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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도 '디지털 무대'…중국형 K팝 라이브 전성시대 조명

조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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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농촌 출신 다섯 형제가 K팝 그룹 빅뱅을 흉내 내며 진행하는 라이브 방송으로 한 달 만에 200만 명이 넘는 팬을 모았다. 이들은 이동 통신망과 숏폼 기반 라이브 플랫폼을 활용해 농촌 현장을 그대로 무대로 삼았다. 고가 장비와 정교한 스튜디오 없이도 알고리즘 추천과 실시간 소통 기능만으로 글로벌 K콘텐츠 포맷을 변주한 셈이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농촌 크리에이터의 등장을 라이브커머스와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교차하는 새로운 신호로 보고 있다. 플랫폼 중심의 팬덤 경제가 도시를 넘어 농촌까지 스며들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보도를 보면 관헝과 네 명의 동생들은 뱅산카라카라는 이름으로 자오퉁시 농촌 마을에서 라이브를 이어가고 있다. 스마트폰과 기본 음향 장비 정도에 의존하지만 촬영 구도로 빅뱅 특유의 군무와 무대 연출을 모사하고, 댓글과 후원 기능을 통해 팬과 실시간 소통을 이어간다. 라이브 시청자는 하루 평균 30만 명 수준으로 집계되며, 전체 SNS 팔로워는 이미 220만 명에 이른다.

기술적 기반은 중국 주요 숏폼·라이브 플랫폼이 제공하는 스트리밍 인프라다. 플랫폼은 크리에이터의 방송을 초당 수십 프레임으로 전송하고, 시청자의 댓글과 후원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한다. 여기에 이용 시간, 시청 유지율, 후원 빈도 등을 반영하는 추천 알고리즘이 더해져 농촌 출신 신규 계정도 단기간에 대규모 노출을 확보할 수 있었다. 과거라면 방송국 편성권 없이는 불가능했던 파급력을 모바일 네트워크와 클라우드 기반 콘텐츠 전송망이 뒷받침한 셈이다.

 

이들이 재현하는 K팝 무대는 단순 모사가 아니라 사용자 참여형 포맷으로 확장되고 있다. 팬들은 채팅창에서 다음 곡을 요청하고, 의상이나 헤어스타일 아이디어를 제안한다. 방송이 진행되는 농촌 세트에는 고추 꼬치와 전기 삼륜차가 배치되고, 옥수수대를 태운 연기로 스모크 효과를 만든다. 예측 불가능한 환경 때문에 닭과 거위가 무대에 난입하거나 배설물을 치우기 위해 공연이 중단되기도 한다. 이러한 변수가 오히려 도시형 스튜디오 방송과 차별되는 현장성을 더해 참여도를 높이고 있다.

 

수익 구조는 팬 후원과 광고, 향후 라이브커머스를 통한 농산물 판매로 이어질 수 있다. 이미 방송 중 윈난 감자와 사과 등 지역 특산물을 노출하고 있어, 중국 내에서 활성화된 라이브커머스 모델 적용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동영상 플랫폼이 지역 농산물 유통 채널로도 기능하면서, 현지 문화관광국과의 협업 계획까지 언급됐다. 콘텐츠 소비와 로컬 경제 활성화가 하나의 디지털 파이프라인에서 연결되는 구조다.

 

K팝을 매개로 한 이런 현상은 글로벌 콘텐츠 공급망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과거 K콘텐츠 소비는 주로 방송 채널을 통해 이뤄졌지만, 최근에는 숏폼·리액션·패러디 등 2차 창작이 플랫폼 위에서 자생적으로 번식하는 구도다. 뱅산카라카 사례는 원 저작 포맷이 현지 문화와 섞여 재가공되고, 다시 글로벌 이용자에게 역수출되는 순환 구조를 보여준다. 국내 콘텐츠 산업에는 해외 플랫폼에서의 2차 창작을 어떻게 저작권과 브랜딩 관점에서 관리할지에 대한 새로운 과제를 던지고 있다.

 

중국 내부에서는 농촌 기반 크리에이터의 부상을 두고 디지털 격차 해소의 한 단면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과거 도시와 농촌 간 소득·정보 접근 차이가 컸지만, 스마트폰 보급과 4G·5G 망 확대로 촬영과 편집, 송출까지 대부분 모바일 환경에서 해결할 수 있게 됐다. 별도의 엔터테인먼트사 계약 없이도 대규모 팬을 확보한 뱅산카라카는 플랫폼 중심 크리에이터 경제가 농촌 거주자에게도 새로운 일자리와 수익원을 제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 지역 기반 인플루언서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규제 이슈도 점차 부각되는 추세다. 중국에서는 라이브커머스 관련 세무 관리와 허위·과장 광고 단속을 강화하는 움직임이 이어져 왔다. 농산물과 관광상품을 연계한 방송이 확대될수록 품질 관리, 개인정보 보호, 수익 배분 투명성 등 추가적인 규제 논의가 불가피하다는 관측도 있다. 특히 음악 저작권과 퍼포먼스 사용 범위에 대한 관리 체계가 미흡할 경우 플랫폼과 크리에이터 모두 법적 분쟁에 노출될 위험이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농촌 라이브 방송이 향후 지역 맞춤형 디지털 마케팅과 관광 산업의 실험장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현지 사투리와 생활 환경, 가족 서사 등을 전면에 내세운 콘텐츠는 대형 기획사 중심의 획일적 포맷과 다른 정체성을 갖는다. 알고리즘은 이용자의 시청 패턴에 따라 이런 로컬 콘텐츠를 선별적으로 띄우며,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스타가 탄생하는 구조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엔터테인먼트와 IT 업계는 뱅산카라카와 같은 사례를 통해 농촌·저자본·비전문 인력이 어떻게 디지털 생태계에 편입되는지 면밀히 주시하는 모습이다. 플랫폼이 구축한 기술 인프라 위에 지역성, 가족 스토리, K콘텐츠 모티브가 결합하면서 새로운 유형의 디지털 무대가 빠르게 늘고 있다. 산업계는 이러한 흐름이 일시적인 유행을 넘어, 농촌과 로컬 경제를 연결하는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로 안착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조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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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산카라카#빅뱅#관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