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관세 폭탄에 반도체까지 흔들려 수출 회복세 제동 전망
미국의 고율 관세가 자동차와 철강을 넘어 반도체 등 주력 수출 품목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한국 수출이 3년 만에 역성장 구간에 다시 진입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단기적으로는 관세 부과를 앞둔 선주문 효과로 수출이 부풀려진 측면이 있지만, 관세가 본격 반영되는 내년부터는 실수요 기반이 약해지며 수출 회복세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관측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조치를 대미 수출 구조 재편의 분기점으로 보며, 공급망 다변화와 고부가가치 전환 속도가 향후 산업 경쟁력을 가를 변수로 떠오른다.
산업연구원이 발표한 2026년 경제 산업 전망에 따르면 내년 13대 주력산업 수출액은 6971억 달러로 올해보다 0.5퍼센트 감소할 것으로 예측됐다. 2023년에 수출이 6322억 달러로 전년 대비 7.5퍼센트 줄었다가 2024년 6838억 달러, 8.2퍼센트 증가로 반등한 흐름이 3년 만에 꺾일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올해는 7000억 달러 돌파가 유력한 상황에서 1년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서는 구조적 하방 압력이 관세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충격의 1차 파동은 이미 관세율이 확정된 자동차와 철강에서 시작된다. 자동차의 경우 한미 간 관세 협상이 타결되며 최종 관세율이 15퍼센트로 정해졌다. 자유무역협정 체결 이후 무관세 체계에서 뛰어오른 수치로, 대미 완성차 수출의 가격 경쟁력에 직접적인 부담이 된다. 자동차 부품에 대해서도 미국 내 자동차 생산용 부품에 적용되던 관세 상쇄금 지급 비율이 내년 5월부터 15퍼센트에서 10퍼센트로 낮아지면서, 실질 관세 부담이 늘어나는 구조다. 완성차뿐 아니라 전장품과 파워트레인, 차체 부품 등 가치사슬 전반 마진이 동시에 압박받을 수 있는 구도다.
철강은 관세 충격이 한층 더 가파르다. 올해 6월 4일부터 대미 수출 철강 제품에 대한 관세율이 기존 25퍼센트에서 50퍼센트로 두 배 인상됐다. 산업연구원은 이미 계약된 선수출 물량 덕분에 내년 상반기까지는 수출 감소가 완만하겠지만, 하반기부터 신규 계약이 본격 반영되면 대미 물량이 급감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고율 관세가 적용될 경우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되는 만큼, 가격 인상분을 수요처가 수용하지 않으면 물량 자체를 줄이거나 타지역으로 전환해야 하는 선택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이번 조치의 파급력을 키우는 변수는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파생상품 관세 확대다. 미국 상무부는 8월 철강 알루미늄 파생상품 407개 품목을 신규 관세 대상에 추가했다. 여기에 2차 파생상품 추가 신청까지 접수한 상황이라, 업계에서는 1000개가 넘는 세부 제품군으로 관세 부과 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파생상품에는 일반기계와 가전 제품에 쓰이는 소재와 부품이 다수 포함돼 있어, 단순 소재 산업을 넘어 제조업 전반에 중첩적인 비용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중간재 가격이 오르면 최종 완제품의 미국 현지 가격도 동반 상승해 수요 위축을 유발하는 연쇄 효과가 불가피해 보인다.
반도체 산업도 관세 리스크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미국 정부는 올해 4월부터 반도체 관세 부과 가능성을 꾸준히 시사해 왔고, 우리 정부는 대만 등 경쟁국과의 협상 조건과 비교해 불리하지 않은 수준에서 관세 협정을 마무리했다. 아직 구체적인 반도체 관세율은 확정되지 않은 상태지만, 사실상 최혜국대우 수준의 조건을 확보했다는 것이 정부와 연구기관의 설명이다. 산업연구원은 미국이 한국 반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고, 미국 내에서 한국산 반도체를 즉각 대체할 공급원이 마땅치 않다는 점을 들어 관세 조치의 정량적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관세 부담 중 상당 부분을 판매가격에 전가해도 수요 이탈이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반도체 수출 호조가 내년 리스크의 전조일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최근 한국 반도체 수출이 견조한 증가세를 보이는 배경 중 하나가 미국의 관세 부과를 앞둔 재고 확보성 선주문이라는 해석이다. 실제로 철강과 자동차에서도 관세 예고 직후 단기 수요가 급증했다가, 관세 시행 이후에는 수요 조정으로 역기저 효과가 나타난 사례가 있다. 반도체 역시 올해 수출 실적의 일부가 미래 수요의 선반영이라면, 내년에는 신규 수주가 줄며 성장률이 꺾일 수 있다. 메모리 가격 사이클과 서버 투자 조정 국면까지 겹칠 경우, 관세 충격과 수요 사이클 하락이 동시 진행될 위험도 배제하기 어렵다.
미국발 관세 강화는 공급망 재편과 기술 통제 강화라는 글로벌 흐름과도 맞물린다. 미국은 반도체와 배터리, 전기차 등 전략 산업에서 생산 기지의 자국 내 이전을 유인하는 한편, 중국을 겨냥한 수출 통제와 관세 카드를 복합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미국 시장 접근성 유지를 위해 현지 생산 확대가 불가피한 상황이며, 관세로 인한 비용 부담이 투자를 압박하는 쪽으로 작동할 수 있다. 동시에 중국과 동남아, 유럽 등으로의 수출 다변화 전략이 속도를 낼 수 있지만, 각 지역별 규제와 보조금 정책이 달라 최적 조합을 찾는 데 상당한 전략 비용이 요구된다.
정책 측면에서는 정부의 통상 전략 및 산업 구조 고도화가 중요한 과제로 부상한다. 관세 협상에서 최혜국대우 수준을 확보했다 해도, 수출 구조가 특정 품목과 특정 시장에 과도하게 편중된 상황에서는 외부 충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자동차와 철강처럼 에너지 전환과 탄소 규제가 동시에 강화되는 산업은 고부가가치 제품 비중 확대와 공정 효율 개선 없이는 관세 부담을 흡수하기 어렵다. 반도체 역시 장기적으로는 미국과 유럽의 보조금 정책과 현지 생산 요구에 맞춰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 재설계를 요구받는 국면이다.
권남훈 산업연구원장은 반도체 편중이 심화되는 산업 구조를 경고했다. 그는 반도체 중심의 의존성이 강화됐고 다른 주력 산업의 경쟁력은 상당히 도전을 받고 있는데 길게 봤을 때 우려 요인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2026년에는 대외 환경이 다소 안정 국면에 들어설 수 있다면서도, 그 시점을 산업 경쟁력 회복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업계는 미국발 관세 변수와 수요 사이클, 공급망 재편이 동시에 맞물린 복합 위기 속에서 한국 수출이 다시 안정적인 성장 궤도에 오를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