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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막을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특검, 한덕수에 징역 15년 구형

문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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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비상계엄을 둘러싼 내란 혐의를 두고 조은석 내란특별검사팀과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정면 충돌했다. 특검은 행정부 2인자의 책임을 정조준하며 중형을 요구했고, 향후 윤석열 전 대통령 등 관련 재판에도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조은석 내란특별검사팀은 26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3부 이진관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결심 공판에서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한 전 총리는 내란 우두머리 방조, 내란 중요임무 종사, 위증 등 혐의로 지난 8월 29일 기소된 상태다.  

특검팀은 한 전 총리의 위상을 강조하며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검팀은 "피고인은 국무총리로, 대통령 제1보좌기관이자 행정부 2인자이며, 국무회의 부의장으로서 대통령의 잘못된 권한 행사를 견제하고 통제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고인은 이 사건 내란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사람임에도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서 의무를 저버리고 계엄 선포 전후 일련의 행위를 통해 내란 범행에 가담했다"고 주장했다.  

 

특검팀은 12·3 비상계엄 조치의 파장을 강하게 부각했다. 특검은 "과거 45년 전 내란보다 더 막대하게 국격이 손상됐고, 국민에게 커다란 상실감을 줬다는 점에서 그 피해는 이로 헤아릴 수 없고, 가늠하기도 어렵다"고 평가하며 "본 사건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대한 테러로, 국가와 국민 전체가 피해자"라고 규정했다.  

 

양형 사유로는 국가적 피해뿐 아니라 한 전 총리의 후속 행위도 문제 삼았다. 특검팀은 "국가와 국민에 대한 피해가 막대하고, 사후 부서를 통해 절차적 하자를 치유해 12·3 비상계엄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시도한 점, 허위공문서 작성 등 사법 방해 성격의 범죄를 추가로 저지른 점, 진술을 번복하는 등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개전의 정이 없는 점이 양형으로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검은 과거 내란 사건 판결문까지 인용하며 책임론을 거듭 부각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관련 재판에서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던 주영복 전 국방부 장관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는 권성 전 헌법재판관이 부장판사로 재직하던 1996년 2심 판결에서 "다른 사람의 힘에 밀려 소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변명하는 것은 하료의 일이고, 지위가 높고 책임이 막중하면 변명이 용납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특검팀은 이 문구를 직접 인용하며 "마찬가지로 국정 2인자인 피고인의 납득할 수 없는 거짓변명은 용납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 "피고인을 엄히 처벌해 다시는 대한민국에서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 전 총리에게는 비상계엄 선포 방조 혐의 외에 구체적 행위도 적용됐다. 특검에 따르면 한 전 총리는 지난해 12월 5일 최초 계엄 선포문의 법률적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강의구 전 대통령실 부속실장이 작성한 사후 선포문에 윤석열 전 대통령,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과 함께 각각 서명한 뒤 이를 폐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는 계엄 선포의 절차적 흠결을 나중에 덮어 정당성을 확보하려 한 사후 조치로 특검은 보고 있다.  

 

또한 한 전 총리는 올해 2월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해 계엄 선포문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부분에 대해 위증 혐의도 적용됐다. 특검은 이러한 진술이 실제 행적과 배치된다고 보고, 내란 수사와 재판을 방해하려 한 정황으로 판단했다.  

 

수사 과정에서 공소장도 보완됐다. 특검팀은 재판부의 권고를 받아들여, 내란 우두머리 방조 혐의가 인정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를 함께 판단해 달라고 요청하며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고, 재판부는 이를 허가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한 전 총리의 책임 범위를 우두머리 방조와 중요임무 종사 두 갈래로 나눠 검토하게 됐다.  

 

재판부는 이날 결심을 마친 뒤 한 전 총리에 대한 선고기일을 내년 1월 21일 또는 28일 중 하루로 예고했다는 취지로 알렸다. 선고가 예정대로 진행될 경우 내란 혐의로 기소된 국무위원 가운데 한 전 총리가 가장 먼저 사법적 판단을 받게 된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 판결이 윤석열 전 대통령을 비롯한 관련 내란 사건 재판의 책임 범위와 양형 기준을 가늠할 잣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이날 결심 공판이 본격 시작되기 전 이진관 부장판사는 최근 법정 내 갈등 상황을 언급하며 대법원과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조치에 유감을 표했다. 이 부장판사는 "이 사건 관련해 법정 질서 위반이 있었고, 연이은 사태에 대해 재판부 보호조치를 취해준 대법원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감사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는 전날 법원행정처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변호인단을 법정모욕과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 고발하고, 서울중앙지방법원이 대한변호사협회에 징계를 요청한 조치와 관련된 언급으로 해석된다. 내란 사건 재판을 둘러싼 공방이 법조계 내부 갈등으로까지 비화하는 형국이다.  

 

재판부는 내년 1월 선고를 통해 국무총리의 내란 관련 책임 범위를 최초로 제시하게 된다. 정치권과 법조계는 판결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다른 피고인들의 재판 전략과 향후 국정 책임 논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회는 헌법 질서 수호와 권력 남용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 논의를 다음 정기국회에서 본격화할 계획이다.

문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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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조은석내란특별검사#12·3비상계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