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배달음식 길바닥에 버렸냐”…건보공단 직원 폭언 논란으로 본 공공기관 ‘갑질’ 민낯

조민석 기자
입력

국민건강보험공단 소속으로 알려진 직원이 배달 기사에게 도를 넘은 폭언을 퍼부었다는 제보가 방송을 통해 공개되면서 공공기관 직원의 ‘갑질’ 논란이 커지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해당 직원 특정이 어렵다며 전 직원 교육을 예고했지만, 책임 회피성 대응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JTBC 시사 프로그램 ‘사건반장’은 지난 25일 방송에서 배달 기사 A씨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한 지역본부로 음식을 배달했다가 주문자로부터 심한 욕설을 들었다는 제보 내용을 공개했다. 사건은 24일 오전, 공단 한 지역본부 건물에서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JTBC '사건반장' 화면 캡처
JTBC '사건반장' 화면 캡처

프로그램에 따르면 A씨는 배달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접수된 주문을 받고 공단 지역본부 건물로 향했다. 주문 정보의 요청 사항에는 “6층 엘리베이터 앞에 놔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A씨가 6층에 도착했을 때 엘리베이터 옆에는 ‘택배 수령’, ‘배달 음료’라고 표시된 안내 문구와 화살표가 있었다.

 

A씨는 안내 문구와 화살표에 따라 해당 위치 아래에 음식을 내려놓고, 배달 완료를 증명하기 위한 사진을 촬영한 뒤 건물을 떠났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배달 플랫폼으로부터 “손님이 통화를 원한다”는 연락을 받으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통화가 연결되자 주문자 B씨는 “앞에 택배들 (탁자) 위에 올라가 있는 거 안 보이냐”고 따졌다. A씨가 “저는 (배달 음료) 화살표가 바로 아래에 보여서 그쪽에 둔 것”이라고 설명하자 B씨는 “사과를 똑바로 해라. 음식을 그냥 길바닥에 버리고 갔는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저기는 택배 두는 곳이 아니다”라고 지적하며 배달 위치에 문제를 제기했다.

 

A씨가 “그럼 뭐냐. 화살표 아래에 택배 수령이라고 있지 않냐. 택배가 바로 아래 있다”고 항변하자, B씨는 “눈이 안 보이냐”고 반문했다. 이어 “가정교육을 못 받으셨냐. 누가 음식을 저 밑에 두냐. 가정교육을 정상적으로 받았으면 저거를 저렇게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해 인격 모독성 발언 논란을 낳았다.

 

통화가 이어지는 과정에서 욕설도 나왔다. A씨가 통화를 마무리하려 하자 B씨는 “딸X X끼, 병X X끼, 꺼져버려”라는 원색적 비난을 쏟아낸 것으로 전해졌다. A씨 측에 따르면 B씨는 통화가 끝난 뒤에도 통화 내용을 문자로 전환해 캡처한 화면을 전송했고, “기억력 3초냐. 몇 개월 배달받아 보면서 이따위로 배달하는 건 처음 본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번 사건은 배달 기사와 고객 사이의 갈등을 넘어, 공공기관 직원이 자신이 근무하는 기관 건물 내에서 배달 노동자에게 폭언을 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특히 공공기관은 민원 응대 기준과 친절 의무 규정 등을 갖추고 있는 만큼, 근무 시간 중 직장 내에서 이 같은 언행을 한 것이라면 더 엄격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고객-플랫폼 구조에서 배달 노동자가 평가와 신고에 절대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놓여 있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해 왔다. 고객의 낮은 별점이나 악성 신고는 배달 기사 수입과 계정 유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 폭언을 들으면서도 대응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설명이다. 공공기관 종사자가 이 같은 권력관계를 인지하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서비스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이 재현됐다는 평가도 뒤따르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측은 ‘사건반장’ 측에 “해당 지사 직원이 300명이다. 누가 그랬는지 찾아내기 쉽지 않다. 직원 대상으로 교육을 시키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구체적인 사실관계 조사나 가해 직원에 대한 징계 검토 언급 없이 ‘전 직원 교육’ 수준에 머물겠다는 태도를 보여 실효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공단이 배달 플랫폼 기록, 주문 내역, 통화 시간대 등을 조회하면 직원 특정이 불가능하지 않음에도 신속한 조사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공공기관이 갑질·폭언 논란에 휩싸일 때마다 재발 방지 교육을 언급하는 데 그치는 ‘관행적 대응’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 관련 방송이 나간 뒤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는 “배달기사 상대로 욕설하는 건 명백한 갑질”, “공공기관 직원이면 더 조심했어야 한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배달 노동자 보호를 위한 신고 창구 강화, 고객 폭언·악성 리뷰에 대한 플랫폼의 적극적 차단 정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번 사안과 관련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내부 조사를 통해 실제 행위자를 특정하고 징계 등 후속 조치에 나설지 주목된다. 공공기관의 책임 있는 대응과 함께, 플랫폼 노동자를 향한 폭언·갑질을 제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 요구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조민석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국민건강보험공단#배달기사a씨#jtbc사건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