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적자 판매는 중대한 법률 리스크”…중국, 자동차 저가 출혈 경쟁에 칼 빼들어 파장 촉각

김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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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시각 기준 12일, 중국(China) 베이징에서 자동차 산업의 가격 행위를 규율하는 새로운 가이드라인 초안이 공개됐다. 자동차 제조·판매 비용보다 낮은 가격에 차량을 공급·판매하는 관행에 당국이 법적 경고를 보낸 조치로, 과열된 저가 경쟁과 이른바 ‘내권’ 현상에 제동을 걸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움직임이 내수 시장은 물론 글로벌 자동차 공급망에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중국 경제 매체 차이신에 따르면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은 12일 ‘자동차 업계 가격 행위 규범 준수 가이드라인’ 초안을 발표하고, 자동차 생산업체와 판매업체가 각종 방식을 동원해 제작·판매 비용보다 낮게 가격을 책정할 경우 중대한 법률 리스크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지시각 기준 14일 공개된 보도에 따르면, 당국은 초안을 통해 자동차 업계 전반의 가격 책정과 프로모션 방식을 세부적으로 규정했다.

中, 자동차 ‘적자 판매 금지’ 가이드라인 제정…저가 출혈 경쟁에 법적 경고
中, 자동차 ‘적자 판매 금지’ 가이드라인 제정…저가 출혈 경쟁에 법적 경고

새 가이드라인은 정상적인 재고 정리를 위한 합리적 가격 인하는 허용하되, 경쟁사 배제나 시장 지배력 강화를 목적으로 한 부당한 저가 판매는 금지하는 방침을 명시했다. 특히 자동차업체가 생산 비용보다 낮은 가격으로 딜러나 무역업체에 차량을 공급하는 행위를 제한 대상으로 분류했고, 양품을 품질이 낮은 제품으로 위장해 가격을 낮추는 방식 등 변칙적인 가격 인하 수단도 문제 행위로 지적했다.

 

당국은 적자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도 구체화했다. 가이드라인은 ‘자동차 생산 비용’을 단순 제조원가가 아니라 관리 비용, 재무 비용, 판매 비용 등 기간 비용을 포함하는 폭넓은 개념으로 정의했다. 생산·판매업체가 이 같은 총비용을 밑도는 수준으로 가격을 책정하는 경우 법적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중국정부는 자동차 판매기업에도 매입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차량을 판매하는 관행을 금지하고, 할인·보조금 제공이나 대등하지 않은 물품 교환 등을 통해 사실상 적자 판매를 유도하는 행위도 규제하겠다고 밝혔다.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은 더불어 판매 현장의 마케팅 관행 전반에 대한 세부 규율을 제시했다. 새 기준에 따르면 판매업체가 할인 프로모션을 진행할 때 제시하는 ‘비교 대상 가격’은 해당 영업장에서 프로모션 시작 전 7일 이내의 최저 실제 거래 가격을 초과할 수 없도록 제한했다. 또한 ‘시장가’, ‘제조사 가이드 가격’, ‘시장 참고 가격’ 등 모호한 용어를 활용해 소비자에게 가격 비교 홍보를 하거나, ‘한정 기간 할인’, ‘재고 정리 가격’ 등의 문구를 사실과 다르게 사용하는 허위 표시 행위도 금지 대상에 포함했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중국 자동차업계에 확산한 과잉 경쟁, 이른바 ‘내권’에 대한 정책 대응의 연장선으로 평가된다.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올해 3월 일부 자동차업체들이 이윤을 희생하면서까지 시장 점유율 확대를 추구하고 있다고 공개 비판한 바 있다. 5월에는 공업정보화부 관계자가 자동차업계 내권 현상에 대한 단속 강도를 높이겠다고 밝히면서, 가격 경쟁보다는 질적 성장으로의 전환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잇달아 발신했다.

 

중국정부의 집중적인 산업 지원 아래 수십 개로 늘어난 완성차 업체들은 최근 ‘0㎞ 중고차’ 판매와 공격적인 수출을 내세운 초저가 경쟁에 나서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부품을 공급하는 하청업체에 대한 대금 지급 지연 등 2차적인 구조적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주요 자동차업체들은 당국의 압박 속에 지난 6월 공급업체 대금 지급 기간을 60일로 단축하겠다고 공개 약속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여전히 수개월에 이르는 대금 연체와 어음 결제 관행이 상당 부분 유지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업계 단체들도 내권 경쟁의 부작용을 공개적으로 경고하고 나섰다. 중국자동차공업협회 관계자는 지난달 발언에서 자동차업체들이 신에너지차를 출시할 때부터 정가를 지나치게 낮게 책정하는 흐름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업계 차원의 높은 경각심을 촉구했다. 협회는 이달 12일 발표한 입장문에서 최근 수년간 이어진 내권식 경쟁이 업계의 건전한 발전을 심각하게 훼손했고, 시장의 정상적 경쟁 질서를 무너뜨려 업계 전체의 이익 수준을 지속적으로 하락시켰다고 진단했다.

 

같은 날 중국자동차유통협회도 별도 입장문을 내고, 올해 상반기 기준 자동차 딜러의 적자 비율이 52.6%까지 치솟았다고 밝혔다. 협회는 전체 딜러의 74.4%가 매입가보다 낮은 가격에 차량을 판매하는 등 다양한 형태의 ‘가격 역전’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며, 영세 딜러의 생존 기반이 위협받고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딜러 보호와 가격 질서 회복을 목표로 한 것이라는 분석이 업계 안팎에서 제기된다.

 

중국 당정은 11일 발표한 중앙경제공작회의 결과 문건에서도 내년 중점 과제 중 하나로 자동차업계를 포함한 내권식 경쟁 단속을 명시했다. 당국은 경쟁 질서가 무너진 산업 분야를 대상으로 추가적인 정책 대응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함께 제시했다. 이에 따라 자동차 분야를 시작으로 다른 제조업과 소비재 산업으로까지 유사한 가격 규율이 확산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해외 주요 매체들은 중국의 이번 조치를 자국 내 과잉 투자와 공급 과잉이 한계에 이른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USA)에서는 이미 중국산 전기차의 저가 공세를 두고 반덤핑 조사와 관세 인상 논의가 진행 중인 만큼, 중국 내 가격 규제 강화가 글로벌 전기차 가격 구조와 무역 갈등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에 관심이 쏠린다. 특정 업체의 덤핑성 수출 여력이 줄어들 경우, 양자 간 통상 마찰이 일부 완화될 수 있다는 기대와 함께, 반대로 중국정부의 산업 보호 조치로 이해돼 서방의 견제가 강화될 수 있다는 시각도 공존한다.

 

전문가들은 중국 자동차업계가 양적 확장 국면에서 질적 성장과 수익성 회복을 중시하는 단계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이번 가이드라인이 신호탄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실제 집행 과정에서 ‘정상적 재고 처리’와 ‘부당한 저가 판매’의 경계를 어떻게 구분할지, 또 지방정부와 규제 기관이 어느 정도 수위로 단속에 나설지가 관건으로 지목된다. 국제사회와 글로벌 자동차 업계는 이번 규제 강화가 중국 자동차 시장 구조와 세계 자동차 산업 경쟁 구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김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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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부#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중국자동차업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