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사용발사체 회수기술”…우주항공청, 60억 기획연구로 우주산업 판도 노린다
재사용발사체와 차세대 우주탐사 기술이 국내 우주산업의 새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주항공청이 내년부터 대규모 기획·탐색연구에 착수하며 화성 궤도수송선, 재사용발사체 회수, 우주데이터센터, 거대우주구조물 등 미래 임무를 구체화하겠다고 나섰다. 업계에서는 이번 연구비 집행이 향후 본 사업으로 이어질 경우 한국형 우주수송·탐사 체계의 설계 방향을 사실상 가늠하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주항공청은 16일 내년 추진할 신규프로젝트 탐색연구 사전설명회를 열고, 2026년부터 본격화될 신규 탐사 사업의 밑그림을 공개했다. 총 60억 원 규모 예산이 책정된 이 사업은 시험연구비를 제외한 상당 부분을 위탁연구 형태로 대학·출연연·기업에 개방한다. 기술별 개념 설계와 타당성 검증을 먼저 수행해 이후 본 개발 단계의 위험과 비용을 줄이겠다는 전략이다.

핵심은 우주수송 분야다. 우주항공청은 화성탐사를 위한 궤도수송선 개발 기획연구와 재사용발사체 해상 착륙 및 회수 기술개발 탐색연구를 병행해 추진한다. 궤도수송선은 지상 발사 이후 화성 궤도 진입, 임무 수행, 복귀까지를 담당하는 우주교통 인프라로, 장기적으로는 심우주 탐사와 자원 활용의 기반이 된다. 재사용발사체 해상 회수 기술은 1단 로켓을 바지선이나 해상 플랫폼에 수직 착륙시키고, 파도와 바람 등 해양 환경 속에서 안전하게 회수하는 정밀 제어·구조 기술을 의미한다. 민간 기업이 이 분야를 선점한 미국과 달리 한국은 아직 초기 단계라, 궤도 진입 정확도와 추진제 잔량 예측, 착륙선 자세 제어 알고리즘 정교화 등에서 얼마나 성과를 낼지가 관건으로 꼽힌다.
인공위성 분야에서는 우주데이터센터 핵심기술 개발 기획연구와 미래 우주산업 신임무를 위한 거대우주구조물 개발 기획연구가 추진된다. 우주데이터센터는 다수 위성에서 생성되는 대용량 관측·통신 데이터를 통합 수집·분석·서비스하는 허브로, 지구관측 영상과 기상 데이터, 우주환경 정보를 실시간 처리하는 고성능 컴퓨팅과 AI 분석 기술이 핵심이다. 거대우주구조물은 다수 모듈을 우주에서 조립하거나 전개해 대형 안테나, 태양광 발전 패널, 심우주 관측망 등을 구현하는 개념으로, 경량 복합소재, 자동 조립 로봇, 궤도 상 유지보수 등 다양한 공학 분야가 맞물린다. 군집위성이나 우주인터넷과 연계될 경우 통신·정찰·기상 서비스의 품질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우주과학탐사 분야에서는 차세대 우주탐사 모빌리티 발굴 및 활용 가능성 검증 연구가 포함됐다. 여기에는 달·화성 표면 탐사용 로버, 극저온 환경을 견디는 소형 드론, 소행성 표면 이동체 등 다양한 개념 모빌리티가 후보가 될 수 있다. 모빌리티의 주행 알고리즘, 자율 항법, 극한 환경용 에너지·배터리 기술 등을 사전에 검증해, 향후 국제 공동탐사 프로젝트 참여 시 경쟁력을 갖추겠다는 포석으로 해석된다.
항공혁신 분야도 비중 있게 다뤄진다. 성층권 고고도 플랫폼 기반 비지상 광통신 실증 사업 기획연구는 고도 20km 안팎에서 장시간 체공하는 무인 플랫폼을 활용해 지상 기지국이 아닌 공중 중계 플랫폼에서 직접 광통신 링크를 구성하는 개념이다. 기상·지형의 영향을 덜 받고, 위성보다 지연 시간이 짧아 대용량 데이터 송수신에 유리하다는 평가가 있다. 전기화항공기 AI 디지털트윈 핵심기술 연구는 실제 항공기와 동일한 가상 모델을 구축해 비행 중 상태를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배터리 열폭주나 추진계 이상 징후를 사전에 예측하는 기술을 겨냥한다. 전기추진 모터·배터리 시스템의 수명 예측과 정비 최적화에 AI를 결합해 운영 비용을 줄이고 안전성을 높이는 것이 목표다.
시장 측면에서 보면, 재사용발사체와 궤도수송선은 발사 단가를 낮추고 발사 주기를 단축할 수 있어 상업위성·우주인터넷·우주여행 등 신시장 확대에 직결된다. 이미 미국과 유럽에서는 재사용발사체 도입으로 발사 비용을 절반 이하로 줄였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해상 회수 기술 확보 여부가 민간 발사서비스 육성의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우주데이터센터와 비지상 광통신은 위성·항공·지상망이 결합된 하이브리드 통신 인프라 구축의 전제 조건으로, 자율주행·스마트시티·재난 대응 등 데이터 집약 산업 전반에 파급효과를 낳을 수 있다.
글로벌 경쟁 구도와의 격차도 핵심 쟁점이다. 재사용발사체 해상 회수는 미국의 민간 우주기업이 이미 수십 차례 성공해 상업 운용 단계에 들어갔고, 유럽과 중국도 유사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거대우주구조물의 경우 미국과 유럽이 우주망원경, 대형 태양전지 어레이에서 선도적 위치에 있다. 고고도 플랫폼 기반 광통신은 미국, 일본 등이 시험비행을 마친 단계로, 이번 기획연구에서 국내 기업이 어느 수준까지 개념 설계와 실증 로드맵을 구체화할지에 따라 참여 기회가 갈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책·제도 측면에서는 이번 사업 구조가 특징적이다. 우주항공청은 위탁연구 비중을 높이고, 중소기업과 스타트업 육성을 위한 스타트업 혁신 연구기획 지원 과제도 포함했다. 미국의 SBIR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한 이 과제는 기술 컨셉 단계부터 스타트업이 참여하도록 유도해, 향후 본 사업·양산 단계에서 국내 공급망과 서비스 생태계를 구축하는 효과를 노린다. 우주데이터센터와 광통신 실증 과제는 데이터 주권, 주파수·궤도 자원, 사이버 보안 등 규제 이슈와도 맞닿아 있어, 연구 과정에서 표준과 인증 체계를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우주항공청은 사전설명회에서 연구자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 과제 담당자가 직접 제안서 내용을 안내하고 질의응답을 진행했다. 현장 참석이 어려운 연구자를 위해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한 온라인 동시 생중계도 병행해 참여 문턱을 낮췄다. 설명회에서 나온 의견과 사업심의 결과를 반영해 2026년 1월 우주항공청 누리집과 범부처통합연구지원시스템 IRIS에서 신규 과제를 정식 공고한다는 계획이다.
박훤 우주항공청 임무지원단장은 이번 탐색연구를 우주항공산업의 미래를 선도할 핵심 기획에 연구자가 참여할 수 있는 기회라고 강조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연구자와 스타트업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호응하느냐에 따라, 재사용발사체와 우주탐사 모빌리티, 디지털 항공기술 등 미래 우주항공 생태계의 폭과 깊이가 결정될 수 있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산업계는 이번 기획 단계 연구가 실제 본 사업으로 이어져 국내 우주·항공 기술이 글로벌 공급망에서 실질적 역할을 확보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