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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니 50년과 전기차 원년”…현대차 기술역군, 수출 최대 실적→경쟁력 뿌리 재조명

신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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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동차 산업이 미국 관세와 보호무역 강화 등 불리한 통상 환경 속에서도 사상 최대 수출 실적 경신이 유력한 가운데, 현대차 포니 양산 50주년을 맞아 산업 현장의 기술인들이 조명되고 있다. 1970∼1990년대를 관통하며 포니 미국 수출과 국내 최초 전기차 개발에 매진했던 현장 책임자들의 축적된 기술 역량이 오늘날 친환경차 경쟁력의 토대로 평가되면서, 한국 자동차 산업의 성취가 다시 한 번 역사적 맥락 속에서 해석되고 있다. 시장 지표와 기술 진화의 궤적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산업 역군의 손끝에서 시작된 도전이 미래차 시대의 자산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2025년 1월부터 11월까지 자동차 누적 수출액은 660억4천만달러로 집계됐다. 자동차 수출액은 2년 연속 700억달러를 상회한 데 이어 올해 718억달러 수준이 예상된다고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는 분석했다. 지난 2023년 709억달러를 기록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한 이후, 다시 한 번 연간 수출 기록을 경신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는 것이다. 같은 기간 친환경차 수출은 236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9.7% 증가해 전체 수출 확대를 견인했다. 미국과 중국 간 통상 갈등, 글로벌 경기 둔화, 각국의 내셔널리즘을 바탕으로 한 보호무역 기조 속에서도 이 같은 실적이 이어진 배경에는, 완성차 기업들의 기술 경쟁력 제고와 시장 다변화 전략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평가됐다.  

포니 50년과 전기차 원년
포니 50년과 전기차 원년

그러나 업계 안팎에서는 수출 실적이라는 표면의 화려함 뒤에 기술 자립을 위해 묵묵히 매달렸던 산업 현장 기술인들의 공로가 누적돼 왔다는 점을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김기영 전 현대차 배기가스 규제 담당 책임과 박동주 전 현대차 연구개발팀 책임은, 한국 자동차 산업이 내연기관차에서 친환경차로 옮겨가는 대전환 과정의 양 축을 상징하는 인물로 거론된다. 과거 내연기관 배출가스 규제 대응과 초기 전기차 연구는 모두 수익과 직결되지 않는 고위험 과제로 여겨졌으나, 시간이 흐른 지금 그 성과는 기업과 국가 경쟁력의 핵심 기반으로 전환됐다.  

 

김기영 전 책임은 1980년대 포니 후속 모델인 포니 엑셀 개발 과정에서 미국 배기가스 규제 대응을 전담했다. 포니는 1975년 12월 1일 국내 첫 고유 모델로 양산이 시작되며 한국 완성차 산업의 출발을 알렸다. 그러나 1980년대 미국 환경규제는 당시 국내 기술 수준으로는 버티기 어려운 수준으로 인식됐고, 미국 진출 자체가 무모한 도전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았다. 김 전 책임은 일본 미쓰비시와의 기술 제휴를 바탕으로 배기가스 제어 시스템을 차량에 적용하고, 엔진 매핑과 시험을 반복해 미국 기준을 충족시키는 데 성공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환경 당국의 복잡한 시험 절차와 냉난방 조건, 고도와 속도에 따른 배출가스 편차를 모두 감안해야 했던 상황에서, 시험과 보정의 무수한 반복이 수반된 고된 프로젝트였다는 후문이다.  

 

이 과정을 거쳐 현대차는 1986년 포니 엑셀의 미국 수출을 성사시켰고, 국내 완성차가 본격적으로 세계 시장에 진입하는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미국 시장은 그 자체의 규모를 넘어 글로벌 기준을 선도하는 시장으로 인식돼 왔기에, 당시 포니 엑셀의 진출은 한국 자동차가 글로벌 규제와 품질 잣대를 감당할 수 있다는 신호로 작용했다. 김 전 책임은 당시를 회상하며 엑셀의 미국 진출을 한국 자동차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와 산업 기술 자립의 출발점으로 규정했다. 그는 기술 개발을 믿고 지원해 후배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돕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도전적 연구개발 과제를 위한 내부 지원 체계의 확대를 주문했다.  

 

내연기관차에서 글로벌 규제에 맞서는 과정이 산업의 첫 번째 고비였다면, 두 번째 고비는 에너지 전환과 환경 규제 강화 흐름 속에서 전동화 기술 체제로 이행하는 문제였다. 이 전환의 초입에서 국내 최초 전기차 개발에 착수했던 인물이 박동주 전 현대차 연구개발팀 책임이다. 그는 1990년 현대차 울산기술센터에서 진행된 솔라카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국내 최초 전기차 연구에 뛰어들었다. 당시 전기차는 상용화와 거리가 멀고, 충전 인프라와 배터리 기술 모두 걸음마 단계였다. 세계적으로도 일부 선진국이 기술 타진 수준의 연구를 진행하던 시기였다.  

 

박 전 책임은 쏘나타 차체에 배터리, 모터, 인버터 등을 직접 조립하는 방식으로 전기 파워트레인 구현에 나섰다. 1991년에 완성된 현대차 첫 전기차 프로토타입 Y2 쏘나타EV는 주행거리, 내구성, 충전 시간 등에서 상업적 요구에 충분히 미치지 못했지만, 전동화 시스템 통합과 제어 기술 확보를 위해 필수적인 시험대였다. 배터리 팩 배치와 중량 배분, 고전압 전장 시스템의 안전성, 모터 냉각, 인버터 효율 등 수많은 기술 과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었고, 그 어느 하나도 정답이 제시된 상태가 아니었다. 박 전 책임은 국내 최초 전기차 개발 과정이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고 돌아보면서도, 그 경험이 오늘의 친환경차 경쟁력을 만든 기반이라고 강조했다.  

 

솔라카 프로젝트는 단순한 실험에서 끝나지 않고 현대차의 하이브리드차와 수소전기차 시험 연구로 확장됐다. 2000년대에 들어선 친환경차 시험동 설립과 전동화 기술 연구 인프라 확대 역시 이 시기 축적된 경험을 토대로 가능했다. 엔진과 변속기를 중심으로 설계되던 플랫폼은 모터와 배터리, 연료전지 시스템을 고려해 재구성돼야 했고, 전자제어와 소프트웨어 역량이 동력성능을 좌우하는 시대로 서서히 전환됐다. 그 과정에서 과거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프로토타입에서 검증한 실험 데이터와 노하우는, 오늘날 대량 양산형 전기차 개발의 중요한 자산으로 기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김기영, 박동주 전 책임의 사례가 한국 자동차 산업 발전사에서 상징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분석한다. 한편에서는 미국 환경규제 같은 외부 압력을 상대로 한 기술적 추격이, 다른 한편에서는 아직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지 않은 전기차 분야에 대한 선제적 준비가 이루어졌다. 규제 대응과 미래 선행 연구라는 서로 다른 축이 동시에 진행된 덕분에, 한국 완성차 산업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탄소중립 압력이라는 이중의 도전에 직면한 현재에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이다.  

 

박 전 책임은 미래차 시대 경쟁력은 기술 축적에 달려 있다며, 도전적 연구개발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중단 없이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동차 산업인들을 응원한다는 인사와 함께, 당장의 성과가 가시화되지 않는 연구 과제일수록 공적 지원과 사회적 신뢰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전동화,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 자율주행 등 새로운 패러다임이 교차하는 지금 시점에도, 초기 연구진의 경험처럼 다수의 실패와 시행착오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는 점을 환기한 셈이다.  

 

정책 당국의 시선도 산업 역군을 향하고 있다. 지난 4일 무역의날을 맞아 이재명 대통령은 김기영 전 책임 등을 포함한 산업 역군 90여 명을 청와대 영빈관으로 초청해 공로를 재조명했다. 이 대통령은 수많은 성과가 산업 현장 노동자와 기술인의 손끝에서 나왔다고 평가하면서, 대한민국이 여러 산업 분야에서 최첨단을 달릴 수 있었던 배경을 산업 자산에서 찾았다. 나아가 이러한 자산을 토대로 모두가 더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전력을 다하겠다고 밝히며, 기술인과 현장 인력에 대한 존중과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포니 양산 50주년과 국내 최초 전기차 개발 30여 년의 시간이 겹쳐지는 지금 시기를, 산업 구조 전환을 위한 두 번째 도약의 전환점으로 바라보고 있다. 당장의 수출 실적과 시장 점유율에만 매몰될 것이 아니라, 내연기관에서 전동화로 이어지는 기술 축적의 서사를 점검하고 그 안에서 산업 역군의 역할을 다시 기록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수치로 집계되기 어려운 연구 실패와 시행착오, 정책 변화에 따른 대응 경험이야말로 글로벌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가운데 한국 자동차 산업을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기반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향후 미국과 유럽의 환경규제 강화, 중국 전기차 기업의 부상,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으로의 급격한 패러다임 변화는 한국 완성차 기업들에게 새로운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과거 미국 배기가스 규제와 전기차 초기 연구에 대응했던 것처럼, 기술인들의 축적된 노하우와 정책적 지원, 기업의 장기적 투자 전략이 어우러질 때만이 경쟁력 유지가 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포니와 솔라카가 남긴 유산을 어떻게 계승하고 확장할 것인지가, 한국 자동차 산업의 다음 50년을 가늠할 척도가 되고 있다.

신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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