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 그림 건네고 공천 청탁 의혹"…김상민 전 검사 첫 공판, 쟁점 정리
정치권을 뒤흔든 공천 청탁 의혹과 대통령 배우자 관련 논란이 법정에서 본격적으로 맞붙었다. 김건희 여사 측에 고가의 그림을 전달하고 공천을 청탁한 혐의를 받는 김상민 전 부장검사의 첫 정식 공판이 열리면서, 검찰과 특검, 피고인 측의 법리 다툼이 구체화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 이현복 부장판사는 20일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기소 된 김상민 전 검사 사건 1차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재판부는 이날 주요 쟁점을 정리하고, 내달 중순까지 심리를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김 전 검사는 이우환 화백의 그림 점으로부터 No. 800298을 1억4천만원에 매수한 뒤 2023년 2월께 김건희 여사의 오빠에게 전달하면서, 2024년 4월 10일 치러진 총선 공천 등을 청탁한 혐의를 받는다. 그는 공천 심사 과정에서 탈락했지만, 같은 해 8월 국가정보원 법률특보에 임명됐다.
재판부는 우선 사실관계 자체가 다투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현복 부장판사는 특검팀과 변호인단의 입장을 정리하며 "김 전 검사가 그림을 매수해서 제공한 게 맞는지, 아니면 수수 자체를 위한 구매대행만을 한 건지를 두고 특검 측과 김 전 검사 측 입장이 차이가 난다"고 밝혔다. 그림 제공의 주체와 성격이 혐의 입증의 출발점이라는 설명이다.
이어 재판부는 매수와 제공이 인정될 경우를 전제로 몇 가지 핵심 쟁점을 제시했다. 재판부는 "매수 제공 사실이 인정될 경우 특검 측이 특정한 명목성이 인정되는지 여부, 그림이 가짜일 경우 그 가액이 김영란법 위반 처벌 대상인 100만원을 초과하는지 여부가 이 사건 공소사실 중 심리 대상 쟁점"이라고 밝혔다. 그림 제공이 청탁을 위한 대가성 제공인지, 일반적인 거래인지가 주요 논점으로 떠오른 셈이다.
법률적 쟁점과 관련해서도 재판부는 다툼의 방향을 제시했다. 재판부는 "그림을 청탁 명목으로 제공했더라도 여당 공천 업무 또는 국정원 법률특보 임명이 대통령의 관례상 직무에 포함되는지 여부 등이 쟁점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의 인사 및 공천 관련 관여 범위가 어디까지 정치자금법상 직무에 해당하는지, 해석 싸움이 예고되는 대목이다.
김 전 검사 측은 앞선 공판준비기일에서 사실관계 일부는 인정하면서도 범죄 혐의는 부인하는 입장을 유지했다. 변호인단은 김 여사의 오빠에게 그림을 전달한 사실은 인정하지만, 미술품 매수를 중개한 데 그쳤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정치자금 제공이 아니라 거래를 연결해 준 것이라는 논리다.
특검팀이 산정한 범죄액을 둘러싼 공방도 이어지고 있다. 김 전 검사 측은 해당 그림이 위작이기 때문에 가액을 100만원 미만으로 봐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이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이른바 김영란법 위반 여부와 직결되는 지점이다. 반면 특검 측은 작품 가격과 거래 경위 등을 종합할 때 고가 미술품 제공을 통한 정치자금법 위반이 성립한다고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재판부는 사건 심리를 신속하게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현복 부장판사는 앞으로 네 차례 더 공판을 열어 다섯 번째 기일인 12월 16일 심리를 종결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12월 16일에 잔여 증거조사를 하고 피고인신문, 최후변론 등 종결 절차를 진행하는 것으로 예정하겠다"고 고지했다.
이날 법정에는 그림 구매를 중개한 것으로 알려진 사업가 강모 씨에 대한 증인신문도 예정돼 있었지만, 강 씨의 불출석으로 무산됐다. 재판부는 강 씨를 27일 열리는 2차 공판에 다시 소환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향후 공판에서는 그림 거래의 실제 구조, 자금 출처, 전달 경로 등을 놓고 보다 구체적인 진술과 반대신문이 이어질 전망이다.
정치권에선 김건희 여사 측과 여당 공천, 국가정보원 인사 문제까지 한꺼번에 얽힌 사건이라는 점에서 파장이 적지 않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다만 수사와 재판이 진행 중인 만큼 여야 모두 공식 입장 표명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대통령의 인사 재량 범위, 정치자금과 로비의 경계, 김영란법상 가액 기준 해석 등이 복합적으로 얽힌 사건인 만큼, 향후 판결이 유사 사건에 적지 않은 기준을 제시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법원의 판단에 따라 향후 고가 미술품이나 예술품을 매개로 한 정치권 로비 의혹 수사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날 법원을 출발한 재판 일정에 따라, 정치자금법 위반 의혹을 둘러싼 진실 공방은 내달 중순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법원은 정해진 기일에 따라 증인신문과 피고인 신문을 마무리한 뒤 판결 선고 준비에 들어갈 예정이고, 정치권은 재판 결과에 따라 추가 입장 정리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