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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일반최상위도메인 재개…국내 IT업계, 브랜드 주소 경쟁 촉발 전망

오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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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기관이 자체 이름을 인터넷 최상위 주소로 쓸 수 있는 일반최상위도메인 gTLD 신규 생성이 14년 만에 다시 열린다. 전 세계적으로 닷컴 닷넷 등 소수 사업자가 독점해 온 최상위도메인 수익 구조에 변곡점이 생길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에서는 삼성 현대차 등 일부 대기업이 이미 브랜드 gTLD를 보유한 가운데, 지역과 산업 단위 도메인을 선점하려는 공공기관과 중견 IT기업의 참여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업계는 이번 2라운드를 글로벌 디지털 브랜드 주소 체계 재편의 분수령으로 보고 있다.  

 

한국인터넷진흥원에 따르면 국제인터넷주소기구 ICANN은 2026년 4월 전후를 목표로 신규 gTLD 생성 신청을 받는 2라운드를 진행한다. gTLD는 닷컴 닷넷처럼 도메인 체계의 최상단에 위치한 일반최상위도메인을 가리킨다. 2012년 1라운드 당시 ICANN은 기존 23개였던 gTLD에 닷뮤직 닷숍 등 1200여 개를 추가하며 주소 체계를 크게 확장했다.  

gTLD는 인터넷 트래픽 관문에 해당하는 인프라 사업이다. 이정민 한국인터넷진흥원 인터넷주소정책팀장은 전 세계 도메인 3억 7850만건 중 베리사인이 관리하는 닷컴과 닷넷이 약 1억 7000만건을 차지해 막대한 수수료 수익을 거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1라운드에서 새로 만들어진 닷엑스와이지 도메인은 800만건 이상이 등록되며 신규 도메인 사업도 일정 규모 이상에서는 독립적인 수익원을 형성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업계에서는 도메인 등록 20만건 안팎을 손익분기점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기술 구조 측면에서 gTLD는 인터넷 주소를 관리하는 루트존 상단에 별도의 레지스트리 시스템을 두고, 각 국가별 등록대행기관을 통해 2단계 도메인 등록을 처리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신규 gTLD 사업자는 이 레지스트리 운영을 책임지는 역할을 맡는다. 과거에는 이 시스템을 자체 구축해야 했기 때문에 네임서버 이중화, DNS 보안 확장 등 고난도 인프라 설계 능력이 필수였다. 이번 2라운드부터는 ICANN이 사전에 기술 요건과 보안 기준을 검증한 레지스트리 서비스 제공자와 계약하는 구조를 허용해, 신청자가 직접 인프라를 구축하지 않고도 기술 평가를 통과하기 쉬워졌다. 기술 허들이 낮아진 만큼 사업 타당성, 브랜드 전략, 정책 설계 능력이 gTLD 성공 여부를 가르는 핵심으로 부상하는 분위기다.  

 

활용 영역은 단순 주소 체계를 넘어 디지털 정체성 관리로 확장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삼성 현대 기아가 각각 닷삼성 닷현대 닷기아 도메인을 확보해 사내 시스템과 대외 서비스 주소를 통합 운영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클라우드 서비스와 개발자 포털 등 주요 웹 서비스를 자사 브랜드 gTLD 중심으로 재편하며, 브랜드 신뢰도를 유지하면서도 피싱 사이트와의 혼동을 줄이려는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금융권 전용 도메인인 닷뱅크는 엄격한 심사를 통과한 금융회사만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돼, 사용자는 해당 도메인만으로 일정 수준의 신뢰성을 가늠할 수 있다.  

 

도시 브랜드 도메인도 지역 디지털 생태계 구축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닷베를린 닷도쿄처럼 도시명이 gTLD로 운영되면, 지자체가 관광·교통·상권 정보를 통합하는 플랫폼으로 활용하는 한편, 지역 기업과 상점에 서브도메인을 공급해 온라인 주소 체계를 통합 관리할 수 있다. 이정민 팀장은 국내 광역단체와 특화 산업단지가 도시나 산업 브랜드를 결합한 도메인으로 지역 경제와 스타트업 클러스터를 묶는 전략도 유효해 보인다고 말했다.  

 

2라운드 참여 조건과 비용 구조는 진입 의사를 가늠하는 첫 번째 변수다. 신청 자격은 정부, 기업, 공공기관, 국제기구 등 법인격을 가진 조직으로 제한된다. 신청 비용은 22만 7000달러로, 2012년 1라운드의 18만 5000달러에서 약 22.7퍼센트 높아졌다. 여기에 동일 문자열을 여러 조직이 신청할 경우 경매를 통해 최종 사업자를 정하는 절차가 더해져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최근 환율 상승까지 감안하면 초기 투입비용이 3억 3000만원을 크게 웃돌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반면 시스템 구축과 운영 비용은 기술 대행 모델 도입으로 줄어들 것으로 보여, 전체 사업비 구조는 초기 일시금보다 장기 운영 수익에 따라 수지 균형점이 갈릴 전망이다.  

 

ICANN은 상표권 보호와 문자열 충돌 방지 규칙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신청 도메인이 거절될 경우를 대비해 대체 문자열을 제출하는 절차를 신설했고, 기존 상표와 유사성이 높은 문자열에 대해서는 조정을 요청할 수 있는 별도 장치를 마련했다. 상표권자의 사전 등록 제도와 분쟁해결 절차를 통해 선점 악용을 차단하겠다는 구상으로 읽힌다. 이정민 팀장은 ICANN이 상표권 침해 문제에 대해 엄격한 검증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다며, 신청자는 gTLD 신청자 가이드북을 면밀히 검토하고 국내외 상표권 검색을 통해 충돌 가능성을 사전에 점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새 gTLD가 실제로 인터넷 루트존에 위임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신청 접수 후 서류 심사, 기술·재무 평가, 제3자 이의 제기 검토, 경합 문자열 경매, 최종 계약 체결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하며, 한국인터넷진흥원은 전체 소요 기간을 약 13개월에서 18개월 사이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문자열 자체에 공공성 논란이 있거나, 특정 산업 이해관계가 얽힌 경우 이의 제기와 조정 과정이 길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글로벌 인터넷 거버넌스 구조에서도 gTLD 2라운드는 민간과 공공의 역할 배분을 다시 묻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미국과 유럽의 대형 IT기업들은 자체 브랜드 gTLD를 통해 서비스 접점을 통합하면서 데이터 보안과 사용자 신뢰를 관리하는데, 중소 규모 국가와 기업은 비용과 인력 부족으로 참여가 쉽지 않은 구조가 여전하다. 반면 도시 도메인, 금융·의료 등 특화 산업 도메인은 규제와 인증 체계를 결합해 공공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도메인 사업과 연계된 정보보호, DNS 보안, 브랜드 관리 컨설팅 수요도 늘어날 수 있다. 레지스트리 운영 대행사와 인증·보안 업체, 로펌 등이 gTLD 컨소시엄 형태로 해외 시장에 동반 진출하는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다만 사업자가 수수료 수익 극대화에만 치중할 경우, 사용자는 또 다른 복잡한 주소 체계와 마주하게 되는 만큼, 이용자 편의와 보안, 공공성을 균형 있게 고려한 정책 설계가 관건으로 지목된다. 산업계는 이번 gTLD 2라운드가 실제로 새로운 인터넷 주소 생태계를 형성할지, 아니면 일부 글로벌 기업의 브랜드 보호 수단에 그칠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오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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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ld#icann#한국인터넷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