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릭 40 수준 약가인하"…제약업계, RND 위축 우려 표출
제네릭 가격을 오리지널 의약품의 40 수준으로 낮추는 정부 약가제도 개편안을 두고 제약업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업계는 신규 제네릭뿐 아니라 기존 등재 품목까지 순차적으로 40 수준으로 수렴할 경우 연간 최대 3조6000억원의 매출 감소가 발생할 수 있다고 추산한다. 이미 낮은 수익성 위에서 연구개발과 품질 투자 여력이 급격히 줄어들 수 있다는 경고다. 약가 인하를 통한 단기 재정 절감보다 제약바이오 산업 경쟁력, 보건안보, 의약품 공급망 안정성 측면의 장기 손실이 더 클 수 있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제약바이오산업 발전을 위한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는 22일 서울 방배동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약가제도 개편안 전면 재검토를 요구했다. 비대위는 지난달 28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보고된 개편안이 시행될 경우 산업 기반에 구조적 훼손을 낳을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정부가 검토 중인 안은 신규 제네릭 가격 상한을 오리지널 대비 40대 수준에서 책정하고, 기등재 의약품 중 인하 대상 품목은 3년에 걸쳐 같은 수준까지 단계적으로 낮추는 내용이 핵심이다. 2012년 일괄 약가 인하 이후 약가 조정 없이 최초 산정가인 53.55 수준으로 유지돼 온 약제가 우선 인하 대상이다. 다만 중단 시 국민 건강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필수 약제 등 안정적 수급이 필요한 품목은 예외로 두는 방향으로 논의되고 있다.
윤웅섭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이사장은 회견에서 약가 인하 개편안이 형식상 고가 품목 위주 조정을 표방하지만, 신규 등재 약가 인하와 주기적 약가 조정 기전이 맞물려 결국 대부분 제네릭이 40 수준으로 수렴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구조가 정착되면 연간 최대 3조6000억원 규모의 매출 감소가 발생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이미 상위 100대 제약사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4.8, 순이익률은 3 수준에 그치고 있어 추가 약가 인하가 국내 제약산업의 미래를 사실상 포기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연구개발과 품질 혁신 투자 위축 가능성도 제기된다. 비대위가 집계한 상장 제약사 169곳의 평균 연구개발 비중은 매출의 12 수준이다. 혁신형 제약기업으로 지정된 49곳의 연구개발 비중은 13.4로 더 높다. 비대위는 신약 개발과 파이프라인 확장, 기술 수출을 통해 성장해 온 제약바이오 산업의 선순환 구조가 약가 수익성 악화로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수익이 줄면 임상시험, 생산설비 고도화, 품질관리 시스템 업그레이드 등에 대한 투자 여력도 동시에 떨어져 장기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가 내세우는 약품비 절감 효과와 별개로, 한국이 목표로 제시한 제약바이오 5대 강국 전략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비대위는 1999년부터 2023년까지 24년간 누적 약가 인하액이 약 63조원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약가 인하에 따른 단기 재정 절감이 반복됐지만, 시장 규모 축소와 투자 여력 감소로 글로벌 경쟁지수는 오히려 역주행할 위험이 커졌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2012년 일괄 약가 인하 당시 건강보험 지출은 단기간 감소했지만, 본인부담 증가와 비급여 이용 확대 등으로 소비자 부담이 13.8 늘어난 경험도 다시 소환되고 있다.
보건안보와 공급망 측면의 리스크도 거론됐다. 비대위는 국산 전문의약품, 특히 제네릭이 국가 차원의 보건안보를 떠받치는 핵심 기반이라고 규정했다. 약가 인하로 국내 생산 비중이 감소하면 의약품 공급망 위기가 심화될 수 있고, 채산성이 낮은 필수·저가 퇴장방지의약품은 추가 인하를 견디지 못해 공급 중단에 직면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미 취약한 수준에 머무는 원료의약품 자급 기반도 훼손돼, 해외 원료 수급 차질 시 국내 환자들이 곧바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구조가 강화될 수 있다는 평가다.
고용과 유통구조에 미치는 파장도 적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비대위는 대규모 약가 인하가 제약사 인력 구조조정으로 직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개편안에 포함된 시장연동형 실거래가제가 요양기관의 초저가 낙찰 경쟁을 부추겨 이미 여러 차례 문제점이 지적된 시장형 실거래가제의 부작용을 반복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유통 마진을 과도하게 압박해 도매상과 소규모 의료기관의 경영 불안정을 키우고, 결과적으로 의약품 유통질서를 왜곡할 수 있다는 논리다.
업계 안팎에서는 약가제도 개편이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과 환자 부담 경감을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라는 평가와 함께, 혁신 유인과 산업 성장 동력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맞서고 있다. 재정 절감 효과가 단기에 집중되는 반면, 연구개발 위축과 공급망 불안정은 수년 뒤 누적돼 나타나는 만큼 정책 설계 시 장기적 관점이 요구된다는 주문도 나온다.
비대위는 정부가 개편안을 일방적으로 추진할 경우 제약바이오 산업 기반이 약화되고, 결과적으로 국민 건강권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산업계와 충분한 협의 없는 약가 인하는 시장 신뢰를 떨어뜨려 글로벌 기업과의 협력, 해외 투자 유치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덧붙였다. 제약업계와 정부가 약품비 관리, 건강보험 재정 안정, 산업 경쟁력을 동시에 고려한 대안을 도출할 수 있을지에 산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