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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장 18명 고발, 협의했어야"…이재명 순방 중 민주당 또 엇박자 논란

한채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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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해외 순방 기간마다 되풀이된 여권 내부 충돌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더불어민주당이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상대로 형사 고발에 나선 것을 두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당 지도부가 엇갈린 움직임을 보이면서다.

 

20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전날 기자회견을 열고,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집단 반발한 이른바 항명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고발에는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의원을 비롯해 조국혁신당 박은정, 무소속 최혁진 의원 등 범여권 법사위원들이 참여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원내 지도부는 고발 방침이 사전 협의 없이 이뤄졌다며 불편한 기류를 감추지 않았다.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어제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며 "회의에서 그 논의는 진행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김병기 원내대표도 전날 퇴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강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며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법 이슈의 파급력을 고려할 때 최소한의 조율은 필요했다는 취지다.

 

더불어민주당 안팎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의 해외 순방 기간과 맞물려 당내 이견이 표출된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아프리카와 중동을 잇는 순방 일정을 소화하는 와중에 고발 논란이 불거지면서, 대통령의 외교 행보가 국내 정치 공방에 가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다시 제기되고 있다.

 

김병기 원내대표는 지난 17일에도 당 회의에서 "대통령님이 해외 나갈 때마다 꼭 당에서 이상한 얘기해서 성과가 묻히는 경우는 앞으로 없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당이 일정 기간 강경 메시지를 자제하고 정국을 관망하자고 주문했지만, 법사위의 집단 고발로 기조가 흔들렸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이보다 앞서 지난해 9월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던 시기에도 유사한 갈등이 있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법사위원들은 지도부와 사전 논의 없이 조희대 대선 개입 의혹 관련 청문회 의결을 강행해 원내 지도부와 마찰을 빚었다. 당내에서는 같은 유형의 파열음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당 지도부의 한 핵심 관계자는 이날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물론 상임위의 모든 의사 결정과 행동을 지도부에 보고하고 협의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법 이슈는 파급력이 크고 민감한 만큼 지도부와 논의를 거쳤어야 했다"고 말했다. 상임위 자율성은 존중하되, 정국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한 정치적 판단이 필요했다는 주장이다.

 

검사장 고발이 당내 균열로 비칠 조짐을 보이자, 법사위원 일부는 진화에 나섰다. 법사위 소속 김기표 의원은 KBS 라디오에 출연해 "검찰의 지나친 정치 세력화와 집단행동에 대한 대응을 두고 다양한 의견들이 있었고, 고발에 대해서도 치열한 찬반 논쟁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래도 엄단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의견이 모아져 고발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다만 고발 과정에서 원내 지도부와 교감이 있었는지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김 의원은 "저희가 토론할 때는 원내 지도부와 논의 여부를 확인 안 했다"며 "결론이 나면 간사나 위원장이 지도부와 교감을 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상임위 내부 논의와 지도부 소통 구조가 분리돼 있다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일각에서는 검사장 고발을 두고 당내 갈등으로 해석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친명계 중진인 김영진 의원은 MBC 라디오에서 "원내대표는 전체 정국을 관리하는 입장이기에 그런 의사를 표시한 것이고, 법사위의 고발은 그동안 다반사로 일어난 일 정도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법적 판단을 받아보겠다는 법사위원들의 판단이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당 지도부 관계자도 통화에서 "검사들의 항명에 대한 문제 인식은 모두가 공유하고 있고, 법사위 의원들은 고발은 상임위 자체 활동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도부와 상임위가 기본 인식은 공유하고 있으며, 내부 조율 방식의 차이가 불거진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이날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법 왜곡죄와 판·검사 퇴임 후 수임 제한법 등 쟁점 법안을 심사하기 시작했다. 이들 법안은 검찰·법원에 미치는 영향이 큰 사법개혁 의제인 만큼 정치적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원내 지도부는 관련 법안 처리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오늘 소위에 올라가는 법안은 아직 당 차원 수준으로 논의된 법안이 아니다"라며 "소위에서 논의하는 단계로, 중요 법안은 속도와 수위 등에 대한 정무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회는 향후 회기에서 검사장 고발 후속 조치와 함께 사법개혁 법안 심사 방향을 두고 치열한 공방을 이어갈 전망이다.

한채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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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국회법제사법위원회#김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