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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시간 속으로”…가을 부여 정림사지의 고요함이 주는 여유

정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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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지며 부여를 찾는 발길이 늘었다. 한때 왕국의 수도였던 이곳도 오래전엔 멀게만 느껴졌지만, 이제는 일상을 잠시 벗어나기 좋은 근거리 여행지로 자리 잡았다. 붉게 물든 단풍과 조용한 유적들 사이에서 마음도 덩달아 느려진다.

 

요즘 부여에서는 백제의 흔적이 남아 있는 길과 다채로운 카페가 함께 떠오른다. 백마강유람선 위에선 황포돛배가 강물에 부드럽게 떠 있고, 금강을 따라 펼쳐진 낙화암과 고란사의 풍경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다가온다. 강바람을 맞으며 강을 건너는 이들은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요함이 있다”고 표현했다. 정림사지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오층석탑이 넓은 터를 지키고 있다. 햇살이 내리쬐면 석탑의 긴 그림자 옆을 산책하는 이들도 “조용히 백제와 마주하는 느낌”이라 고백했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정림사지)
출처 :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정림사지)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최근 충남 부여군과 관광공사 자료에 따르면 가을철 주말마다 유적지와 인근 카페를 찾는 여행객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20~30대부터 40~50대 부부, 가족 다수가 “도시에선 찾기 어려운 평온이 좋았다”는 반응을 쏟아냈다.

 

카페 문화도 인상적이다. 부여읍의 비비비, 루디꼬 같은 대형 카페에서는 넓은 정원에 자리 잡은 의자가 인기다. 바쁜 틈을 내어 들른 한 방문객은 “커피 한 잔에 마치 오래된 휴가를 떠진 듯 마음이 느긋해진다”고 느꼈다. 매일 바뀌는 수제 디저트와 갓 구운 빵, 고급 원두 커피도 소소한 만족을 더한다. 커뮤니티에서는 “부여 카페는 크고 여유로워서 남 눈치 보지 않아도 좋다”는 공감도 적지 않다.

 

부여를 소개하는 문화기획자 유정수 씨는 “이 지역의 진짜 매력은 조용히 걸으며 자신의 내면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라며 “정림사지, 백마강처럼 역사가 흐르는 장소에서의 산책은 삶의 속도를 천천히 되돌아보는 계기를 준다”고 설명했다.

 

일상의 ‘쉼표’를 찾아 부여를 걷다 보면, 절로 숨이 깊어진다. 겉보기에 소박한 풍경이지만, 그 안엔 오래된 시간과 나만의 순간이 동시에 흐르고 있었다. “작은 여행이지만, 이 기억은 오래도록 나를 지탱해줄 것 같다”는 후기도 이어진다.

 

가을 부여는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자신을 어루만지는 계절의 풍경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의 리듬을 잠시 내려놓고 싶은 이들에게, 부여의 잔잔한 오후가 오래 남을 휴식이 돼 준다.

정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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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정림사지#백마강유람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