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 막단백질, 순차 결합 실시간 규명”…UNIST, 단분자 집게로 신약 설계 새길
세포 막단백질이 짝을 이루는 과정에서 여러 단계의 중간 과정을 거치는 ‘순차적 결합’ 메커니즘이 세계 최초로 규명됐다. 기존에는 막단백질이 마치 자석처럼 한 번에 결합한다고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지퍼가 잠기듯 여러 중간 단계를 순서대로 거쳐야만 결합이 완성된다는 점이 단일 단백질 분자 수준에서 실시간 관측으로 확인됐다. 연구를 주도한 울산과학기술원(UNIST) 민두영 교수팀은 8일, 막단백질의 결합 과정을 실시간으로 측정할 수 있는 ‘막단백질 상호작용 단분자 집게(single-molecule tweezers)’ 분석법을 통해 이 같은 결합 원리를 처음으로 밝혀냈다고 발표했다. 업계는 이번 발견을 막단백질 표적 신약 설계 경쟁의 분기점으로 본다.
이번 연구에서 UNIST 연구진은 세포 막에 존재하는 단백질이 짝을 이룰 때 특정 부위부터 점진적으로 맞물리고, 최소 두 개 이상의 중간 단계를 거쳐 마침내 짝을 이루는 순차 결합 경로를 처음으로 추적했다. 이때 적용된 단분자 집게 기술은 개별 단백질을 양쪽에서 미세한 힘으로 붙잡아 당기면서 결합·분리 상황을 나노초 단위로 기록하기 때문에, 전통적인 분석법 대비 결합의 실시간 진행상황과 중간 상태를 정밀하게 해석할 수 있다는 점이 차별점이다. 실제 실험에서는 단백질 결합을 저해하기 위해 짧은 펩타이드(단백질 일부 조각)를 삽입했더니 그 과정이 중간 단계에서 멈추는 현상을 다이렉트로 확인했다. 이는 지퍼의 일부 톱니가 막히면 채워지지 않듯, 막단백질도 특정 단계가 막히면 전체 결합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을 시각적으로 검증한 것이다.

이와 같은 순차 결합 법칙은 향후 여러 바이오·의약 영역, 특히 항암제 개발에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유방암 표적치료제 ‘퍼제타’는 막단백질 결합을 억제해 암세포의 신호 전달을 막는 방식을 택하고 있으나, 막단백질 결합의 숨겨진 단계를 구체적으로 해석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번 연구는 결합이 완성되기까지 어디서, 어떻게 차단할지 설계할 수 있는 정밀 정보를 제시해 준다는 점에서, 막단백질 표적 신약의 새로운 개발 전략을 열 수 있을 전망이다.
글로벌 수준의 막단백질 결합 원리 해석 기술은 국내 바이오 업계에서도 실질적 파급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막단백질 구조 및 기능 해석을 위한 단분자 기술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으나, 이번처럼 중간 단계를 실시간 포착하고 분석한 사례는 공개된 바 없다. 특히 UNIST의 단분자 집게 분석법은 생명현상의 미세 단위 변화를 신약 개발에 직접 연결하는 데 활용 가치가 높다는 평가다.
현재 의약 바이오 분야에서는 단백질 결합의 정확한 과정을 파악하는 것이 신약 후보물질 발굴과 임상 성공률을 높이는 핵심 요인으로 꼽히면서, 정밀 측정 및 동역학 해석 수단에 대한 산업적 수요가 빠르게 커지고 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식약처·FDA 등 글로벌 규제기관이 신약 허가 과정에서 요구하는 표적 결합 검증 데이터에도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근거가 될 전망이다.
민두영 교수는 “막단백질이 중간 단계를 통해 순차적으로 결합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점이 단백질 상호작용 연구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이번 분석법은 막단백질 신약 개발을 위한 미세 결합 단계 규명에 널리 쓰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계는 이번 기술이 실제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