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발표로 군사기밀 누설"…감사원, 최재해·유병호 검찰 고발 파장
군사기밀 유출 의혹과 내부 권한 남용을 둘러싸고 감사원이 스스로를 겨냥했다. 윤석열 정부 시기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감사와 북한 감시초소 관련 감사 과정을 두고, 당시 수뇌부 책임을 인정하는 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정치권 공방이 거세질 전망이다.
감사원 운영 쇄신 태스크포스는 26일 발표를 통해 윤석열 정부 시절 진행된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감사와 북한 최전방 감시초소 불능화 부실검증 의혹 감사에서 군사기밀 누설 행위가 있었다고 밝혔다. 또 유병호 전 감사원 사무총장(현 감사위원)의 인사권·감찰권 남용 정황도 확인했다며 관련자들을 검찰에 고발했다고 전했다.

TF에 따르면 감사원은 서해 피격 사건과 관련해 2022년 10월 13일과 2023년 12월 7일 두 차례에 걸쳐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TF는 특히 2023년 12월 자료에 대해 "감사위원회가 비공개를 결정했음에도 보도자료가 배포됐고, 여기에 군사 2급 비밀이 포함돼 있었다"고 밝혔다.
군사기밀 보호법상 군사기밀 공개는 국방부 보안심사위원회 심의를 거친 경우에 한해 허용된다. 그러나 TF는 "이 사건 감사 지휘 라인은 감사위원들의 반대가 있었고 보안성 심사를 거치지 않았는데도, 국가안전보장에 명백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군사기밀을 두 차례나 누설했다"고 지적했다.
당시 담당 과장은 국방부 검토를 거쳐 보도 가능한 수준이라는 답변을 받았다고 주장했지만, TF는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회신했다"고 설명했다. 서해 피격 사건 감사 결과가 2022년 10월 처음 발표됐을 때도 군사기밀 노출 논란이 제기된 바 있다.
논란이 커지자 감사원은 2022년 10월 18일 '주요 군 첩보가 외부에 노출됐다는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는 내용의 보도참고자료를 배포했다. TF는 이 자료를 "허위 설명"으로 규정했다. TF는 "당시 배포된 보도참고자료는 실질적으로 기밀 노출 가능성을 부인하는 내용이었으나, 이후 점검 결과와 배치됐다"고 평가했다.
TF는 이 같은 점검 결과를 토대로 지난 24일 관련자 7명을 군사기밀 보호법상 군사기밀 누설 혐의로 고발했다. 고발 대상에는 최재해 전 감사원장과 유병호 전 사무총장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서해 피격 감사 관련 기밀누설 의혹은 앞서 최 전 원장의 탄핵 심판에서도 다뤄졌지만, 당시에는 주로 1급 비밀 유출 여부가 쟁점이었고 이번 조사에서는 2급 비밀 누설에 무게가 실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TF는 북한 최전방 감시초소 불능화 부실검증 의혹 감사 과정에서도 유사한 문제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특히 2024년 총선을 앞둔 시점에 특정 언론 보도로 감사 내용이 상세히 나온 배경에 군사기밀 유출 정황이 있다는 판단이다.
TF 설명을 종합하면, 감사원은 지난 3월 27일 GP 불능화 부실검증 의혹 감사 종료 보고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당시 감사위원 신분이던 유병호 전 사무총장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A 국장이 중간발표를 건의했으나, 최재해 당시 원장이 이를 거부했다.
그러나 이튿날 유 전 총장은 사무처 업무에 관여할 법적 권한이 없는 위치였음에도, 보도자료 배포 필요성을 주장하는 1장 분량 문건을 작성해 A 국장을 통해 사무처 간부들에게 전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TF는 "유 전 총장이 사실상 보도자료 작성을 압박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A 국장은 "최재해 원장의 방침을 다시 받겠다"며 담당 과장에게 보도자료 작성을 지시했고, 담당 과장은 3월 31일 군사 2급 비밀이 포함된 비공식 보도자료를 작성해 A 국장에게 전달했다. TF는 "A 국장은 감사원장 주재 회의가 없었음에도 '회의 결과 중간발표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했고, 보도자료는 반환하지 않았다"고 했다.
TF는 "4월 말 특정 언론에서 비공식 보도자료 내용을 토대로 한 단독 보도가 나왔다"며 "해당 기사 내용과 용어 등은 비공식 보도자료와 일치율이 94%였고, 기사에는 군사 2급 비밀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이 정황을 근거로 GP 불능화 감사 관련 정보 유출도 군사기밀 누설 범주에 포함된다고 보고 있다.
감사원 TF는 군사기밀 유출 의혹과 별개로, 유병호 전 사무총장의 내부 인사·감찰권 행사 과정에서 직권남용 소지가 크다고 판단했다. 유 전 총장은 2022년 6월 취임 이후 자신 정책에 반대 입장을 보인 과장 등을 상대로 감찰 필요성을 여러 차례 제기했지만, 감사원장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TF는 전했다.
이후 유 전 총장은 지방 출장 중이던 감사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감사자료 컴퓨터 파일을 삭제하고 있어 신속한 감찰 및 인사 조처가 필요하다"고 보고했다. 감사원장은 이를 근거로 해당 과장 등 5명에 대한 감찰 개시와 인사 조처를 승인했으나, 5개월에 걸친 조사에서 실제 자료 삭제 정황은 확인되지 않은 채 사안이 종결됐다.
TF에 따르면, 유 전 총장은 감찰담당관에게 구체적인 비위 사실 설명 없이 비위 혐의명만 불러주며 즉시 조사 개시를 통보하도록 지시했다. TF는 "직원들이 지시를 거부하기 어려운 분위기에서 감찰이 진행됐다"고 밝혔다. 또 유 전 총장은 감찰 통보 문서가 접수되는 즉시 대기발령 등 인사 조처를 하도록 인사 담당자에게 요구했다.
인사 부서 직원들이 관련 법령 위반 소지와 보복성 인사 우려를 제기했지만, 지시는 그대로 이행됐다. 그 결과 감찰 대상자들은 명예퇴직 제한, 승진 지연 등 인사상 불이익과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고 TF는 전했다.
직무성적평가 개입 정황도 드러났다. TF는 "2023년 1월 4급 및 과장에 대한 직무성적평가에서 평가자와 확인자가 모든 절차를 마친 이후, 유 전 총장이 특정 대상자들을 지목하며 서열과 등급 상향을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지시로 16명의 서열과 등급이 변경됐다고 덧붙였다.
유 전 총장은 또 임의로 과장 4명을 선발해 교육원 교수 요원으로 발령해 과장 직위를 박탈하고, 승진심사 대상자를 낮게 평가했다는 이유로 과장을 질책한 뒤 좌천시키는 등 강도 높은 인사 조처를 반복한 것으로 조사됐다. 내부전산망을 통해 14차례 경고성 메시지를 공지해 자신의 지시를 거부하기 어려운 조직 문화를 조성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감사원은 이러한 점을 근거로 유 전 총장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고발했다. 군사기밀 누설 혐의까지 더해지면서, 유 전 총장은 형사 책임 여부를 놓고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르게 됐다.
정치권에서는 서해 피격 사건과 GP 불능화 의혹 감사가 문재인 정부 안보·대북 정책을 겨냥한 고강도 감사로 진행됐다는 점에서, 이번 조사 결과를 놓고 여야 간 해석이 크게 갈릴 전망이다. 야권은 이미 윤석열 정부 감사원의 정치적 편향성을 제기해 온 만큼, 군사기밀 누설과 직권남용 의혹을 정권 책임론과 연결할 가능성이 크다. 여권은 당시 감사의 정당성과 별개로 개인적 일탈 여부를 분리해 대응할지, 조직 차원의 문제로 보고 쇄신론을 내세울지 기로에 설 것으로 보인다.
TF는 점검 활동을 사실상 마무리 단계라고 설명하며, 내달 초 종합 조사 내용을 정리해 추가 발표를 예고했다. 감사원은 검찰 수사와 별도로 내부 인사·감찰 시스템을 손질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국회는 향후 감사원 운영 전반에 대한 국정감사와 입법 논의를 통해 제도 개선에 나설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