄격히 요구하고 있어, 추가적인 규제 대응 전략도 과제로 남는다.
의료 현장의 수용성도 관건이다. 간이식처럼 고난도 수술에서는 숙련된 의료진의 경험과 직관이 여전히 핵심 변수로 작용하는 만큼, 인공지능은 ‘대체’가 아니라 ‘보조’ 역할에 머물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번 모델 역시 환자별 생존 추정치를 수치화해 보여줌으로써 회색지대 영역에서 의료진의 판단을 뒷받침하는 ‘두 번째 의견’에 가까운 도구로 설계됐다. 실제 상용화 과정에서는 설명 가능한 AI 기술을 접목해 추천 근거를 직관적으로 제시하는 기능이 뒷받침돼야 할 전망이다.
연구 성과는 산업적 측면에서도 파급력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간암은 아시아 지역에서 특히 높은 유병률을 보여 의료 AI 기업과 병원 정보시스템 업체들이 집중해 온 분야다. 고정밀 예후 예측 모델이 상용화되면, 전자의무기록 시스템에 연동된 ‘수술 옵션 시뮬레이터’ 형태로 구현돼 의료진이 외래와 다학제 회의에서 즉시 활용하는 그림도 가능하다. 보험자 입장에서도 장기 생존률과 의료 자원 소모량을 정량화할 수 있어, 장기 이식 관련 급여 정책 설계에 반영될 여지도 있다.
이번 연구는 필수 의료 분야 강화를 목표로 한 글로벌 의사과학자 양성사업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간암 치료에 정통한 교수와 의과대학 본과 4학년 학생이 함께 구축한 모델이 국제학술지에 실렸다는 점에서, 향후 의료 AI 연구를 이끌 ‘의사과학자’ 인력 양성의 성과라는 평가도 뒤따른다. 연구결과는 5월 간질환 분야 국제학술대회 The Liver Week 2025에서 우수구연상을 수상한 데 이어, 미국의학협회가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자마 네트워크 오픈에 게재됐다.
한지원 교수는 새로 개발된 간암 환자 맞춤형 치료 AI 모델이 간이식과 간절제술 각각에 대한 환자 개인별 생존 추정치를 제시함으로써, 의료진이 최적의 수술 전략을 수립하는 데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산업계와 의료계는 앞으로 이 기술이 실제 임상 프로세스와 제도권 안으로 안착해, 생존률 향상과 공여 장기 자원 효율성이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