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하늘, 깊은 장의 향”…순창에서 만난 발효의 미학과 자연의 휴식
여행을 떠나는 기준이 달라지고 있다. 누군가는 ‘익숙한 도심이 지겹다’는 이유로, 또 다른 이는 ‘마음까지 맑아지는 곳’을 찾아 나선다. 발효의 고장, 순창이 다시 여행지로 주목받는 것도 그런 변화 덕분일지 모른다.
최근 순창은 맑고 쾌청한 하늘 아래 29.6도의 포근한 기온을 보이며, 가을 여행객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첫 행선지는 단연 순창발효테마파크다. 장류로에 자리한 이곳에서는 옹기 가득한 장독대 풍경과 함께 장과 된장, 고추장이 익어가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다. 아이들을 위한 발효 체험교실, 손맛을 직접 느끼는 체험 프로그램은 가족 단위 여행객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담그는 정성과 기다림이 이렇게 맛이 되는구나”라는 감탄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이어 강천산으로 향하면 전혀 다른 자연의 표정을 만난다. 강천사는 호남의 금강산이라 불릴 만큼 단풍과 계곡, 숲 그늘이 빼어난 명소다. 가벼운 산책만으로도 쉼이 되고, 고즈넉한 절집에서 마주하는 가을 바람은 모든 소음을 씻어낸다. 여행객들은 “순창에서만 느낄 수 있는 조용함 덕분에 내 마음도 투명해진다”고 표현했다.
여기에 최근 젊은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높은 채계산출렁다리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출렁다리를 걷는 약간의 아찔함, 그리고 순창의 산과 물이 한눈에 들어오는 시원한 조망이 이어진다. 누구나 ‘이 순간만큼은 일상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을 만끽한다. SNS에는 인증샷과 짧은 영상이 쏟아진다. “사진으로 다 담기지 않는다”며 꼭 직접 걸어보길 권하는 이도 많다.
이런 변화는 지역의 관광 데이터로도 드러난다. 순창군은 최근 방문객 연령대가 20~30대부터 50대 이상까지 확장되고 있다고 밝혔다. 발효 체험, 트레킹, 사진 촬영 등 목적도 다양하다.
여행 칼럼니스트 정유라 씨는 “순창의 매력은 천천히 머무르는 데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 뼘의 정원에 오래 묵은 장맛처럼, 슬로우 라이프의 본질을 이곳에서 만났다”고 고백했다.
실제로 기자도 발효된 장의 깊은 풍미와 강천산 계곡의 청량한 공기를 동시에 누리며, “이 맛과 온도는 분명 집에선 느낄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여행자 커뮤니티에서는 “강천산에서 길을 걷다가 나도 모르게 한숨 돌리게 됐다”, “테마파크에서 장 만들기 체험하며 어릴 적 할머니 생각이 났다”는 감상들이 이어지고 있다.
소란함 대신 느림, 바쁜 삶 대신 묵은 맛과 고요한 풍경을 택하는 일. 순창에서의 하루는 파란 하늘 아래, 장독 위로 흐르는 시간과 함께 더 깊은 색으로 선명히 남는다. 여행은 끝나도, 발효된 마음은 오래도록 남아 삶의 리듬에 작은 변화를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