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셀까지 개별 최적화…KT·삼성, 6G 향한 상용망 검증 성과
인공지능 기반 무선접속망 기술이 실제 상용 통신망에 적용되며 차세대 이동통신 경쟁 구도가 새로운 국면에 들어가고 있다. 기지국이 이용자 단말 데이터를 실시간 분석해 각 사용자 단위로 네트워크를 개별 최적화하는 방식으로, 5G 한계를 보완하고 6G의 초저지연·초고속·초연결 요구를 뒷받침할 핵심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검증을 두 회사가 AI 중심 네트워크로 전환하는 가시적 출발점으로 바라보는 분위기다.
KT는 삼성전자와 공동 개발한 인공지능 기반 무선접속망 AI-RAN 기술을 상용 통신망에서 검증했다고 11일 밝혔다. 양사는 2023년부터 AI-RAN을 공동 연구해왔으며, 올해에는 엔비디아와 다자간 업무협약을 통해 그래픽처리장치 GPU 기반 AI-RAN 연구개발도 본격화한 상태다. 연구실 단계를 넘어 실제 가입자가 사용하는 망에서 기능과 성능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AI-RAN은 무선접속망 RAN에 AI를 결합한 기술로, 기지국이 단말과 주고받는 신호 세기, 품질 변화 흐름 등 실시간 품질 데이터를 상시 분석하고, 이를 기반으로 개별 사용자별 최적 네트워크 설정값을 자동으로 찾아주는 구조다. 기존에는 셀 단위로 고정된 파라미터를 일괄 적용했다면, AI-RAN은 사용자별로 세밀한 맞춤 최적화를 지향한다. 특히 이동 속도, 사용 위치, 혼잡도 등 시간에 따라 변하는 환경을 학습해, 문제 발생 가능성을 사전에 예측하는 점이 차별화 포인트로 꼽힌다.
이번 상용망 검증은 경기도 성남시 지역에서 이뤄졌다. 하루 평균 약 1만8000명의 사용자가 AI-RAN 기능이 적용된 네트워크를 이용하며 실사용 데이터를 생성했다. 검증 결과 반복적으로 발생하던 일부 고객의 셀 간 이동 시 통화나 데이터가 끊기는 현상이 크게 줄어들었다. 유사한 이동 패턴을 가진 다른 고객들의 연결 품질도 함께 개선되면서, 셀 전체 수준에서 품질 지표가 향상된 것으로 파악됐다.
지금까지 국내외 이동통신사는 대부분 셀 단위 네트워크 최적화 방식을 활용해 왔다. 하나의 기지국이 커버하는 셀에 대해 무선 자원 할당, 전송 전력, 핸드오버 기준 등 주요 설정값을 정하고, 셀에 접속한 모든 사용자에게 동일하게 적용하는 구조다. 이 방식은 운용이 단순하고 대규모 망 관리에 유리하지만, 개별 이용자의 위치 변화나 사용 패턴, 주변 전파 환경 차이까지 세밀하게 반영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는 지적이 지속돼 왔다.
KT와 삼성전자는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AI 기반 예측과 최적화 모델을 공동 설계했다. 실시간 품질 데이터에서 패턴을 찾아 특정 구간이나 시간대에 품질 저하가 반복될 가능성을 미리 감지하고, 해당 사용자가 셀 경계를 이동하기 전부터 핸드오버 조건, 전송 파라미터 등을 선제적으로 조정하는 방식이다. 복잡한 도심 환경에서도 안정적인 연결을 유지해 체감 품질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대용량 콘텐츠 소비와 자율주행, 산업용 사물인터넷 등 지연 민감 서비스에 유리한 구조로 평가된다.
시장 측면에서 AI-RAN은 단순한 품질 향상을 넘어 네트워크 투자 효율성 개선 수단으로도 주목된다. 동일한 주파수와 장비에서 소프트웨어와 알고리즘만으로 처리 용량과 커버리지 체감을 끌어올릴 수 있어, 고가의 기지국 증설에 앞서 활용할 수 있는 옵션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신사가 맞춤형 요금제나 서비스 품질 차등 제공과 연결해 신규 수익원을 설계할 여지도 있어, 비즈니스 모델 변화의 촉매가 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글로벌 차원에서는 이미 주요 장비사와 통신사를 중심으로 AI 활용 네트워크 지능화 경쟁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유럽과 북미 일부 사업자는 트래픽 예측과 기지국 전력 관리에 AI를 도입하며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시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일본과 중국에서는 도심 밀집 지역을 대상으로 AI 기반 셀 설계와 자원 자동 최적화 기술 검증이 병행되고 있다. KT와 삼성전자의 상용망 수준 검증 성과는 이런 흐름 속에서 한국 통신·장비 연합의 기술 주도권 확보 시도로 해석된다.
엔비디아와의 협력도 주목되는 지점이다. AI-RAN의 핵심인 학습과 추론은 대규모 행렬 연산이 필요한데, 이는 GPU에 최적화된 작업이다. 향후 양사가 GPU 가속 기반으로 AI-RAN 알고리즘을 고도화하면, 더 빠른 의사결정과 복잡한 환경 인식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특히 6G에서 예상되는 초밀집 네트워크와 위성·지상 통합망까지 아우르는 자원 관리에는 고성능 가속 인프라가 필수로 꼽힌다.
규제와 표준 측면에서는 아직 초기 단계다. 무선 자원 관리 영역에 AI 의사결정을 도입할 경우, 알고리즘 투명성, 장애 발생 시 책임 소재, 국제 표준과의 정합성 등이 논의 대상에 올라 있다. 3세대이동통신파트너십프로젝트 등 국제 표준 기구에서도 AI 네이티브 RAN 구조와 인터페이스 정의 작업이 진행되고 있어, 국내 사업자의 상용망 검증 결과가 향후 표준 논의에 반영될 여지도 있다. 네트워크 운영 데이터의 활용 범위와 개인정보 보호 간 균형을 어떻게 맞출지에 대한 정책 논의도 불가피해 보인다.
정진국 삼성전자 삼성리서치 차세대통신연구센터장 부사장은 AI가 실제 통신망에서 사용자 경험 향상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확인한 성과라고 평가하며, 두 연구소가 지속적인 기술 고도화와 검증을 통해 AI 중심의 미래 통신 기술을 선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종식 KT 미래네트워크연구소장 전무는 AI가 네트워크 운영을 사용자 중심으로 재편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라고 의미를 부여하며, 맞춤형 최적화 기술을 고도화해 6G 핵심 기술 확보와 고객 가치 혁신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통신 업계는 KT와 삼성전자가 확보한 AI-RAN 상용망 검증 경험이 향후 5G 고도화와 6G 초기 표준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레퍼런스로 활용될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산업계 전반에서는 네트워크 인프라가 얼마나 빠르게 AI 기반 지능형 구조로 전환되느냐가 차세대 통신 경쟁력의 핵심 변수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