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비전 메타투리스모 시대 선언”…기아 80년 서사, 미래 모빌리티로→전환점

이도윤 기자
입력

기아가 창립 80주년을 맞아 과거의 궤적을 정리한 브랜드 사사와 미래를 상징하는 콘셉트카를 한 자리에 세우며, 한국 자동차 산업사의 한 축을 이뤄온 여정을 재조명했다. 5일 경기 용인시 비전스퀘어에서 열린 기념행사에서 기아는 30여년 만의 신간 사사 ‘기아 80년’과 미래 콘셉트카 ‘비전 메타투리스모’를 나란히 공개하며, 축적된 제조 역량과 디자인 철학을 기반으로 한 새 모빌리티 비전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됐다. 행사에는 정부 관계자와 기아 전현직 임직원 400여명이 참석해, 한국 산업사와 함께 성장해온 기업의 이정표를 공유했다.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회장은 기념사에서 “기아의 80년은 한편의 서사처럼 위대한 여정이었습니다”라고 언급하며, 산업화 초입부터 글로벌 브랜드로의 도약에 이르기까지 이어진 기아의 궤적을 한 편의 장대한 이야기로 규정했다. 그는 현대자동차그룹을 대표해 지난 80년을 기억하며 함께해온 모든 관계자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며, 그룹 내에서 기아가 수행한 선도적 역할과 앞으로의 도약을 강조했다. 행사에는 국회와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이 대거 자리하며, 단일 기업의 기념행사를 넘어 국가 제조 경쟁력의 변곡점을 돌아보는 자리로 의미를 더했다.  

“비전 메타투리스모 시대 선언”…기아 80년 서사, 미래 모빌리티로→전환점
“비전 메타투리스모 시대 선언”…기아 80년 서사, 미래 모빌리티로→전환점

이번에 발간된 ‘기아 80년’은 1994년 50주년 사사 이후 30여년 만에 선보이는 공식 기록물로, 기아가 현대자동차그룹에 합류한 이후 출간된 첫 사사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1944년 경성정공으로 출발한 이래 두 바퀴 자전거에서 삼륜차, 승용차, 전기차, 목적기반모빌리티까지 이어진 기아 성장사를 ‘도전과 분발’이라는 주제로 재구성했다. 제조 기반이 취약하던 시기에 기술 입국을 내세웠던 김철호 창업자의 기개, 외환위기 국면에서 품질 경영으로 회생을 이끈 정몽구 명예회장의 전략, 현대차그룹 편입 후 글로벌 경영과 디자인 경영을 통해 브랜드 체질 개선을 추진한 정의선 회장의 리더십이 유기적 맥락으로 서술됐다.  

 

사사는 기아의 역사를 단순 연표가 아닌 서사 구조로 정리해, 각 전환점에서의 선택과 전략을 산업사적 관점에서 조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국내 첫 국산 자전거 개발, 상용 및 승용차 라인업 확장, 글로벌 생산기지 구축, 전동화 및 PBV 전략 수립 등 주요 분기점을 입체적으로 다뤄 한국 자동차 산업의 성장 과정과 맞물려 분석했다. 기아는 일반 독자와 고객을 위해 내용을 압축한 축약본 ‘도전과 분발/기아 80년’도 함께 발간해, 전문 연구자뿐 아니라 대중도 접근할 수 있는 기록 체계를 마련했다.  

 

기아 송호성 사장은 사사 편찬 의미를 언급하며 “기아 80년 사사 편찬에서의 교훈을 바탕으로 창업 이래 이어온 ‘분발의 정신’을 되새길 것”이라고 말하며, 역사 기록을 단순한 회고가 아닌 향후 전략 수립의 자산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업계에서는 기아의 사사 발간이 과거 공장 중심의 제조기업 이미지를 넘어, 디자인·소프트웨어·모빌리티 서비스로 외연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미래를 향한 기아의 시선은 콘셉트카 ‘비전 메타투리스모’에서 보다 선명하게 드러났다. 기아는 이번 행사를 통해 새로운 모빌리티 비전을 담은 미래 콘셉트카를 최초로 공개하며, 향후 전동화와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 시대에 대한 방향성을 시각적으로 제시했다. 비전 메타투리스모는 역동적인 주행 성능과 여유로운 실내 공간을 결합해, 이동의 개념을 주행 중심에서 휴식과 소통을 포괄하는 경험 중심으로 확장한 기획으로 소개됐다.  

 

특히 비전 메타투리스모는 1960년대 장거리 여행의 낭만과 매력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자동차를 단순 교통수단이 아닌 장거리 이동 경험의 플랫폼으로 정의하려는 시도가 담겼다. 외장 디자인에는 기아의 디자인 철학인 오퍼짓 유나이티드 개념이 반영돼, 부드러운 표면과 기하학적 요소의 대비를 통해 미래지향적 실루엣을 강조했다. 양극적 요소의 창의적 융합이라는 철학은, 엔지니어링과 예술, 디지털과 아날로그 감성의 공존을 추구하는 최근 기아 디자인 전략과도 맞닿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내장 디자인은 디지털 기술을 통해 인간과 모빌리티의 상호작용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구성됐다. 특히 증강현실 헤드업 디스플레이 기술을 활용해 ‘스피드스터’, ‘드리머’, ‘게이머’ 등 3가지 디지털 주행 모드를 탑재했다. 운전자는 별도의 고글이나 헬멧 없이 차량에 탑재된 스마트 글래스를 통해 가상의 그래픽과 실제 도로를 겹쳐 보는 형태의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자동차 내부를 하나의 디지털 캔버스로 전환하는 시도는, 소프트웨어 정의 시대에 브랜드별 사용자 경험 차별화가 핵심 경쟁력이 될 것이라는 업계의 지적과 궤를 같이한다.  

 

기아는 용인 비전스퀘어 1층을 ‘움직임의 유산’이라는 이름의 상설 전시 공간으로 구성해, 창립 80주년의 의미를 고객과 대중이 체감하도록 했다. 이 전시는 1952년 완성된 최초의 국산 자전거 3000리호를 필두로 스포티지, 카니발 등 기아를 대표해온 차량 17대를 배치해, 브랜드의 궤적을 실제 제품을 통해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기획됐다. 자동차가 곧 산업사이자 생활문화의 매개체였던 시절부터, 오늘날 모빌리티 서비스로 확장되는 과정까지를 입체적으로 드러내는 구성이라는 평가다.  

 

전시는 ‘바퀴와 유산’, ‘진화와 유산’, ‘개척과 유산’ 등 8개의 세부 공간으로 나뉘어 기아의 정체성을 다각도로 해석했다. 김철호 창업자의 비전을 다룬 ‘바퀴와 유산’에서는 기술 독립과 제조 기반 구축을 위한 초기 노력에 초점을 맞췄고, 고객 중심 DNA를 조명하는 ‘진화와 유산’에서는 제품 기획과 서비스 철학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다뤘다. ‘개척과 유산’ 공간은 현지 생산 전략을 바탕으로 해외 시장으로 뻗어나간 과정을 다루며,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 확장과 지역 맞춤형 전략이 현재의 기아 브랜드 위상을 형성한 배경으로 제시됐다.  

 

특히 ‘사람과 유산’ 공간에서는 “품질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메시지로 상징되는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의 리더십과, 장수 모델 스포티지와 카니발의 개발 및 진화 과정이 함께 소개됐다. 품질 중심 철학이 단일 차종의 성공을 넘어 기업 체질 개선과 글로벌 신뢰 구축으로 이어졌다는 점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구성이다. ‘움직임의 유산’ 전시는 2029년까지 장기 운영될 예정으로, 기아 브랜드의 정체성을 안정적으로 축적하고 연구·교육 자료로도 활용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오프라인 전시와 더불어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브랜드 스토리 확장도 병행됐다. 기아는 일러스트레이터 오요우 작가와 협업해 제작한 일러스트레이션과 함께, 기아 80년의 역사와 스토리, 역대 출시 차량을 고객 관점에서 재구성한 온라인 플랫폼 ‘무브먼트 아카이브’를 선보였다. 이 플랫폼은 사용자가 시간대와 차종, 디자인 코드 등에 따라 브랜드의 변화를 탐색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 영상 캠페인 ‘더 포트레이트 오브 기아’도 공개돼, 브랜드와 사람, 도시와의 관계를 영상 언어로 재해석했다.  

 

기아는 역사 기록을 단방향 전시로 끝내지 않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사료 공모 캠페인 ‘기아 트레저 헌트’를 시행해 고객의 기억과 경험을 공식 아카이브에 편입하는 시도를 병행한다. 개인이 보관해온 사진, 소장품, 에피소드 등이 수집되면, 기아의 공식 기록은 기업 내부 문서 중심에서 사용자 경험 중심으로 확장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시도가 “제품의 진화사를 넘어 생활 속 브랜드사 구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자동차 산업이 전동화,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 등 대전환기에 들어선 상황에서, 기아의 80주년 기념 행보는 과거 제조 역량에 머물지 않고 미래 모빌리티 기업으로의 전환을 선언하는 신호로 해석된다. 사사 발간과 콘셉트카 공개, 상설 전시와 디지털 아카이브를 묶어낸 이번 전략은 기술·디자인·브랜드 스토리텔링을 통합하는 방향으로 설계됐다는 점에서, 향후 기아가 추구할 사용자 경험 중심의 모빌리티 비전을 예고하는 장면으로 읽힌다. 업계 전문가들은 기아가 역사 서사를 정교히 다듬어 글로벌 시장에서 브랜드 프리미엄을 확보할 수 있을지, 그리고 비전 메타투리스모에 담긴 개념이 실제 양산 모델과 서비스로 어떻게 계승될지를 중장기 관전 포인트로 지목하고 있다.

이도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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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정의선#비전메타투리스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