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지원사업 감액”…병원협회, 수탁 예산 재조정 속 의료질 관리 고민
의료 서비스와 환자안전 관련 예산 구조가 재편되고 있다. 전국 병원들을 대표하는 대한병원협회가 올해 상반기 집행 실적과 전공의 미복귀 사태 이후 바뀐 수련환경을 반영해 사무국 운영 예산과 정부 수탁사업 예산을 대폭 조정한 것이다. 특히 전공의 수련지원 분야 예산이 크게 줄어들면서 필수의료 인력 양성과 교육 인프라의 질적 관리가 새 변곡점을 맞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한병원협회는 20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2025회계연도 제1차 정기이사회를 열고 올해 전반기 사업실적을 반영한 사무국 추경 예산안을 의결했다. 병원협회 사무국의 2025년 원예산은 약 105억6000만원 수준이었으나, 2억5430여만원을 줄인 103억574만원으로 확정됐다. 감액률로는 1.6퍼센트 수준이다.

세부적으로 사무국은 당초 67억4048만원에서 1억960만원을 감액해 66억3087만원으로 조정했다. 협회 산하 병원신문은 10억5029만원에서 1770만원을 줄인 10억3258만원으로, 수련환경평가본부는 27억6929만원에서 1억2701만원이 축소된 26억4227만원으로 편성했다. 수련환경평가본부는 전공의 근무시간, 교육 프로그램, 당직 시스템 등을 평가·관리하는 조직으로, 병원 수련환경의 질을 간접적으로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사무국 예산과는 별도로 운영되는 보건복지부 수탁사업 예산도 크게 손질됐다. 병원협회가 복지부로부터 위탁받아 수행 중인 6개 사업의 당초 예산은 2862억8224만원 규모였다. 그러나 전공의 미복귀와 이에 따른 수련계획 변경이 확대되면서 전공의 수련 관련 지원사업에서 1434억2302만원가량을 감액했고, 전체 수탁사업비는 1428억5586만원 수준으로 추경 편성됐다.
조정 대상이 된 수탁사업은 환자안전교육, 간호조무사 보수교육, 필수의료 간호사양성 지원사업, 다기관 협력 수련시범사업, 전공의 수련환경 혁신지원사업, 수련보조수당 지원사업 등 6개다. 환자안전교육과 간호 인력 양성, 다기관 협력 수련 모델과 전공의 처우 개선까지 국내 의료 품질과 직결된 핵심 프로그램들이 대거 포함돼 있어 예산 축소가 현장에 미칠 파장을 둘러싼 논의가 불가피해 보인다.
전공의 수련 관련 지원사업은 정규 수련과정의 교육·연구 환경을 지원하고 병원들의 수련 인프라를 보조하는 재원이다. 감액 폭이 큰 만큼, 향후 예산 집행은 필수의료 분야와 지역·전문과목 간 불균형 문제를 고려해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방향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의료계에서는 전공의 인력 구조 변화뿐 아니라 수련 과정의 디지털화, 근무시간 관리 시스템 고도화 등 새로운 투자가 요구되는 상황에서 재정 여력이 줄어드는 점을 부담 요인으로 보고 있다.
특히 병원협회가 수행하는 환자안전교육과 간호조무사 보수교육 등은 의료기관의 정보화와도 연결된다. 전자의무기록, 약물오류 알림 시스템, 환자 확인 절차 등 디지털 기반 안전 시스템을 다루는 교육 비중이 확대돼 왔기 때문이다. 예산 축소가 교육 콘텐츠의 질과 범위, 디지털 교육 플랫폼 고도화 속도에 영향을 줄 가능성도 있다.
이날 이사회에서는 인적 구성과 내부 규정도 손질했다. 서길준 국립중앙의료원장과 오주형 경희대학교 의료원장 겸 경희대학교병원장을 부회장으로 하는 등 총 14명의 임원 보선 안건이 심의·의결됐다. 공공의료와 대학병원이 동시에 부회장단에 포진하면서 향후 수련제도와 필수의료, 공공의료 네트워크 논의에서 병원협회의 조정 역할이 강화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협회 운영 제규정 가운데 회비 등 수납규정, 전공의 수련기록 관리규정, 복무규정, 직제규정 등도 현장의 여건을 반영해 개정했다. 특히 전공의 수련기록 관리규정 개정은 수련 과정 데이터의 체계적 관리와 평가를 예고하는 조치로, 향후 디지털 기반 수련기록 시스템 고도화, 데이터 기반 수련환경 분석 등과 맞물려 갈 것으로 보인다. 수련기록 관리가 고도화될 경우 전공의 근무 패턴과 교육 내용, 수술·시술 참여 현황 등이 정량적으로 파악되면서 필수의료 인력 정책 설계에 참고 데이터로 활용될 가능성도 있다.
신규 회원사 확대도 이뤄졌다. 자인플러스병원 등 10개 병원이 대한병원협회 신규 회원으로 입회해 중소병원을 포함한 의료기관 간 이해관계 조율과 공동 대응 폭이 넓어졌다. 의료 현장에서는 디지털 헬스케어, 원격 모니터링, AI 판독 등 IT 기반 서비스 도입이 늘고 있어, 협회 차원의 교육·지침과 예산 방향은 향후 의료 IT 투자 속도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추경이 단기적 재정 조정에 머물지, 아니면 전공의 수련과 환자안전, 간호 인력 양성, 디지털 교육 인프라의 구조적 재편으로 이어질지를 주시하고 있다. 의료질 향상과 인력 양성이라는 목표를 유지하면서도 예산 효율성을 높여야 하는 과제가 병원협회와 정부 모두에게 동시에 주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산업계는 이번 예산 재조정이 실제 의료 현장에서 어떻게 구현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