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AI 기술주 거품 우려 커졌다”…영국 연기금, 미국 주식 비중 축소 움직임에 글로벌 자금 흐름 촉각

문수빈 기자
입력

현지시각 기준 2일, 영국(UK) 런던 금융가에서는 인공지능(AI) 열풍 속에 급등한 미국(USA) 기술주에 대한 거품 논란이 커지면서 주요 연기금들이 미국 주식 비중을 줄이거나 분산 투자에 나선 움직임이 포착됐다. 이번 자산 재조정은 글로벌 증시에서 미국 빅테크 중심 장세가 장기 투자자의 포트폴리오 리스크를 키우고 있다는 문제의식 속에 이뤄지고 있어 국제 자금 흐름 변화에 대한 관심을 자극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엔비디아, 알파벳, 메타 등 미국 대형 기술주가 연일 사상 최고가 근처를 오가며 올해 나스닥 지수가 20% 이상 상승한 가운데, 극소수 종목에 자금이 집중되는 쏠림 현상이 영국 연기금들의 경계심을 키웠다. 특히 확정기여형(DC형) 연금 부문에서 젊은 가입자들의 미국 주식 비중이 높게 설정돼 있어, AI 관련 기술주 변동성이 커질 경우 노후 자산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AI 거품 우려에 영국 연기금, 미국 주식 비중 축소…200억 파운드대 자산 재조정
AI 거품 우려에 영국 연기금, 미국 주식 비중 축소…200억 파운드대 자산 재조정

현지 연금 업계에 따르면 퇴직까지 약 30년이 남은 젊은 세대 가입자 상당수는 전 세계 주식에 70∼80%, 일부는 100%까지 투자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으며, 이 중 상당 비중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배분돼 있다. AI 붐이 이어지는 동안 높은 수익을 거뒀지만, 특정 섹터와 소수 종목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 잇따르면서 리스크 관리 필요성이 부각됐다.  

 

FT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미국 주식 자산 비중을 조정하거나 주가 하락에 대비한 보호장치를 도입한 영국 연기금·펀드의 총자산은 2천억 파운드(약 388조 원)에 달한다. 이는 영국 퇴직연금 자산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규모로, 향후 다른 유럽(EU) 연기금에도 비슷한 조정 압력을 가할 수 있는 움직임으로 평가된다.  

 

대표적으로 약 200만 명 가입자를 위해 360억 파운드(약 70조 원)를 운용하는 ‘스탠더드라이프’는 전체 주식 자산 중 미주 주식 비중이 약 60%에 달했으나, 최근 이 비중을 낮추고 영국과 아시아 주식시장 노출을 확대하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 스탠더드라이프의 케일럼 스튜어트 투자 총괄은 미국 주식 관련 위험 요인으로 관세 변수와 대형 기술주 쏠림을 지적하며, “특정 지역과 산업에 집중된 리스크를 인지한 상태에서 포트폴리오를 조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가 지원을 받는 380억 파운드(약 74조 원) 규모의 직장 연기금 ‘네스트(NEST)’도 새로운 기여금 운용 방식을 바꾸며 분산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네스트는 기존에 보유한 미국 주식을 대규모로 매도하지는 않았지만, 새로 유입되는 자금을 사모 시장 등 대체투자 자산으로 돌려 포트폴리오 구성을 다변화하는 중이다. 마크 포셋 최고경영자(CEO)는 “포트폴리오가 빅테크 중심에서 점차 다각화되는 과정”이라며 “현재의 기술주 강세장을 곧바로 거품으로 단정하기 어렵지만, 리스크 관리는 연기금의 핵심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18만5천 명 가입자를 대상으로 120억 파운드(약 23조 원)를 운용하는 ‘에이온 마스터 트러스트’는 올해 여름 글로벌 주식 포트폴리오의 약 10%를 매도했으며,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이 미국 주식이었다고 밝혔다. 조 샤플스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채권 시장에서 매력적인 기회를 찾기 위해 주식 비중을 줄였다”고 설명하면서도 “AI 거품 논의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주식 노출 축소가 전반적인 리스크 감소로 이어진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영국 연기금의 움직임은 AI와 빅테크를 둘러싼 글로벌 증시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편 미국 기술주 랠리가 아직 정점에 이르지 않았다고 보고, 높은 수익 기회를 유지하려는 연기금도 존재한다. ‘아비바 인베스터스’의 글로벌 주식 포트폴리오 매니저 리처드 살다나는 미국 빅테크 비중 유지에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며, “배당을 지급하는 미국 기술기업 비중이 2005년 20% 수준에서 현재는 거의 60%에 도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배당 확대 흐름을 근거로 빅테크의 수익 구조가 과거보다 안정화되고 있다는 견해를 내놨다.  

 

380억 파운드(약 74조 원) 규모 연금 펀드를 제공하는 ‘피플스 파트너십’의 댄 미쿨스키스 CIO도 고평가 우려와 강한 실적 성장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고평가 부담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은 실적 성장세가 이를 상당 부분 상쇄하고 있다”며 “현재로서는 미국 주식 배분을 변경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AI 관련 기술주가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가운데, 영국 연기금들의 상반된 전략은 장기 투자자가 취할 수 있는 두 가지 상반된 접근법을 보여주고 있다. 일부는 미국 빅테크 쏠림과 잠재적 거품을 경계하며 분산과 방어에 무게를 두고, 다른 일부는 성장성과 배당 확대를 근거로 기존 노출을 유지하고 있다.  

 

국제 금융사와 주요 외신들은 영국 연기금의 포트폴리오 조정이 당장 미국 증시에 큰 충격을 줄 수준은 아니라면서도, 장기 자금의 태도 변화를 가늠할 수 있는 신호로 주목하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향후 미국 통화정책, AI 산업 성장 속도, 규제 환경 변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빅테크 밸류에이션을 다시 시험대에 올려놓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AI 열풍이 글로벌 자본 흐름과 연기금 운용 전략에 어떤 방향 전환을 가져올지, 그리고 영국 연기금의 선제적 리스크 관리가 다른 유럽 및 아시아 연기금으로 확산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제사회는 이번 움직임이 자산시장 거품 논쟁과 장기 투자 전략 재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문수빈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영국연기금#미국빅테크#ai거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