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섭단위 분리가 원칙 되는 상황 우려”…재계, 노란봉투법 시행령 개정안에 강력 반발
노사 갈등을 둘러싼 교섭 구조 개편을 두고 재계와 정부가 정면으로 맞섰다. 정부가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시행령 개정안을 내놓자, 재계는 하청노조와 복수노조의 개별 교섭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 노사관계가 장기 혼란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교섭창구 단일화 원칙이 사실상 무력화되고 정부가 노사 교섭에 과도하게 개입한다는 비판도 거세다.
24일 고용노동부는 원청 노조와 하청 노조가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우선 진행하되, 과정에서 교섭단위 분리제도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개정안은 중앙노동위원회가 노사 자율 합의가 어려운 경우 교섭단위의 통합 또는 분리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한 현행 제도를 전제로, 노란봉투법 취지를 반영해 원·하청 교섭 구조에 교섭단위 분리 활용을 명시적으로 허용한 것이 핵심이다.

재계는 노동위원회 판단에 따라 교섭창구 단일화가 유지되기보다 교섭단위 분리가 광범위하게 확대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교섭 테이블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노사 협상이 지연되고, 그 사이 현장 운영과 생산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되는 곳이 현대자동차다. 국내 최대 규모의 협력사 생태계를 갖춘 현대자동차의 경우 1차 협력사가 300개, 2·3차 협력사가 5천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계는 협력사 노조들이 모두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원청 교섭단위 분리와 개별 교섭을 요구할 가능성까지 감안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 재계 관계자는 교섭단위 분리 요건이 지나치게 포괄적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교섭단위 분리 기준이 근로조건 차이는 물론 업무 성질과 내용, 작업 방식, 작업 환경, 노동 강도 등으로 매우 다양해서 모든 교섭단위를 분리할 수 있다”며 “교섭창구 단일화가 원칙이 아니라 분리가 원칙인 것처럼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경제단체들도 우려를 공식화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논평을 통해 “무분별하게 교섭단위 분리 결정 기준을 확대할 경우 15년간 유지된 원청 단위의 교섭창구 단일화가 형해화될 수 있다”고 밝혔다. 경총은 원·하청 교섭 구조가 단기간에 복수의 테이블로 분산되면 노사 갈등 조정 비용이 급격히 상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불확실성 확대에 무게를 두고 있다. 홍기용 인천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노사 문제가 1년 내내 발생할 수 있다는 불확실성이 상당히 커졌다”며 “하청 업체가 많은 기업의 경우 교섭이 한 곳이라도 흐트러지게 되면 공장 가동이나 생산 계획 등의 프로세스에 애로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나아가 “1년 내 교섭이 마무리되지 못하면 그다음 해로 넘어가게 될 수도 있는데, 이는 한국의 경영환경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신호를 외부에 보낸 것”이라며 “새로운 투자자 확보도 쉽지 않을 뿐 아니라 기존 외국계 기업들도 한국에서 빠져나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교섭 구조 변화가 투자 결정과 생산 기지 유지 전략에 미치는 파급을 강조한 셈이다.
재계 안팎에서는 시행령 효과가 원·하청 관계를 넘어 원청 사업장 내부 복수노조 체계까지 뒤흔들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교섭단위 분리 기준에 기존 교섭단위를 유지할 경우 노조 간 갈등 유발 및 노사관계 왜곡 가능성이 포함되면서, 원청 내 복수노조가 서로 다른 이해를 내세워 각기 다른 창구 개설과 교섭단위 분리를 요구할 여지가 커졌다는 주장이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이번 시행령으로 기존에 안정적으로 유지되던 원청 사업장에 또 다른 혼란을 유발하는 것 아닌지 걱정된다”며 “원청마저 단위를 분리할 경우 혼란이 더욱 극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규모 제조업 사업장을 중심으로 복수노조 간 경쟁이 격화되고, 교섭 일정이 상시화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교섭단위 분리 판단을 정부 소속 기관인 노동위원회가 맡는 구조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도 이어지고 있다. 노사관계 당사자가 아닌 행정기관이 교섭 구조의 세부 설계를 좌우할 경우, 노사 모두가 수용하기 어려운 결정을 반복하게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강성진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대기업의 경우 하청업체만 수천 곳일 텐데 그들을 단위별로 나누고 분리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고, 한다고 해도 어떻게 단일화된 의견을 도출해낼 수 있겠냐”고 말했다. 그는 교섭단위가 지나치게 세분화될 경우, 오히려 노사 양측 모두가 실효성 있는 합의를 만들기 힘들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이어 “정부의 개입에 대해 기업도 노조도 불만을 가질 것”이라며 “정부가 노사 협약 과정에 직접 나서 이를 해결하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됐다”고 말했다. 행정적 분쟁 조정 기능을 넘어, 협약 구조까지 정부가 설계하는 것은 노사 자율 원칙에 반한다는 비판이다.
정부는 노란봉투법 입법 취지에 맞춰 원청 사용자 책임 범위를 명확히 하고, 하청 노동자의 교섭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후속 조치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재계는 교섭단위 분리가 현장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될 경우 노조 간, 그리고 노사 간 갈등이 동시다발적으로 확대될 수 있다며 반발 수위를 높이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입법 예고 기간 동안 재계와 노동계 의견을 수렴한 뒤 시행령 개정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노사 양측의 이해가 첨예하게 충돌하고 있는 만큼, 국회와 정부는 추가 보완책과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방안도 함께 검토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