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오넬라증 경고등 켜진 온수욕조…영국 숙소 사망사건에 관리 논란
따뜻한 물을 사용하는 스파와 온수욕조가 감염성 폐렴의 새로운 위험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영국에서 70세 여성이 가족 여행 중 머문 숙소의 온수욕조 사용 뒤 레지오넬라증으로 숨지면서, 레저시설 수질 관리와 감염병 안전 규제의 사각지대가 부각되고 있다. 고령층과 기저질환자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수인성 호흡기 감염이 숙박업과 관광 산업 전반의 리스크 요인으로 떠오르는 모양새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건이 스파 시설 위생 관리 기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영국 일간 더선 등 현지 매체 보도에 따르면 사건은 2020년 2월 영국 와이트섬 태프넬 팜 휴가용 코티지에서 발생했다. 당시 해당 숙소를 찾은 70세 폴렛 크룩스는 객실에 설치된 온수욕조를 이용한 뒤 며칠 지나 어지러움과 구토 등 전신 증상을 호소했다. 병원으로 옮겨진 그는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았고, 정밀 검사 끝에 레지오넬라증 진단을 받았다. 이후 상태가 급격히 악화돼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는 유도 혼수상태에 들어갔고, 3월 8일 뇌졸중과 심근경색이 겹치며 사망했다.

레지오넬라증은 레지오넬라 균에 오염된 미세 수증기와 물방울을 흡입해 발생하는 급성 폐렴성 질환이다. 통상 ‘레지오넬라 폐렴’으로도 불리며, 물이 고이고 따뜻한 환경에서 균이 빠르게 증식하는 특성이 있다. 초기에는 미열, 두통, 근육통 등 감기와 비슷한 증상으로 시작하지만 호흡곤란, 고열, 흉통을 동반한 중증 폐렴으로 진행할 수 있어 치사율도 무시하기 어렵다. 특히 면역력이 떨어진 고령자, 만성 폐질환자, 심혈관 질환자 등 취약 집단에 더 큰 위협이 된다.
유족은 감염 경로로 숙소 온수욕조를 지목하며 시설 관리 부실 책임을 주장하고 있다. 자녀들은 조사 과정에서 “욕조에서 악취가 나고 물색이 녹색으로 변해 있었다”며 “숙박 내내 위생 점검이나 수질 관리가 이뤄지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반면 시설 관리자는 정기 점검에 문제가 없었다고 반박하며 관리 책임을 부인했다. 현장 관리 여부와 점검 기록의 신뢰성을 둘러싸고 유족과 시설 측 주장이 첨예하게 엇갈린 셈이다.
사건 이후 환경보건팀이 현장 조사를 진행해 문제 제기가 이뤄진 온수욕조의 수질을 분석했지만, 직접적인 레지오넬라 양성 반응은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같은 부지에 설치된 다른 온수욕조에서 수질 불량을 시사하는 지표가 검출되면서, 복수의 스파 시설 전반에 걸쳐 관리 체계에 허점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지방자치단체는 “감염이 실제로 이 시설에서 발생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인과관계 입증 부족을 이유로 기소 불가 결론을 내렸다. 사망 원인과 특정 시설의 책임을 연결하는 역학적 증거의 기준이 얼마나 높아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도 남았다.
레지오넬라균은 온도 20도에서 50도 구간에서 활발히 증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적인 온수욕조와 스파 시설이 제공하는 물 온도가 대개 30도에서 40도 사이인 점을 감안하면, 관리 체계가 미흡할 경우 균 번식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는 셈이 된다. 여기에 여과 장치가 오래되거나, 소독제 농도가 낮거나, 물의 순환이 원활하지 않아 장시간 정체될수록 위험성이 높아진다. 전문가들은 특히 잦은 이용과 높은 수온을 특징으로 하는 숙박시설 온수욕조가 레지오넬라증의 대표적인 ‘고위험 환경’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국제 보건당국은 레지오넬라증 예방을 위한 기술·관리 표준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추세다. 세계보건기구는 온수욕조와 스파 시설에서의 감염 예방을 위해 정기적인 소독, 적정 수온 유지, 수질 검사와 장비 세척, 장기간 사용하지 않은 설비의 사전 배수와 고온 소독을 기본 원칙으로 제시한다. 물이 오래 고이지 않도록 순환 시스템을 설계하고, 파이프 내부에 형성되는 생물막을 주기적으로 제거하도록 요구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번 영국 사례처럼 명확한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더라도, 설비 구조와 운영 특성상 상시적인 ‘예방 중심 관리’가 필수라는 것이 공통된 평가다.
온수욕조와 스파를 둘러싼 위생 이슈는 의료와 바이오 안전 관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병원, 요양시설, 피트니스 센터 등 건강 취약계층이 많이 찾는 시설의 경우 유사한 수질 관리 문제가 반복될 경우 집단 발병으로 번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실제로 여러 국가에서 호텔 냉각탑, 병원 온수 시스템, 공공 스파를 매개로 한 레지오넬라증 집단 사례가 보고돼 왔다. 그때마다 시설 관리 기준 강화와 설비 개선이 뒤따랐지만, 민간 숙박업과 관광 업계에서 동일한 수준의 관리 체계를 유지하는 데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디지털 헬스케어와 IoT 기술을 접목한 관리 체계 도입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수질 센서와 자동 소독 장치, 원격 모니터링 시스템을 활용하면 온도와 소독제 농도, 탁도 등 핵심 지표를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이상 징후가 감지될 때 즉각 대응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 개별 시설 운영자에 의존하던 위생 관리에서 데이터 기반의 표준화된 관리 체계로 전환하면, 레지오넬라증과 같은 수인성 감염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설비 투자 비용과 운영 인력 교육, 데이터 관리 책임을 둘러싼 논의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전문가들은 숙박업과 레저 산업이 고령 고객층 확대, 건강 여행 수요 증가와 맞물려 감염병 관리의 새로운 프런티어가 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한 감염내과 전문의는 “레지오넬라증은 조기 진단과 적절한 항생제 치료로 충분히 관리 가능한 질환이지만, 예방 관리가 느슨한 환경에서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며 “시설별 위험 평가와 정기 점검, 이용객 대상 안내를 체계화하는 것이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계는 이번 영국 사건이 법적 책임 공방을 넘어, 스파·온수욕조 시설 관리 기준을 어디까지 끌어올릴 것인지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