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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전력자원化 실험무대”…현대차그룹 V2G, 제주 분산에너지→상용화 분수령

김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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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이 전기차 배터리를 전력망과 연결해 양방향으로 전력을 주고받는 전기차·전력망 연계 V2G 기술을 국내에서 처음 선보이며, 전기차를 이동형 전력저장장치로 편입하는 분산 에너지 실험에 착수했다. 현대차그룹은 9월 제주특별자치도와 체결한 그린수소 및 분산 에너지 생태계 조성 업무협약의 후속 조치로, 다음 달 말 제주 지역에서 V2G 시범 서비스를 개시한다고 28일 밝혔다. 이번 사업에는 현대엔지니어링, 제주도청, 한국전력이 참여해 완성차·전력·지자체가 결합한 통합 에너지 플랫폼 모델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V2G는 전용 양방향 충전기를 기반으로 전기차 배터리에 전력을 충전하는 기능을 넘어, 필요 시 차량에 저장된 전력을 배전망으로 다시 공급하는 기술로 정의된다. 현대차그룹이 준비 중인 서비스 구조는 전기차, 충전기, 전력망 간 상호 통신을 통해 실시간 전력 수요와 공급, 전력 가격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최적의 충·방전 시점을 자동으로 결정하는 방식으로 설명됐다. 전력 수요가 낮고 가격이 저렴한 시간대에는 전력을 충전하고, 수요와 가격이 높은 피크 시간에는 전기차에 남은 전력을 전력망으로 방전해 수요 관리 자원으로 활용하는 구조다.

“전기차 전력자원化 실험무대”…현대차그룹 V2G, 제주 분산에너지→상용화 분수령
“전기차 전력자원化 실험무대”…현대차그룹 V2G, 제주 분산에너지→상용화 분수령

사업 역할 분담도 구체화됐다. 현대차와 기아는 전체 사업 운영과 V2G 기술 검증을 담당하고, 현대엔지니어링은 충전 서비스의 운영 데이터 분석과 고도화 방안 수립을 맡는다. 제주도청은 분산 에너지 활성화를 위한 관련 조례 및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한국전력은 전기차와 배전망 연계, 전력계통 안정성 검증 등을 담당한다. 업계에서는 완성차 회사가 지자체와 전력 공기업, 엔지니어링사가 참여한 다자 협력 구조를 통해 전력시장과 모빌리티 시장을 아우르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실증하는 사례로 평가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V2G 시범 서비스가 상용화 단계에 들어설 경우, 스마트 그리드 구축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과제로 꼽혀 온 전력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을 완화하는 도구로 기능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제주도는 풍력과 태양광 발전 비중이 높은 지역으로, 낮 시간대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전력 수요를 초과해 출력 제한이 발생하는 문제가 반복돼 왔다. 현대차그룹은 낮에 발생하는 재생에너지 잉여 전력을 전기차 배터리에 흡수하고, 밤 시간대나 피크 시간에 다시 계통으로 방전하는 구조가 정착되면 재생에너지 활용도와 경제성이 동시에 개선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객 참여 구조도 예고됐다. 현대차그룹은 다음 달 초부터 아이오닉9 또는 EV9을 보유하고 자택이나 직장에 양방향 충전기를 설치할 수 있는 고객을 대상으로 제주 지역 시범 서비스 참여자를 모집할 예정이다. 참여 고객은 전기차를 일상적인 이동 수단이자 수요 반응 자원으로 활용하는 새로운 에너지 소비 행태를 경험하게 되며, 장기적으로는 수요관리 참여 보상, 전력요금 절감 등 다양한 인센티브 모델이 논의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다만 전기차 배터리 수명, 잔존가치와 관련한 소비자 우려에 대해서는 적절한 충·방전 제어 알고리즘과 보증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현대차그룹의 V2G 전략은 국내 실증을 넘어 유럽 시장에서의 상용화로 이어진다. 현대차그룹은 네덜란드에서 완성차 업체로는 처음으로 다음 달 말부터 현지 아이오닉9 및 EV9 보유 고객을 대상으로 V2G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다. 유럽은 재생에너지 비중이 빠르게 확대되는 가운데, 가정용 태양광과 전기차를 연계한 분산 전원 모델에 대한 정책적 지원과 전력시장 제도 정비가 비교적 앞서 있는 지역으로 평가된다. 현대차그룹은 내년에 네덜란드에서 V2G 지원 차종을 추가로 확대하고, 영국 등 다른 유럽 국가에도 순차적으로 서비스를 론칭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에서는 이미 V2H 서비스가 운영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일부 지역에서 대형 산불과 풍수해 등 자연재해로 전력 공급에 차질이 발생했을 때, 전기차에 저장된 전력을 가정에 공급하는 비상 전력원으로 활용하는 V2H 모델을 제공 중이다. 이를 통해 전기차가 가정용 비상 발전기 역할을 수행하도록 지원하고 있으며, 향후에는 V2H와 V2G를 연계해 지역 단위 마이크로그리드 구축에 기여하는 방안도 검토될 것으로 관측된다.

 

에너지·모빌리티 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의 행보가 전기차를 단순 교통수단을 넘어 분산형 에너지 인프라의 핵심 구성 요소로 재정의하는 과정으로 해석되고 있다. 전력계통 차원에서는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고 피크 부하를 경감하는 수단이 될 수 있고, 전기차 이용자 입장에서는 배터리 용량을 전력시장에 참여시켜 새로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재산 자산으로 바라보는 관점 전환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다만 전력시장 제도, 계통 안전성 기준, 통신 보안 규격, 차량 배터리 보증 체계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은 만큼, 제주 시범사업의 데이터와 경험이 향후 제도 설계의 중요한 기준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그룹 미래전략본부 정호근 부사장은 국내와 해외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V2G 서비스가 그룹 전기차 경쟁력 강화를 넘어 친환경 모빌리티 시장과 미래 에너지 시장을 선도하는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 전문가들은 현대차그룹이 구축하려는 V2G·V2H 생태계가 향후 완성차 업체의 수익 구조를 차량 판매 중심에서 에너지 서비스와 데이터 기반 플랫폼 사업으로 확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으며, 제주에서 시작되는 실증 사업의 성패가 국내 전력 시스템의 탈탄소화와 분산전원 전환 속도를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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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아이오닉9#ev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