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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뒤흔들린 일자리지도”…정부, 30여 직종 재설계 나선다

이도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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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기술이 일자리 구조를 근본적으로 흔들면서 정부가 현장 중심의 해법 찾기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IT개발자, 방송작가, 변호사처럼 이미 AI 도입 충격이 가시화된 직군부터 직무 재설계 논의에 착수한 점이 눈에 띈다.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는 이들 직종 종사자와 함께 6차례에 걸쳐 AI 전환에 따른 업무 변화와 생태계 재편 방향을 논의했고, 결과를 내년 1월 정책요구서로 정리해 향후 일자리·고용정책 설계의 기초 자료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작업이 AI 시대 노동·교육·복지 정책 전반을 다시 짜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는 10일 IT개발자, 방송작가, 변호사 등 직종 종사자들이 참여한 AI전환과 일자리 변화 숙의 토론회 마무리 간담회를 개최했다. 대통령 비서실 산하 김우창 국가AI정책비서관이 직접 회의를 주재했다. 이번 간담회는 지난 10월부터 12월 초까지 진행된 직종별 숙의 토론을 정리하고, 각 직군에서 도출한 쟁점과 정책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숙의 토론회는 10월 제1차 전체회의에서 큰 방향을 잡은 뒤, 각 직종별로 5차에서 6차까지 세부 회차를 나눠 운영됐다. 1차 회차에서는 토론 주제와 방향을 설정했고, 2차에서는 각 직종의 AI 활용 현황을 진단했다. 예를 들어 IT개발 분야에서는 코드 자동 생성, 테스트 자동화 도구 확산이 채용과 업무 구조에 미치는 영향을 점검했고, 방송작가 영역에서는 대본 초안 작성과 아이디어 발굴에 활용되는 생성형 AI 도구 사례들이 논의됐다. 변호사 영역에서는 판례 검색, 계약서 초안 작성 지원 등 리걸테크 기술이 실제 법률 사무에 얼마나 깊이 침투했는지 진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3차 회차에서는 AI 시대 직무가 어떻게 바뀔지에 초점을 맞췄다. 개발자는 단순 코딩 비중이 줄고 설계·검증·보안 등 상위 업무 비중이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거론됐고, 방송작가는 포맷 기획과 스토리 전략 수립 능력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변호사 직군에서는 반복적 문서 작업을 AI가 보조하면서, 전략 수립과 협상, 복잡한 분쟁 해결 역량이 핵심 경쟁력으로 남을 가능성이 논의됐다.

 

4차 회차에서는 이런 업무 방식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역량을 짚었다. 공통적으로 AI 도구를 이해하고 적절히 활용하는 디지털 리터러시, 데이터 이해 능력, 알고리즘 결과를 비판적으로 검증하는 능력 등이 핵심 역량으로 꼽혔다. 특히 IT개발자의 경우 AI 코딩 도구를 전제로 한 시스템 설계 능력, 보안 취약점 점검 능력이, 방송작가와 변호사는 저작권과 윤리 기준을 고려한 AI 활용 감수성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5차와 6차 회차에서는 지속 가능한 직업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 과제를 집중 논의했다. 신규 개발자 채용 축소, 프리랜서 방송작가의 소득 불안정 심화, 젊은 변호사 진입 장벽 확대 등 각 직군의 구조적 불안을 AI 전환이 가속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 공유됐다. 이에 따라 재교육과 전직 지원, 직무 재설계 가이드라인, 공정한 보상 체계, AI 도구 도입에 따른 법적 책임 구조 정비 등이 정책 과제로 제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번 과정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직업 분류와 일자리 대체율을 추정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현장 종사자가 직접 참여해 직무 단위로 변화를 재구성한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AI로 인해 신규 개발자 수요가 줄고 있다는 인식처럼 구체적인 현장 사례를 토대로, 어느 업무는 AI 보조로 생산성이 오르고 어느 영역은 사실상 대체 압박을 받는지 세밀하게 나누는 작업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김우창 국가AI정책비서관은 간담회에서 숙의 토론회의 취지를 재차 강조했다. 그는 AI 시대에 직업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이 현장에 팽배한 상황에서, 당사자들이 직접 참여해 변화 속도를 가늠하고 대응 전략을 찾는 과정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토론회를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가 파일럿 형태로 추진한 만큼, 2026년에는 관계 부처와 협력해 참여 직종을 30개에서 50개 수준까지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제조, 금융, 의료, 교육 등 다른 분야 직종까지 AI 전환 논의를 넓히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간담회와 직종별 토론회에서 모인 의견과 아이디어는 자문단 전문가들이 정리해 내년 1월 정책요구서 형식으로 공개될 예정이다. 여기에는 직종별 AI 활용 가이드라인, 교육·훈련 및 전환 지원 정책 제안, 공공부문 선도 도입 방안, 노동시장 통계 개선 방향 등이 포함될 것으로 전망된다. 해당 문서는 일반 국민과 관계 부처에 공유돼 향후 AI 시대 일자리와 고용 정책 수립에 참고 자료로 활용될 계획이다.

 

해외에서도 AI와 일자리 문제는 중요한 정책 의제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은 이미 디지털 전환 교육, 리스킬링 프로그램에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고 있으며, 일부 국가는 특정 직종에 대한 AI 도입 가이드라인과 윤리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AI 영향 평가, 직업 구조 변화 모니터링 체계 등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전문가들은 이번 숙의 토론회가 본격적인 제도 설계 이전에 현장의 목소리를 구조화하는 전 단계 작업에 가깝다고 분석한다. AI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른 만큼 기술 자체를 막기보다 직업 구조와 교육·훈련 체계를 재편해 충격을 흡수하는 방향이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산업계와 노동계, 정부가 어떤 균형점을 찾느냐에 따라 AI 전환이 고용 위기로 귀결될지, 새로운 기회로 이어질지가 갈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산업계와 노동계는 이번 논의 결과가 구체적인 재교육 프로그램, 직무 전환 지원, 공정 경쟁 환경 조성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AI가 만들어내는 생산성 향상이 실제 노동자와 전문직 종사자의 삶의 질 개선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기술과 제도, 산업 구조 전환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이도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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