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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속 돌담길을 걷는다”…안동이 주는 전통의 고요한 위로

최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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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비 내리는 도시에 더 매료되는 이들이 늘었다. 맑은 날의 산책도 좋지만, 안동처럼 고요한 비와 전통의 결이 동시에 묻어나는 공간에선 작은 풍경도 특별하게 다가온다. 과거엔 낯선 여행지라 여겨졌던 안동이 이제는 한국의 미와 옛 기억이 살아 숨 쉬는 일상이 돼 주는 듯하다.

 

비를 맞으며 걷는 낙동강변, 안동 하회마을의 돌담길엔 어느새 우산을 쓴 방문객들이 느린 걸음을 옮긴다. 600년 넘는 시간을 그대로 지켜온 기와집과 초가, 굽이진 담벼락, 낙동강 물길 너머에 드러나는 안개가 소리 없이 고즈넉한 멋을 전한다. 실제로 SNS에선 “비 오는 날 하회마을 산책이 가장 한국적”이라는 인증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사진과 영상 속엔 전통가옥 마루에 앉아 빗소리를 듣는 이들의 여유로움이 담겼다.

사진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안동
사진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안동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올해 상반기 안동 지역 관광객 수는 전년 동기 대비 증가세를 보였고, 우천 시기에도 문화유산과 자연 풍경을 즐기는 여행 흐름이 뚜렷해졌다. 만휴정처럼 계곡이 흐르는 조선시대 누각 역시 인기다. 누각 아래로 작은 폭포가 쏟아지고, 그 바람에 실린 물비린내가 마음까지 시원하게 적신다. 한 여행객은 “젖은 대나무 숲 사이 바람이 너무 맑아서 오래 머물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여행을 ‘느린 감성체험’이라 부른다. 여행 칼럼니스트 유소연은 “빗속에 머무는 전통마을의 분위기, 한옥 처마 밑에서 바라보는 자연 풍경은 마치 시간을 거꾸로 돌린 듯한 감각을 준다”며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일상과의 경계가 흐려지는 새로운 충전이 가능하다”고 표현했다.

 

비 내리는 여행지의 선택에는 맛있는 경험도 빠질 수 없다. 안동 구시장 찜닭골목은 쏟아지는 비와 함께 시장의 온기를 느끼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시장 입구 닭 모형 옆으로 줄지어 선 찜닭집은 “찜닭 냄새도 빗소리의 일부 같다”는 댓글이 달릴 만큼 ‘정서적 풍경’의 일부가 됐다. 어느 가게에 들어가도 간장과 매콤한 고추, 넉넉한 감자가 더해진 진한 국물은 든든한 한 끼가 돼 준다. “장맛에 묻어나는 집집의 사연까지 다 들어보고 싶어졌다”는 체험담 역시 공감대를 모은다.

 

이런 여행은 더이상 특별함을 좇는 대단한 이벤트가 아니다. 낯익은 골목, 돌담에 맺힌 빗물, 시장의 소음과 사람들 사이에서 각자 자신만의 멋과 온기를 찾아가는 흐름이 일상으로 스며들고 있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최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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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하회마을#찜닭골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