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플리바게닝 시도했나"…윤영호 진술 번복 파장, 통일교 수사 수렁으로

최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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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유착 의혹을 둘러싸고 통일교와 수사당국이 정면 충돌했다. 통일교의 더불어민주당 지원 의혹을 제기했던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시간이 갈수록 진술 수위를 낮추는 모습을 보이면서, 애초 그가 이런 폭로를 선택한 배경에 정치권과 법조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윤영호 전 본부장이 민중기 특별검사팀과 면담 과정에서 "통일교가 여야 정치인 5명과 접촉했다"고 진술한 시점은 지난 8월 말로 알려졌다. 윤 전 본부장은 7월 30일 구속된 뒤 통일교와 윤석열 정부 사이 부정한 거래 의혹에 대한 특검 수사가 본격화하는 국면에서 핵심 참고인으로 부상했다. 당시 그의 진술은 수사 방향을 좌우할 핵심 단서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수사 경과를 되짚어 보면 윤 전 본부장의 행보엔 계산이 깔려 있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이 윤석열 정권과 통일교의 정교유착 의혹을 집중 추적하던 시점에서, 윤 전 본부장이 이름이 알려진 정치인들과의 접촉 사실을 거론하며 수사 단서를 제공한 대가로 선처를 기대했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특검이 가시적 성과를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그는 자신과 배우자인 전 통일교 재정국장 이 모 씨의 수사와 재판에서 형량을 낮추는 협상 여지를 염두에 뒀다는 해석도 나온다.  

 

또한 그는 통일교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치권에 접근했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특정 정당과 결탁했다는 의혹을 희석하려 했다는 분석이 더해진다. 사실상 정교유착 논란의 책임을 분산하고, 통일교를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거리를 둔 조직으로 보이게 하려 했다는 것이다.  

 

다만 이런 계산은 실제 수사 흐름에서 구현되지 않았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오히려 윤 전 본부장을 통일교와 윤석열 정부 사이 정교유착 의혹의 핵심 고리로 규정해 구속기소했다. 지난 10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특검은 윤 전 본부장에게 징역 4년을 구형했다. 배우자 이 씨도 업무상 횡령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수사 방향도 윤 전 본부장이 예상한 궤도와 다른 곳으로 흘렀다. 윤 전 본부장이 지난 5일 재판에서 다시 한 차례 민주당 지원 의혹을 언급하자, 특검의 편파수사 논란이 정치권으로 확산했다. 이어 통일교를 둘러싼 전반적인 자금 흐름과 정계 로비 의혹에 대해 경찰이 직접 수사에 나서는 상황으로 번졌다.  

 

정국에도 파장이 미쳤다. 이재명 대통령은 통일교 관련 의혹에 대해 "여야 관계 없이, 지위고하와 관계없이 엄정하게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실의 메시지 이후 통일교 자금과 정치권의 접점 전반에 대한 전방위 수사가 불가피해졌고, 통일교를 둘러싼 수사는 특검을 넘어 경찰로 확장하는 양상이다.  

 

정작 윤 전 본부장은 특검에 이어 경찰 수사까지 중첩된 이중의 압박을 받는 처지에 몰렸다. 기존 형사 사건에 더해 통일교 자금과 정치권 로비 전반에 대한 추가 수사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수사 경과에 따라 추가 기소와 처벌이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이에 따라 윤 전 본부장은 현재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정리할 방안을 고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 10일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에 대한 결심 공판에서 추가 폭로를 예고해 관심을 모았지만, 정작 법정에서는 침묵을 택했다. 최후진술에서도 구체적인 이름을 언급하기보다 개인적 억울함을 호소하는 데 그쳤다.  

 

12일에는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기존 진술을 사실상 뒤집는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왔다. 윤 전 본부장은 당시 특검 조사 내용과 관련해 "세간에 회자되는 부분도… 제 의도하고 전혀…"라며 말을 흐린 뒤 "저는 그렇게 진술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지원 의혹과 관련한 자신의 진술이 왜곡돼 알려졌거나, 특검 수사 과정에서 부풀려졌다는 취지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수사의 또 다른 축인 경찰은 난감한 기류를 숨기지 않고 있다. 현재까지 통일교의 여야 정치인 접촉과 금품 제공 여부를 보여 줄 명확한 계좌 추적 결과나 물증이 부족한 상황에서, 윤 전 본부장의 진술이 사실상 유일한 단서로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사자가 법정에서 "그렇게 진술한 적이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 통일교 게이트 수사가 출발선에서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한편 정치권에서는 통일교 수사를 둘러싼 특검과 경찰의 역할 분담을 두고 긴장감이 높아지는 분위기다. 정당별로 통일교와의 연관성을 차단하려는 방어전과 상대 정당의 연루 의혹을 부각하려는 공세전이 맞물리면서 정쟁이 격화될 가능성도 크다.  

 

이날 사안을 지켜본 한 법조계 인사는 통일교 관련 진술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을 두고 "핵심 인물의 신빙성이 흔들리면 수사는 구조적으로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수사기관은 추가 증거와 참고인을 통해 진술을 교차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공방과 별개로 수사기관은 통일교 자금과 정치권 연계 전반에 대해 보강 수사를 이어갈 방침이다. 특검은 윤 전 본부장과 관련한 1심 선고를 지켜본 뒤 항소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며, 경찰도 통일교 게이트 본류 사건을 중심으로 계좌 추적과 관련자 소환을 확대할 계획이다.

최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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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호#통일교#민중기특별검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